인간은 현실에 발붙이고 살아가면서도
두 눈으로는 저 지평선 너머를 바라보는 존재
요즘 아이들이 체감하는 세계는 어떤 곳일까? 코로나 팬데믹을 겪으며 한동안 학교에 가지 못했고, 기후위기는 갈수록 심해져 재난이 끊이지 않으며, 사회 분위기는 결코 안전하다고 할 수 없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안전하지 않은, 위태롭고 위험한 사회에서 성장기를 보내다 보면 타인에 대한 경계심이 커질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스스로 안전을 지키는 일은 물론 중요하지만, 누군가를 제대로 알아가기 전에 경계부터 하고 선을 그을 준비부터 해야 한다면, 그 삶은 무엇으로 풍요롭게 채워 나갈 수 있을까? 현실에 발붙이고 살아가면서도 때때로 두 눈으로 저 지평선 너머를 바라봐야 하지 않을까?
최상희, 연여름, 문이소, 이필원, 하유지, 다섯 작가들은 이런 고민을 담아 용감한 주인공들이 선을 넘고 닫힌 문을 열고, 결국은 스스로 한계를 뛰어넘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경쟁 너머, 갈등 너머, 한계 너머의 이야기다.
전부를 알지는 못한다
시간과 진심을 들여 서서히 이해하려 노력할 뿐
최상희 작가의 「내성적인 뱀파이어」에서는 뱀파이어 가족이 이웃집으로 이사 온다. ‘소수자 차별 반대법’이 제정된 뒤, 격리 지구에서 살던 뱀파이어족이 사람들과 어울려 살게 된 것이다. 사람들은 뱀파이어가 어떤 존재인지 제대로 알지 못한 채, 막연한 불안감으로 뱀파이어를 혐오하고 차별한다. 뱀파이어 래미를 학교에서 만난 ‘나’는 래미와 짝이 되고, 자기도 모르게 용기를 내야 할 순간을 마주한다.
사람이든, 동물이든, 우리는 다른 존재에 대해 전부를 알지 못한다. 모르는 채 혐오할 것인가, 모르니까 시간과 진심을 들여 서서히 이해하려 노력할 것인가, 어느 쪽이 더 나은 삶으로 우리를 데려갈까.
연여름 작가의 「나만의 리미트」는 할머니를 잃은 웨이와 엄마를 잃은 소마가 ‘리미트’를 마주하는 이야기다. ‘리미트’는 고인의 의식을 보존해, 그걸 바탕으로 언제든 고인과 만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시스템이다. 웨이와 소마는 첨단 기술로도 구현할 수 없는 ‘기억’에 대한 마음을 나누고, 자신만의 리미트를 만들어 간다. 누군가를 기억하고 이해하기 위해서는 제대로 대면하지 못했던 나 자신을 먼저 마주해야 한다는 걸 이야기한다.
할 수 있는 일이야 많겠지
우리가 스스로 한계만 두지 않는다면
문이소 작가의 「기간테스가 나타났다」는 도로에서 아스팔트를 뚫고 나타나 온갖 것들을 진액으로 녹여 흡수하는 괴생명체 기간테스와 그에 맞서는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다. 텃밭을 가꾸는 동아리 활동을 하는 세 친구 은제, 보영, 희준은 기간테스의 비밀을 알아내고 맞서 싸울 준비를 한다. 타인을 의심하기 전에, 겁난다고 물러서기 전에, 아이들은 용기 내서 담을 넘는다.
이필원 작가의 「레드 카펫을 깔아 줘요」에는 신체 일부에 기계 장치를 넣은 격투기 선수가 등장한다. 격투기가 좋아서 계속해 왔으나, 신체 개조 시술이 어른들의 비열한 욕망을 위한 수단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다른 선택의 길을 찾아 나선다. 스스로 한계를 정해 놓거나, 어른이 정해 놓은 무례한 선을 지키기보다 용기를 내야 할 시기에 용기를 낼 줄 아는 열여섯 살들의 이야기다.
하유지 작가의 「나를 초월한 기분」은 뇌에 칩을 이식해 인공지능 시스템 마므에 바로 접속하는 미래가 배경이다. 뭐든 열심히 하는 모범생 오유월의 뇌에 알 수 없는 오류가 생기고, 더 이상 마므 시스템에 접속할 수 없게 된다. 학교에서 제대로 수업을 받을 수도 없고, 미래를 꿈꿀 수도 없는 현실에서 어느 날, 오유월에게 타인의 비공개영역이 열리기 시작한다. 물 흐르듯 흐르다가 담을 만나면 넘어가라는 유월의 이름처럼 유월은 자신 앞에 놓인 담을 넘어 새로운 세계로 나아간다.
한계를 넘는다는 건,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한계가 무엇인지조차 인식하기 어렵다. 그러나 어느 순간 알게 될 것이다. 눈앞의 담을 넘고 싶고, 선을 뛰어넘고 싶고, 울타리나 철조망을 부러뜨리고 싶어서 눈물이 나오는 때가 있다는 걸. 그럴 때 이야기 속 주인공들의 선택을 떠올려 보면 좋겠다. 우리가 스스로 한계를 두지 않는다면, 다른 문은 언제나 열리는 법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