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명에 헤매는 이들에게 한 줄기 빛이 되기를….
1980년대 불교신문에 근무하며 편집국장을 역임했던 양범수 씨가 《누가 듣는가 하늘 밖에서 허공 밟는 소리를》(시간여행)을 출간했다. 이 책은 선사들의 깨우침의 노래(悟道)와 열반에 이르러 부르는 게송(偈頌)을 모은 책이다. 책에 수록한 100편의 게송은 2008~2009년에 불교신문에 ‘오소자(吾笑子)의 게송 감상’이라는 제목으로 연재한 것이다. 오소자는 역자 양범수 씨의 필명(筆名)이자 호(號)다.
역자는 신라 고려-조선 50인, 중국 선사 50인의 선사들의 선시(禪詩)와 게송을 어떠한 기준을 두지 않고 선정해서 실었다고 했다. 신문에 글을 연재한 뒤 15년여의 세월이 흐른 후 글을 다시 음미해 보고 책을 낼 결심을 했다.
“연재할 때는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으나 다시 볼수록 선사들의 대기대용(大機大用) 활구(活句)가 가슴 깊이 새겨지고, 세월이 갈수록 소중한 자료가 될 것 같아서 한 권의 책으로 묶어 둘 요량으로 편찬합니다.”
팔순을 맞은 역자는 불교계의 원로 언론인으로 한때는 출가수행자의 길을 걸었건 경험이 있어 오도송과 열반송을 심도 깊이 이해하고 해설하고 있다.
空山靜夜道心淸(공산정야도심청)
萬籟俱沈一明月(만뢰구침일명월)
無限世間昏睡輩(무한세간혼수배)
孰聆天外步虛聲(숙영천외보허성)
빈산 고요한 밤도 닦는 마음 맑은데
온갖 소리 잠겨 고요하고 달만 밝네
한없는 세상의 사람들 깊은 잠에 빠져
누가 듣겠는가, 하늘 밖에서 허공 밟는 소리를
〈조선 백암(栢庵) 성총(性聰) 선사 게송〉
“모든 것을 놓아버린 경계, 오직 당신만이 홀로 산속에 있습니다. 풀벌레 소리도 잠들어 버리고 달빛만 괴괴히 비칩니다. 당신도 그저 달빛을 받으며 앉아 있을 뿐, 자신이 있다는 것마저 잃어버린 듯합니다. 너무나 고요해서. 선정의 삼매에 젖어버렸습니다. 자연 속에 조용히 묻혔습니다. 아무런 생각도 없는 가운데 조용히, 아주 조용히 들려오는 천상의 노래 소리를 홀로 듣고 있습니다. 기`가 막힙니다. 홀로 듣기에는 아깝습니다. 그러나 이 순간 세상 사람들은 잠들어 버렸습니다. 누구 하나 깨어 있다면 더불어 즐길 터인데…. 참 아깝습니다.”
중국 선사들의 게송에 대해서도 촌철살인의 해설을 하고 있다.
“작년의 가난은 가난도 아니었고
금년의 가난함이 비로소 가난일세
작년에는 송곳 하나 꽂을 땅도 없었으나
금년에는 그 송곳마저 없다네”
〈중국 향엄지한(香嚴智閑) 선사 게송〉
“가진 것 하나 하나 버리다 보니 이제는 바릿대와 입은 옷이 전부랍니다. 이 정도면 마음도 다 비워버렸습니다. 송곳도 없는데 송곳 마련할 전대(錢袋)가 있을 수 없습니다. 평생을 선사로 지냈으나 세상 떠난 뒤 저금통장이 많이 나와서 상좌들이 쌈박질하는 세태에서 볼 때 선사의 면모가 눈에 선합니다. 아마도 푸른빛이 뚝뚝 떨어지는 눈을 가지셨겠죠. 과연 송곳 꽂을 땅도 없고 이제는 송곳마저 없는 자유인이 계시다면 그분은 청복淸福을 받으셨습니다. 얼마나 홀가분하겠습니까? 걸림 없는 삶이라 대도大道를 걷는 걸음이 가볍습니다.”〈게송 해설 요약〉
팔순에 접어들어 인생에 대해 초연하고 초탈한 경지에 이른 듯한 역자는 선사들의 경지에 이르러 이들과 법거량((法擧量)을 나누는 긋하다.
껍질 벗고 한계마저 초월했으니
허공이 부서짐에 그 흔적마저 없네
나무사람 박수치며 노래 부른다 릴∼날라
돌말을 거꾸로 타고 유유히 돌아가네”
〈조선 허정(虛靜) 법종(法宗) 선사 게송 해석〉
“올 때 잘 와야 하고 갈 때 잘 가야 합니다. 오고 감이 사바에서의 전부입니다. 어찌하여 잘못 왔다가는 업연(業緣)의 늪 속에서 헤매다가 평생을 보내고 맙니다. 그러나 갈 때 기분 좋게 가는 길이 있습니다. 선사처럼 평생 일궈 놓았던 것을 연기처럼 날려 보내고 육신마저 부숴버렸으니 남은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너무도 가볍습니다. 그래서 노래 부릅니다. 나무 옷 입고 “닐 날라”하며, 그리고 돌로 만든 부도 속으로 육신을 보냅니다. 이렇게 죽기 전에 모든 것을 알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현재에 살면서 미래를 알면 행복한 것입니다. 그것을 깨달음이라 하지요.”
무엇보다도 한권의 책이 무명(無明)에 헤매는 수행자들에게 한 줄기 빛이 되기를 바라는 역자는 때마침 역자는 팔순을 맞아 의미를 더한 듯하다. 그래서 가족을 향해서도 “평생 철없는 남편을 묵묵히 뒷바라지 해준 아내 김영선 여사와 사랑하는 아들 양지석, 며느리 이희인에게도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고 밝히고 있다.
역자 양범수(梁汎洙) 씨는 1980년 5월부터 1994년 4월까지 불교신문 근무했으며 취재 차장과 부장을 거쳐 편집국장을 역임했다. 역서로 《금강경》, 《부모은중경》, 《아미타경》, 《신주팔양경》, 《관세음보살보문품》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