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 하나를 꼽는다면 그것은 단연 출애굽 사건일 것이다. 고대 이스라엘 백성이 야웨 한 분만 섬기고, 안식일을 지키고, 나그네를 학대하지 않아야 하는 근거는 바로 야웨 하나님이 그들을 이집트에서의 노예 상태에서 구원하셨기 때문이라고 설명된다. 이처럼 출애굽은 그야말로 이스라엘의 정체성과 사회 윤리의 핵심 토대였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이스라엘의 출애굽 사건은 바빌로니아 유배 생활을 끝내고 팔레스타인으로 되돌아가는 회복과 구원의 패러다임으로 기능하는 동시에 신약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죄로부터의 해방에 대한 가장 강력한 심상이다. 그러나 특별히 20세기 이후 많은 학자가 나일 삼각주와 시나이반도에서 성경에 묘사된 대규모 출애굽 사건이 일어났음을 암시하는 고고학적 증거가 발견되지 않는다며 출애굽의 역사성 자체를 부정하고 있는 것이 구약신학계의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 책의 편집자는 대체로 복음주의의 테두리 안에 속하는 학자들을 모아 출애굽의 역사성과 연대 및 신학적 함의에 관해 학자들이 열띤 토론을 벌이게 한다. 이 학자들은 대체로 출애굽의 역사성 자체는 인정하되, 그 사건이 일어난 연대와 양상에 대해서는 의견을 달리한다. 즉 기원전 제2 천년기의 어느 때 훗날 이스라엘이 되는 집단이 이집트에 거주했고, 그들이 이집트를 떠나 가나안 땅에 정착했다는 것이다. 비록 그 시기와 규모, 방법 등이 구약성경에 기록된 바와 다를지라도 말이다.
이 책의 기고자들의 입장을 간략히 요약하자면 먼저 스콧 스트리플링은 이스라엘 자손이 이집트에서 나온 지 사백팔십 년 되는 해이자 솔로몬이 이스라엘 왕이 된 지 4년째에 성전 건축을 시작했다는 기록의 문자적 해석을 강조하며 출애굽이 기원전 15세기에 일어났다고 주장한다. 그는 고대 문서와 고고학 자료 역시 이른 시기의 출애굽, 즉 기원전 15세기의 출애굽을 뒷받침한다고 주장한다. 한편 출애굽의 규모에 관해서는 구약성경에서 후에 “1,000”을 의미하게 된 “엘레프”라는 단어가 “군대의 단위”를 의미할 수 있다면서 한 단위가 1,000명이 아니라 10명 내외로 이뤄졌다면 출애굽의 규모는 민수기에 기록된 장정 60만 명보다 훨씬 적었을 것이라고 추론하며, 이 적은 숫자는 당시의 이집트와 가나안 땅의 인구, 대규모 정착의 흔적이 발견되지 않는 점 등에 부합한다고 주장한다. 이 점에 관해서는 이 책의 기고자 모두 동의한다.
제임스 K. 호프마이어는 열왕기상에 기록된 480년이라는 기간을 문자적으로 읽어서는 안 되며 그것은 아시리아 학자들이 말하는, “먼 과거에 관련된 근사치”인 디스츠안가베일 수 있다며 출애굽 시기를 기원전 13세기로 추정한다. 그는 스콧 스트리플링이 이른 출애굽의 증거로 제시하는 증거들에 대한 다른 해석을 토대로 오히려 그 증거들이 늦은 출애굽, 즉 기원전 13세기의 출애굽을 뒷받침한다고 주장한다.
피터 파인만은 출애굽의 연대에 관해서는 대체로 제임스 K. 호프마이어의 견해에 동의하지만, 출애굽의 주체에 관해 한때 이집트를 지배했던 힉소스인들이 출애굽을 주도했다고 주장하며, 게리 A. 렌즈버그는 출애굽이 기원전 12세기에 일어났다고 본다.
위 기고자들과 달리 로널드 헨델은 이집트에 거주하던 가나안 출신 사람들뿐만 아니라 가나안 땅에 거주하던 가나안인들도 모두 이집트의 노예였다고 주장하면서 이집트에서 탈출한 소규모 집단과 가나안 땅에 있던 일부 집단이 노예로서 이집트인들에게 압제를 당했던 공통의 문화적 기억을 토대로 이스라엘이라는 민족으로 통합되었다고 주장한다.
이 책은 일반 교회 현장에서 강조하는 출애굽기나 오경 또는 구약성경의 내용 자체를 다루는 부분은 많지 않은 반면, 이집트를 포함한 고대 근동의 역사와 문화, 고고학, 금석학 등에 관한 학문적 내용이 많이 등장하기 때문에 이런 분야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라면 책의 내용을 이해하기가 다소 벅찰 수 있을지도 모른다.
사건이 발생한 시기로부터 오래 뒤에 기록된 성경 자체로부터, 성경이 기록되고 나서 오래 지난 오늘날 과거에 정확히 무슨 일이 어떻게 일어났는지를 재구성하기란 결코 만만치 않은 작업일 것이다. 이 책의 기고자들은 그런 문제에 대해 어떻게 역사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지, 자신의 입장을 고수하면서도 다른 견해를 가진 사람들과 어떻게 대화할 수 있는지에 관한 좋은 모범을 보여준다.
출애굽의 역사적 실체 재구성이나 특정 주제에 관해 의견을 달리하는 학자들의 논쟁 방식에 관해 관심이 있는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이 주제와 관련된 다양한 이슈를 실제로 접하는 묘미와 함께 기독교 신앙의 한 근간이 되는 출애굽 사건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에 관해 지평이 크게 확장되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