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차 교육과정 국정 고등학교 국사 교과서는 “1910년대에 가장 활발하게 활동한 독립운동단체는 광복회”라고 소개했습니다. “3 ㆍ 1운동 전야에 세인을 놀라게 한 장승원 사살”(국가보훈처, 〈알기 쉬운 독립운동사〉) 의거 등을 펼친 광복회를 두고 조선헌병대사령부는 조선총독에게 ‘3 ㆍ 1운동의 배경은 광복회의 활동’이라는 요지의 평가보고서를 제출했습니다. 바로 그 광복회가 1915년 8월 25일, 다른 곳 아닌 바로 대구(!) 달성토성土城에서 결성되었습니다. 광복회 투쟁을 처음부터 끝까지 주도하고 독립 후에도 재건광복회 운동을 이끌었던 우재룡 독립지사의 흉상과 공적비가 대구 달서구 두류공원 ‘인물동산’에 세워져 있습니다.
대구사람들은 “해방의 그날까지 끝없는 항일 투쟁”을 전개했습니다. 일본제국주의가 마지막 단말마의 폭악 행위를 일삼던 1941년 8월 대구사범학교 학생 ㆍ 교사 ㆍ 졸업생 ㆍ 학부모 들이 한꺼번에 300여 명이나 구속되었을 만큼 대구인들의 독립운동 의지는 끝없이 강렬했습니다. 대구사범학교 학생독립운동 기념탑도 두류공원 ‘인물동산’에 건립되어 있습니다.우재룡 지사 흉상과 공적비, 대구사범학교 학생독립운동 기념탑 옆에는 대구가 낳은 민족문학가이자 독립유공자인 이상화 시인과 현진건 소설가의 시비와 문학비도 있습니다. 선열들의 독립운동정신을 이어받아 1960년대 자유당 독재 때 전국 최초로 민주화 시위를 일으켰던 대구 학생들의 2 ㆍ 28기념탑도 있습니다. 그런 뜻에서, 대구 독립운동 유적 답사의 출발점은 달서구 두류공원 ‘인물동산’이 가장 적절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대구 독립운동 유적 답사를 달서구와 남구 지역에서 먼저 실시하는 까닭을 말씀드렸습니다. 이는 바꿔 말씀드리면 동구, 북구, 중구, 수성구, 달성군, 군위군 지역의 독립운동 유적 답사에 도움이 될 만한 책도 앞으로 펴내겠노라 약속을 미리 밝힌 것입니다. 이렇게 지역별로 분권을 해서 출간하는 까닭은 대구 전역의 독립운동 유적을 한 권에 담는 경우 600∼700쪽을 넘어 읽기에도 들고 다니기에도 어렵게 되기 때문입니다.
독자들의 이해와 정서적 감동을 돕기 위해 곳곳에 소설 기법의 해설을 도입했습니다. 쓰기가 일반 설명문에 견줘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힘들었지만, 그래도 집필을 마치고 나니 스스로 ‘잘했다!’ 싶어 흐뭇하게 느껴집니다. 아무쪼록 이 책이 대구 독립운동 유적 답사에, 나아가 우리 사회에 건강한 시민정신이 확산되는 데 보탬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저자 서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