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예술은 우리가 진실을 깨닫게 하는 거짓말이다.” _파블로 피카소
진실을 밝히는 미술과 법에 얽힌 25가지 불꽃논쟁들!
이 책은 크게 3개의 챕터로 구성되어 있다. 첫 번째 챕터인 [제1법정]에서는 인간의 존엄과 가치, 행복추구권, 생명권, 노동권, 표현의 자유, 사법의 공정성 등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 및 기본원리에 얽힌 다양한 이야기들을 거장들의 미술작품들을 통해 풀어냈다. 두 번째 [제2법정]에서는 민ㆍ형사상 법률관계를 역시 미술작품들과 엮어냈다. 소더비와 크리스티의 담합행위, 위작에 담긴 사기와 착오의 법리, 주취감형과 형법상 ‘원인에 있어서 자유로운 행위’, 성폭력을 미화한 명화들의 민낯 등 인간의 위선이 빚어낸 갈등과 부조리를 리걸 마인드에 기반해 분석했다. 이어 마지막 챕터인 [제3법정]에서는 저작인격권, 추급권, 예술과 음란의 경계, 화가들의 결사의 자유에서 태동한 미술사조, 문화재 반환 등 예술법 분야의 핵심 주제들을 심도 있게 다뤘다.
ㆍ그림에 담긴 기본권의 역사를 소환하다
이 책은 프랑스 출신 인상파 화가 카유보트의 〈마루를 깎는 사람들〉로 시작한다. 이 그림에서 저자인 법학자는 헌법상 ‘일할 권리’ 즉 노동권을 소환했다. 이어 이탈리아 화가 펠리차의 〈제4계급〉에서 노동3권인 단결권과 단체행동권, 단체교섭권을 설명한 다음 산업혁명 이후 대량생산체제가 어떻게 노동 착취에서 노예제로 이어지는지를 터너의 그림을 통해 풀어냈다.
‘메멘토 모리(법학이 죽음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에서는 클림트의 〈삶과 죽음〉을 통해 존엄사(안락사)의 법리적 해석 및 입법적 대안을 제시했다. 미국 화가 휘슬러의 〈검은색과 황금색의 야상곡-떨어지는 로켓〉이란 추상화에서는 ‘명예의 보호’와 ‘표현의 자유’ 간 법익 충돌 문제를 19세기 말 영국 법원이 내린 판결과 함께 살펴봤다. 아울러 스페인 화가 소로야의 〈슬픈 유감〉에서 장애인 등 소외계층에 대한 ‘차별’이 역사적으로 어떻게 자행되어 왔는지 규명하는 등 그림에 담긴 헌법상 기본권의 함의를 되짚었다.
ㆍ인간의 위선을 제소한 그림들
기망과 불공정, 불법과 폭력이 고도화될수록 법학자들의 법리 해석과 연구도 진화한다. 법학과 인간사(人間事)의 불편한 동행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미술사를 들여다보면, 화가들도 아름다운 것들만 그린 건 아니다. 젠틸레스키는 유디트가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따는 장면을 적나라하게 그렸고, 이를 바라본 법학자는 성폭력과 보복의 역사를 냉철하게 진단했다. 15세기 플랑드르 화가 다비트가 그린 〈캄비세스의 재판〉에는 뇌물의 유혹에 빠진 판사 시삼네스의 참혹한 처형 장면이 생생하게 묘사됐다. 이는 곧 법학자의 뇌물에 대한 법리 해석으로 이어진다. 물론 다비트가 그림을 통해 전하려는 메시지는 지금도 유효하다.
이밖에도 소더비와 크리스티의 담합, 위작에 얽힌 미술계의 부조리, 천문학적 호가의 걸작들이 돈세탁의 표백제가 된 사연, 세계대전으로 사라졌던 홀로코스트 아트의 소유권 분쟁 등 미술시장에 만연한 위선과 탐욕의 민낯이 법학자의 형형한 눈을 만나 재해석됐다.
ㆍ법학과 미술의 교양 있는 조우
1884년 화가 사전트는 〈마담X〉란 그림에서 모델 고트로 부인의 드레스 어깨끈 한쪽을 흘러내리게 그렸다가 천박하고 음란하다는 세간의 혹평에 추방되다시피 파리 미술계를 떠났다. 1815년 스페인 국민화가 고야는 〈옷을 벗은 마야〉 때문에 종교재판에까지 섰다. 그런데 〈옷을 벗은 마야〉는 1969년 대한민국 법정에서도 음란성 시비를 겪어야 했다. 부산의 성냥 제조업체가 마케팅 수단으로 성냥갑에 〈옷을 벗은 마야〉를 복사한 카드를 넣어 판매했는데, 이것이 남성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면서 그야말로 성냥이 ‘불티나게’ 팔렸다. 이에 검찰은 형법상 ‘음화의 제조 및 판매죄’를 적용해 기소했고, 대법원은 판결문에서 〈옷을 벗은 마야〉를 음화(淫畵)로 적시했다. 마네의 대표작 〈풀밭 위의 점심식사〉가 1883년 살롱전에서 낙선의 고배를 마신 이유도 그림 속 ‘빅토린-루이스 뫼랑’이라는 누드 여성 때문이었다. 공교롭게도 살롱전에서 1등을 한 작품은 카바넬이 그린 〈비너스의 탄생〉이다. 신화 속 여신의 누드는 예술이지만, 일반 여성의 벗은 몸은 외설로 폄하되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예술과 음란에 관한 논쟁은 21세기에도 여전히 진행 중이다. 미국 플로리다의 한 초등학교 교사가 미술사 수업에서 6학년 아이들에게 미켈란젤로의 나체 〈다비드상〉 사진을 보여줬다는 이유로 학교장이 사임하는 일이 벌어졌다. 학부모들은 〈다비드상〉을 가리켜 포르노라고 비난했다. 흥미로운 건 이 조각상은 이탈리아 피렌체 시청 앞 시뇨리아 광장에 세워져 있다는 사실이다.
이 책은 예술계에서 오랫동안 이어져온 ‘내로남불’ 스캔들을 비롯해 독점사용한 컬러의 공정성 문제, 추급권과 저작인격권에서 문화재 반환에 이르기까지 미술과 법에 얽힌 25가지 불꽃논쟁들을 100여 컷의 명화 도판과 함께 담아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