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작품에 등장하는 등장인물은 대부분이 허구의 인물이고, 실제 모델이 있다 해도 허구가 많이 섞여 있을 것이다. 그러나 소설 속에서 주바 마을을 침략해 통치했던 일본군 장교들은 모두 실존했던 인물로, 이들의 이름도 실명 그대로이다. 이 점이 작품에 진실성을 더해 준다. 소설은 이처럼 진실성을 가지고 있는 동시에 환상적인 서술도 큰 비중을 차지한다. 소설에 등장하는 파랑 칼은 황당해하거나 냉소하는 등 감정을 표현하며, 게으름뱅이 자오씨가 기르는 머리 없는 닭은 머리가 없어도 울 수 있고, 다른 닭과 싸워 이길 수도 있다. 그 외에 처녀를 욕보이는 기름 귀신, 하늘을 날아다니는 사람 머리의 모습을 한 귀신인 폰티아낙 등, 말레이시아 고유의 비현실적인 상징물이 등장해 소설의 환상적인 분위기를 더욱 짙게 만든다. 여기에 마을 사람들이 늘 아편을 피우면서, 혹은 아편을 피우지 못해서 금단증상 때문에 수시로 보는 환상까지 더해져 환상과 실제를 완전히 구별하기 힘든 기묘한 느낌을 준다.
이런 환상적인 서사에 더욱 큰 힘을 실어주는 것이 바로 동물에 관한 서술이다. 전작에서도 열대 우림의 여러 동물을 등장시켰던 것처럼 이 작품에서도 작가는 큰 까치, 원숭이 등 각종 동물을 등장시켰는데, 그 가운데 비중이 가장 큰 것은 단연 멧돼지, 정확하게는 보르네오에 서식하는 보르네오 수염돼지다. 이 멧돼지들은 일본군이 마을을 침략하기 전에는 마을 전체의 가장 큰 적이었다. 한편, 마을 사람들은 이 멧돼지의 새끼를 잡아다 길러 생계의 수단으로 삼기도 했다. 전쟁이 일어나기 전에도 멧돼지들은 강을 건너, 마을로 쳐들어왔고 전쟁이 끝난 후에도 마찬가지로 마을을 습격했다. 이 멧돼지들은 보르네오섬 대자연의 일부이고, 마을 사람들이 극복해야 할, 혹은 더불어 살아가야 할 대상이다. 작가는 소설 속에 끊임없이 등장하는 멧돼지들의 행동을 있는 그대로 묘사해, 이를 통해 작품의 기본적인 분위기를 구축하였다.
등장인물들은 인간성과 부정직함 그리고 약점과 선함을 공유한다. 소설은 종종 판타지로 전환되는데 사람들의 마음 속에서 일어나는 일이 현실만큼 중요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태평양 전쟁 때의 보르네오 섬에서 벌어지는 인간의 본성에 대한 탐구가 인상적이다. 이 소설은 우리에게 문명화 과정에서 피와 잔혹함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는 점을 다시 확인시켜준다. 따라서 삶과 죽음, 사람과 짐승, 선과 악의 관계를 재구성하게 만든다. 음험한 문학적 상상력과 역사적 진실이 만나면 어떻게 되는지 그 결과가 이 책에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