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 거의 모든 것의 기원
인류의 조상이 먹을거리를 찾고, 잡고, 나누고, 빼앗거나 지키기 위한 의사소통이 필요했기 때문에 언어가 발생했다(불을 사용해 음식을 익혀 먹으면서 소화에 필요한 에너지를 절약할 수 있게 되어 뇌의 용량이 커지기도 했다). 기원전 6000년, 메소포타미아 농민들은 홍수를 최대한 극복하고 수확량을 늘리기 위해 둑을 조성하고 관개시설을 만들었다. 그 일을 더 잘하기 위해 그들은 더 큰 조직으로 모여야 했고 그 조직은 곧 제국이 되었다. 제국은 식량 때문에 생겼다. 지렛대, 화살, 바퀴, 농사, 목축 등 그 이후에 이루어진 혁신들도 먹어야 하는 필요성 때문에 가능했다.
식량 때문에 만든 도시국가, 제국, 국가에서 황제와 왕들이 통치하기 위해 먹었다. 어떤 황제는 한 번 식사에 스물두 차례 음식이 나오도록 했고, 어떤 왕은 200명의 신하들이 말 한마디 못 하고 선 채로 지켜보는 가운데 혼자서 식사를 했다. 권력자들은 과시와 포섭, 외교를 위해 연회를 베풀고 만찬을 열었다.
수천 년 동안 민족의 정체성은 영토, 풍경, 그 땅에서 자라는 식물과 동물뿐 아니라 조리법과 식사 예절로 정의되었다. 또한 수천 년 동안 음식은 대화의 규칙과 사회관계의 구조를 정립했다. 신과 저녁을 먹을 수 있는 사람, 가족과 점심을 먹을 수 있는 사람, 먹을 것을 구걸하는 사람, 먹을 것을 입에 대지 않는 사람들이 있었다. 또 음식을 만드는 사람과 다른 사람에게서 얻는 사람이 있었다.
인류는 저절로 난 풀과 과일을 찾으러 떠돌아다녔고, 작은 동물에서 좀 더 큰 동물까지 사냥했다. 그러는 동안 먹어도 되는 풀과 독이 있는 풀을 구분하게 되었고, 협동을 하게 되었다. 곡물을 키우게 되면서 정착을 했고, 어떤 동물들을 길들여 키워 먹었다. 더 많은 먹을거리를 얻을 수 있도록 처음에는 신에게, 나중에는 과학에 의존했다.
이제 음식은 주방이 아니라 공장에서 생산된 ‘제품’이 되어 전 세계인의 식탁에 올라간다. 과거에는 먹지 못해서 죽었는데, 이제는 너무 먹어서 죽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과거에는 종교가 먹어도 되는 음식과 먹으면 안 되는 음식, 먹으면 안 되는 때를 정했는데, 이제는 식품 회사의 광고와 영양학이 어떤 음식은 권장하고 어떤 음식은 금지한다. 종교의 힘은 여전하지만 채식주의 같은 새로운 윤리에 따라 스스로 금기 음식을 정하는 사람들도 생겼다.
미래에도 지금처럼 먹을 수 있을까
아탈리는 수만 년에 걸친 인간의 역사를 정리하며 “음식을 먹는 것은 그 어떤 인간 활동보다 역사의 중심에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런데 이렇게 과거를 아는 것은 미래를 이해하고 대비하기 위해서다. 음식의 역사가 새로운 도전에 직면해 있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풍부하고 다양한 천연 식품을 먹어왔는데, 왜 인간과 자연에 해로운, 규격화되고 단일화된 가공식품을 전 세계인이, 특히 가난한 사람일수록 먹게 되었을까? 다양한 주제로 대화를 이어가던 식사 자리가 사라지고 혼자 아무 데서나 아무 말 없이 밥을 먹는 사람들이 계속 늘어나면 인간관계는 어떻게 변할까? 환경 파괴와 기후 변화로 촉발된 새로운 식량 사정을, 늘어나는 인구를 먹여야 할 필요성을, 과학기술은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미래학자인 자크 아탈리가 음식의 역사를 탐구한 이유는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하고자 한 것이다. “과거를 해박하고 자세하게 알지 못하면 현재를 설명할 가치 있는 이론도, 미래를 예측할 가치 있는 이론도 나올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앞으로도 우리의 식생활을 주도하고 싶다면, 건강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싶다면, 그리고 인류의 생존이 달린 자연을 구하고 싶다면, 이 책이 설명하는 음식의 역사를 이해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