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료도 모양도 가지가지
집에는 가혹한 자연환경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애쓴 지혜가 녹아 있다. 『집으로 가득찬 책』은 이런 지혜를 잘 보여 주는 전통적인 집과 그것을 확장하는 새로운 시도를 한 비슷하고도 다른 집들을 나란히 비교하며 들려준다.
집을 짓는 가장 오래된 전통은 가까운 곳에서 구하기 쉬운 재료로 보온과 단열에 적합한 형태로 짓는 것이다. 혹독하게 추운 캐나다 북쪽과 그린란드의 선주민 이누이트들은 눈을 이용해서 안에서 불도 피울 수 있는 돔 모양의 튼튼한 집을 지었다. 여기에서 영감을 받은 리처드 벅민스터 풀러라는 건축가는 가벼운 삼각형 나무를 조립하여 돔 형태의 현대적 조립 주택을 지었다. 6,000년 전에 진흙과 짚을 반죽해 만든 흙벽돌 어도비는 지금도 가장 인기 있고 많이 쓰이는 재료이다. 1950년대에는 벽돌을 활용하여 50여 가지의 건축 양식을 담은 실험 주택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시리아와 튀르키예, 그리고 두 나라에서 4,000킬로미터나 떨어진 카메룬의 집은 모두 원뿔 모양이다. 왜일까? 진흙으로 원뿔 모양으로 집을 지으면 열기가 위로 빠져 뜨거운 열기를 식힐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무덥고 습하며 태풍이 자주 오는 사모아 제도 사람들은 지붕과 기둥만 있는 집을 지었고 이는 미국의 ‘글래스 하우스’에 영감을 주었다.
『집으로 가득찬 책』은 이채로운 재료로 지은 집들도 보여 준다. 일본 고베에 큰 지진이 일어났을 때 빨리, 재활용이 가능한 종이상자를 주재료로 발명된 집은 북유럽의 통나무집의 모양을 본떴다. 지금은 골칫거리가 되었지만 1960년대에 플라스틱이 처음 발명되었을 때에는 가볍고 다양한 모양과 색채를 낼 수 있어 우주선을 닮은 조립식 주택이 만들어졌다. 재료가 다양해지자 조립 주택, 캠핑카와 휴대용 집 등 이동이 쉬운 집도 잇따라 등장하게 된 것이다.
전통에 따르거나 역사의 변화에 따르거나
집은 공동체의 문화적 전통과 사회 변화에 따라 더욱 다양하고 새로워졌다. 캄보디아의 크룽족이 사는 지역에는 높이 솟은 오두막이 많다. 여자아이가 사춘기가 되면 높은 오두막을 지어 주는 오래된 전통 때문이다. 이런 풍습은 초호화 아파트 꼭대기층의 팬트하우스에서 파티를 즐기는 오늘날의 문화와 닮아 있다. 스코틀랜드에 18세기에 지어진 ‘파인애플’이라는 별장은 지붕이 거대한 파인애플 모양이다. 이는 버지니아 선원들이 항해 후에 집에 돌아왔다는 표시로 벽에 파인애플을 걸어 두는 풍습을 본 따 귀향한 던모어 백작 존 머리가 장난 삼아 지은 집이라고 한다.
산업화와 도시화의 물결은 집의 모습도 크게 바꾸었다. 19, 20세기 초에 영국의 도시에 빼곡하게 들어선 백투백 하우스는 도시로 몰려드는 사람을 수용하기 위해 지은 지저분하고 불편한 공동주택이었다. 버밍엄에 그 시대상을 보여 주는 박물관으로 남아 있다. 지금은 스웨덴을 상징하는 ‘붉은’ 시골집은 팔룬이라는 도시의 광산에서 나온 폐기물로 만든 페인트로 색칠한 집으로, 실은 가난한 시절의 산물이라는 것이 이채롭다. 뉴욕에 많은 주철 건물은 빠르게 싼 값에 지을 수 있는 건물로, 뉴욕이 대도시로 팽창하던 시절에 많이 지어졌다. 뉴욕이 가난해지고 거리가 허름해지자 빈 건물이 되었는데, 예술가들이 정착하여 집과 작업실로 쓰게 되자 유행을 선도하는 고급 아파트로 새롭게 변신하였다는 사연도 흥미진진하다. 도시 재생이라는 중요한 과제의 사례이기도 하다.
집을 예술로, 상상을 현실로 만드는 건축가들
『집으로 가득찬 책』은 상상을 현실로 만들어 낸 건축가들과 보통 사람들이 형편에 따라 집을 짓고 가꾸기 위해 노력한 감동적인 사연들도 들려준다.
일본 교토에는 사람 얼굴을 꼭 닮은 ‘페이스 하우스’가 있다. 거리에 활기를 불어넣으려는 일본 건축가의 재치로 만들어진 것이다. 미국에는 신발 가게를 홍보하려고 신발 모양으로 만든 유머러스한 ‘슈 하우스’가 있다. 곡선 형태의 집에서 사람들의 아이디어와 감정이 더 자유롭게 발산될 수 있다고 믿은 헝가리 건축가 언티 로버그가 지은 프랑스의 팔레 뷸(거품 궁전)은 창문과 벽, 문이 모두 동글동글하여 이름 그대로 거품 같기도 하다. 건축가 앙리 무에트와 예술가 피에르 세케이가 설계한 메종 베를리도 식물과 꽃을 닮아 자연에 가까운 집이다. 문 닫은 시멘트 공장을 도서관과 전시장까지 갖춘 멋진 집으로 변신시킨 스페인 디자이너 이야기도 흥미롭다.
건축가뿐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도 저마다 집을 짓고 가꾸기 위해 애썼다. 집 지을 돈이 없어 빈 술병에 모래를 채워 집을 지은 노인의 발상은 그로부터 몇십 년 뒤 플라스틱 병에 모래를 채워 집을 지은 아프리카 한 마을 사람들의 생각과 신기하게도 같다. 물가가 비싼 홍콩에는 아파트를 몇 개로 쪼갠 딱 누울 만큼의 ‘관집’이 있고, 중국인 리우 링차우가 해고된 뒤 60킬로그램인 휴대용 집을 이고 걸어 5년 만에 귀향했다는 이야기는 가난 속에서도 삶을 이어가는 의지가 느껴져 뭉클하다. 세계적인 디자인 그룹 ‘멤피스 그룹’에 영감을 준 인도의 마을과 부르키나파소의 티에벨레 마을은 주민들의 손으로 꾸민 마을이 작품처럼 아름다울 수 있음을 보여 준다.
책을 읽다 보면 집이란 자연과 문화, 전통과 혁신이 함께 하는 매력적인 공간이라는 것임을 깨닫게 될 것이다. 현대의 주요한 건축가와 디자인 흐름 등을 알게 되는 것은 덤이다. 건축의 특징과 건축가와 주민들의 에피소드를 그린 멋진 구도의 아름다운 그림을 감상하는 것도 『집으로 가득찬 책』의 큰 매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