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작고 사소한 것들을 그냥 지나치지 않는 마음
그곳에 담긴 아름다운 상상의 세계
「언니의 안경」은 책을 읽는 게 너무 좋아서 안경이 되어 버린 언니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매일매일 방 안에 틀어박혀 책만 읽던 고등학생 언니가 갑자기 안경이 되다니. 엄마, 아빠, 동생은 놀라고 어쩔 줄 몰라 하지만 언니는 안경이 되어도 책만 읽을 수 있다면 아무렇지도 않다. 안경다리를 이용해 책장을 넘기며 독서 삼매경에 빠진 언니. 가족들은 이제나저제나 돌아오길 기다리지만 언니는 묵묵히 책을 읽고 급기야 소설을 써서 등단까지 한다. 십 년의 세월이 지나고 열 권의 책을 내도록 언니는 여전히 안경이고, 점차로 말수가 줄어든다. 어느 날 갑자기 벌레가 되어 버린 그레고리 잠자(카프카의 「변신」)와 현대의 은둔형 외톨이를 떠올리게 하는 언니는 스스로 만족스러운 삶을 사는 것 같지만 슬픔과 안쓰러움을 피하기 어렵다. 그래서 동생이 안경을 통해 바라본 세계가 점차 빛을 잃어가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몽당연필에게」에서는 과학실 폭발 사고로 죽은 아이가 교실 책상 서랍 속에서 연필의 모습으로 살고 있다는 으스스한 이야기이다. 기다란 새 연필이 몽당연필이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단어와 문장과 이야기가 쓰였을까. 죽은 아이의 혼이 깃들어 있긴 하지만 몽당연필도 연필이다. 그래서 몽당연필은 소멸하기 전 마지막으로 누군가에게 편지를 쓴다. 「나 대신 스마트폰」은 일정 관리 어플이 주인공을 돕다가 결국은 과도하게 통제하고 제멋대로 구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스마트폰의 ‘나 대신’ 앱이 주인공 상우의 선택과 책임을 대신하려고 나서면서 도리어 주인공의 자율성과 가능성을 침해하는 것이다. 다행히도 상우는 과학만능주의에 빠지는 대신 자기 자신의 진짜 주인이 되는 길을 찾는다.
이처럼 『내 책상 위의 비밀』에 담긴 이야기들은 일상적인 사물에 생명력을 부여해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또 모두 1인칭 화자를 내세워 슬픔과 기쁨, 안타까움과 불안 같은 화자의 감정에 집중하게 만든다. 지우개나 몽당연필처럼 서랍 속에서 잊혀진 채 존재하는 아주 작은 사물들에게서 이야기를 찾아낸다는 것은 보통 여린 마음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이 작품에는 아주 작고 사소한 것들도 그냥 지나치지 않는 마음, 소중히 여기고 다정히 바라보는 태도가 담겨 있다. 한 편 한 편 읽어 가노라면 나를 둘러싼 세상이 조금 더 따뜻하고 아름답게 느껴질 것이다. 공책 위에 또박또박 글씨를 쓰는 일, 지우개로 깨끗이 지우는 일, 책을 읽고 시를 감상하는 시간, 옆 사람을 가만히 관찰하고 이해해주는 일 등 내향적이지만 다정한 움직임으로 가득한 소설이다.
■ 내용 소개
『내 책상 위의 비밀』은 일기장, 안경, 스마트폰, 몽당연필, 서랍 속 지우개 같은 일상적인 물건을 소재로 아름다운 상상의 세계를 펼쳐 놓는다. 「물음표 일기장」은 주인공이 써놓은 일기장 속 마침표가 모조리 물음표가 되거나 곳곳에 말줄임표가 생겨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다. 「언니의 안경」은 책 읽기를 너무 좋아한 나머지 하루아침에 안경으로 변신해 책만 읽고 사는 언니를 바라보는 동생의 이야기다. 「몽당연필에게」는 교실 책상 서랍 속에서 발견한 몽당연필이 놀라운 능력과 마음 아픈 사연을 갖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나 대신 스마트폰」은 ‘나 대신’이라는 일정 관리 앱을 사용하다가 문제에 부딪히는 주인공의 이야기다. 「지우개 시인」은 학교 교무실 서랍 속에 있던 지우개가 시인의 꿈을 키워나간다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다섯 편의 단편 은 모두 작고 일상적인 물건들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다정하게 귀를 기울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