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에로티시즘 문화
현장 취재에 생생히 담겨
‘에로티시즘 시각예술사’라는 파격적인 제목과 달리 책 내용은 에로티시즘에만 매몰되지 않는다. 인류 시각 예술사를 전반을 다룬다. 시각 예술품이 담아낸 시대문화상은 물론 후대 문화사에 미친 영향도 살펴보아 책은 모두 8장으로 아주 방대한 분량을 다뤘다.
1장 선사시대 시각 예술 출발, 2장 문자 시대 시각 예술, 3장 그리스 심포지온 시각 예술, 4장 그리스로마 신화 시각 예술, 5장 로마 카르페디엠 시각 예술, 6장 중세 종교시대 시각 예술, 7장 르네상스 누드 예술 부활, 8장 근현대 누드 예술의 진화까지. 총 8장에 걸쳐 에로티시즘 예술을 시대 흐름에 따라 통사적으로 담았다.
독자들은 구석기시대 여성 인체와 여성 상징, 심지어 임신과 출산 과정까지 묘사한 비너스 조각부터 만난다. 이어 농사 문화 이후 풍요와 다산을 기원하는 남신과 여신의 정사 조각에 놀란다. 저자의 오랜 기자 경험을 살린 충실한 현장 취재와 묘사 덕에 독자들은 직접 현장을 탐방하는 것처럼 시각 예술사 속으로 빠져들고 만다.
5천여 년 전 문자가 등장한 뒤로는 이름을 갖게 된 여신의 누드와 은밀한 사랑 이야기를 듣는다. 문자와 함께 등장한 권력 시대. 남성 지배자의 권위를 상징하는 조각과 남성 중심 관음주의가 짙게 밴 에로 예술을 체험한다. 심지어 남성 성적 판타지 극대화를 위해 제작된 고대 이집트 포르노의 세계도 접한다.
고대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생활과 종교, 철학에 담긴 에로티시즘
에게해에서 꽃핀 미노아와 미케네 사회의 화려한 채색화 속 여신과 여인을 3500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만난다. 2500년 전 그리스 고전기 등장한 남녀 실물 크기 누드 조각에서 현대 조각예술의 원형도 만날 수 있다.
플라톤의 저서 『항연』(심포지온) 속에 감춰진 심포지온의 진실에 그리스 문화를 다시 생각한다. 학구적 구술문화가 중심이었다고 여겼던 심포지온이 아니다. 직업여성과 질펀했던 만남은 물론 남성 동성애로 뜨거웠던 심포지온의 새로운 면모가 시각예술 유물을 통해 적나라하게 펼쳐진다. 로마시대는 어떨까. 성적 수치심을 벗어던진 카르페디엠 문화상도 에로틱 시각 예술품 속에 오롯하다. 외설이라는 단어가 빠져버린 로마 문화가 고스란히 남아 후손을 놀라게 한다.
중세 기독교 시각 예술의 핵심, 예수 그리스도를 다루는 이미지 변화도 꼼꼼하게 살펴볼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 누드에 담긴 의미, 십자가의 표현 양식 변화에 스민 정치 사회적 맥락도 잘 읽힌다. 한국이나 중국 불교예술에서 경험하지 못한 인도와 동남아시아 누드 불교예술도 이 책에서 놓칠 수 없는 대목이다. 동서양에서 누드가 사라진 중세 인도에서 독야청청 꽃핀 에로 조각의 세계는 내용은 물론 규모에서 충격 자체다.
미켈란젤로가 부활시킨 예수 누드, 보티첼리가 되살려낸 여신 누드는 르네상스 예술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이었는지 되새겨준다. 이후 만개한 누드 예술이 19세기 고전주의, 사실주의, 인상주의, 야수주의, 입체주의를 거치며 변화하는 모습도 당대 화가들의 누드 명작을 통해 살필 수 있다.
에로티시즘이란 이름에 담긴 호모사피엔스 현생인류의 삶과 문화의 궤적을 찾는 이들에게 일독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