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정부라는 제도적 맥락 형성하기
좋은 사회와 국가를 만들기 위한 국가 기구 연구는 민주적 정치 제도와 법의 지배를 중심으로 이루어져왔다. 이것은 권력을 사용하는 제도로서 관료제, 즉 정부에 대한 낮은 관심을 의미하기도 한다. 또 다른 측면에서 공무원의 역선택과 도덕적 해이에만 관심을 쏟을 때, 이 책은 정부의 질과 경제 성장이 높은 상관관계를 가진다는 정치 경제학적 연구 결과를 토대로 국가 기구 연구의 가장 유력한 관점으로 관료제를 제시한다. 또한 좋은 정부란 무엇인가를 주제로 정치와 행정의 관계가 정부의 질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경험적으로 검증하고 있다. 즉 “관료 제도의 특성은 정치 제도의 특성 못지않게 중요하다. 이 책은 정치와 행정이 근본적으로 상충 관계에 있다는 주장에 반대하며, 능력주의적이면서도 유연한 관료제가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핵심 요건은 정치와 행정의 분리
저자는 국가 기구의 역량을 결정하는 핵심 요인은 폐쇄적인 규범, 종신 고용과 급여가 아니라 바로 정치와 행정의 분리에 있다고 말한다. 정치와 행정 관계를 조직하는 방식에 따라 달라지는 인센티브(유인)에 주목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통치 엘리트의 인센티브는 그들이 일하는 제도적 맥락에 의해 형성되었다. 그렇다면 부패한 관료가 되지 않도록 탐욕과 기회주의로의 유인을 약화시킬 수 있는 맥락을 만드는 것이 더욱 중요해진다. 정치와 행정의 분리는 형식적인 구분을 의미하지 않는다. 공공 부문에서 일하는 사람인 정치인과 관료의 직무와 경력을 실질적으로 분리하는 것을 가리킨다. 저자는 정치인과 고위 공무원이 서로 다른 직업적 이해관계를 갖는 것이 단점이 아니라 장점이라 말한다. 그럼으로써 정부 행정 전반을 신뢰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역자 신현기 교수(가톨릭대 행정학과)는 옮긴이 후기에서 이 책이 제시하는 바를 간단히 정리한다. “이 책은 정치적 영향력을 배제하고, 오직 능력에 따라 관료를 선발하는 능력주의 관료제 시스템일 경우 부패가 억제되고, 낭비성 정부 지출이 감소하며, 시대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하는 행정 개혁이 더 쉽게 일어난다는 점을 실증적으로 보여준다. 이는 능력에 의해 선발된 관료들이 정치인에 비해서 도덕적 인간이거나, 행정 윤리로 무장했기 때문이 아니다. 능력주의 임용 시스템에서는 관료들의 이해관계가 정치인의 이해관계와 분리되기 때문에 서로 결탁해 이익을 공유하는 카르텔을 만들 인센티브가 없기 때문이다. 서로 분리된 책임성 통로에 따라 이뤄지는 상호 감시와 견제는 국가 기구를 활용해 사익을 취하는 부패와 합법적이지만 공적 자원을 낭비하는 비효율성을 억제한다.”
권력을 축적하고 사용하는, 또 다른 리바이어던 조직하기
정치학자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이상할 만큼이나 주류 정치학이 관료제를 고려하지 않았다고 말한 바 있다. 비교 정치학 연구는 주로 민주적 책임성과 법의 지배에 대해 연구해 왔고, 권력을 축적하고 사용하는 제도, 즉 국가의 다른 측면인 행정부와 관료제에 관심을 갖지 않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국가의 운명을 이해하기 위해서 관료 제도라고 하는 역사적 유산을 살펴봐야 한다는 것 그리고 정부 행정이야말로 오랜 역사적·문화적 발전의 결과임을 이미 알고 있다. 부패하지 않은 정부, 낭비하지 않은 정부, 유연하게 개혁하고 유능한 정부에 대한 요구가 높아지는 현실이 바로 좋은 정부를 바라는 기대와 희망을 대변하는 것이다. 국가를 구성하는 정치 제도에만 관심을 기울인다면 국가를 바라보는 단순한 관점에 사로잡히게 된다. 이 책은 리바이어던의 또 다른 측면이자 국가를 조직하는 관료 제도에 주목해, 실제로 정치인과 관료의 경력이 분리된 정부가 높은 행정 역량을 보여준다는 사실을 실증적으로 검증함으로써 이 이론에 힘을 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