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적으로 진행되는 도시화의 물결
산업화와 더불어 시작된 도시화는 20세기 후반에 전 지구화라는 거대한 흐름 속에서 전 세계로 확산되었다. 역사상 가장 큰 도시 성장을 겪고 있는 지금, 유엔인구기금에 따르면 전 세계 인구의 절반 이상이 도시에 살고 있고 2030년에는 그 숫자가 50억 명으로 증가할 것으로 추산된다.
전 세계적으로 빠르게 진행된 전 지구화와 신자유주의의 영향으로 인해 많은 세계 도시들이 비슷한 변화 과정과 문제를 겪거나 서로 연계되어 있지만, 또 한편으로 각자 다양한 문화와 역사적 배경 아래 형성된 도시 환경을 갖고 있다. 이러한 특성은 전 세계뿐만 아니라 각 국가 내에서도 마찬가지다.
많은 사람들이 ‘도시화’라 하면 높은 빌딩, 유기적으로 연결된 도로망, 주택단지, 상하수도 설비 등 외적 개발과 관련한 요소를 떠올린다. 개발 계획을 짜서 도시를 건설하고 사람을 이주시키면 도시가 만들어진다는 사고에 익숙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도시라는 공간에서 생활하고, 공동체를 형성하고, 문제를 만들고 해결하는 것은 인간이다. 도시인류학은 바로 이 부분에 주목한다. 도시라는 특정 환경에서 인간의 사회생활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 걸까?
도시인류학이란?
도시인류학은 도시라는 공간에서 인간의 사회생활이 도시적 맥락에 따라 어떤 식으로 구조화되고 어떻게 경험되는가를 다룬다. 도시적 맥락은 예를 들어 도시의 물리적 규모, 높은 인구밀도, 사회 구성원 들 간의 높은 문화적ㆍ경제적ㆍ정치적 이질성과 불평등, 개인의 익명성 같은 구체적 특징에 의해 규정된다. 또한 도시는 큰 규모와 다양성 때문에 문화적 창조성과 미적 혁신이 폭발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고, ‘군중’이란 도시적 존재가 사회적ㆍ정치적 행동을 실현하고 때로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장소가 된다. 이 같은 도시환경에서 살아가는 인간 사이의 상호작용을 연구하는 것이 바로 도시인류학이다.
도시인류학이 다른 학문과 구별되는 지점 중 하나는 연구를 할 때 민족지적 방법을 사용한다는 것이다. 인류학자도 설문조사, 인터뷰, 미디어 연구 등 다양한 도구를 사용하지만 연구 대상 지역에 직접 가 연구 대상자를 만나 대화하고 일정 기간 머물며 참여관찰을 실행한다. 이 방법의 중요한 장점은 특정 사회적 현장에서 사람들이 전개하는 생활의 역동성을 포착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사람들과 사회관계를 맥락에서 떼어 놓고 본다거나 쉽게 일반화할 수 있는 것으로 보는 게 아니라 그것의 복잡성을 온전하게 이해하고자 노력한다.
도시인류학의 기본 개념과 흐름을 전 세계의 사례와 함께 설명하는 최신 입문서
저자들은 서론에서 도시인류학의 역사적 발전 과정과 그동안 연구해 온 주제와 소재에 대해 간략하게 소개한 다음, 제1부에서는 도시라는 틀을 형성하는 공간과 장소, 도시에서의 이동, 공공 공간에 주목한다. 사람들은 도시라는 추상적 공간에 모여 살면서 구체적 의미가 담긴 장소를 만들어낸다. 공간에 인위적인 경계를 표시해 나만의, 우리만의 장소를 만드는 것이다. 이런 장소들은 감정과 기억, 열망이 가득한 곳이 된다. 작게는 가족이 사는 집, 더 크게는 건물과 동네까지 모두가 도시적 장소가 된다.
도시는 규모가 크기 때문에 사람들의 이동(mobility)이 매우 중요하다. 자전거, 버스나 기차 같은 대중교통, 자가용, 걷기 등 이동의 방법에 따라 사회관계와 개인의 정체성, 불평등의 양상이 달라지고, 그 반대의 경우도 성립한다. 특히 도시에서의 이동 방법은 국가의 정책과 연관되기 때문에 정치적 환경을 드러내는 요소이다.
도시의 광장, 공원, 쇼핑몰, 식당 등 대부분의 공간은 공공 공간이다. 도시의 공간들은 얼핏 보면 혼란스럽고 분절되어 보이지만 사실 여러 차원에서 사회적으로 조직되고 의미가 만들어졌고 만들어지고 있는 곳이다. 공공 공간을 두고 벌어지는 개별 사건들(식당의 노키즈존, 학교에서 히잡 착용 금지 등)의 기저에는 더 큰 정치적ㆍ문화적 배경의 충돌이 깔려 있다.
제2부에서는 도시경제, 소비ㆍ여가ㆍ라이프스타일, 신자유주의를 주제로 도시생활에 대해 다룬다. 도시경제를 다룬 장에서는 특히 생산에 초점을 맞췄다. 탄광촌, 공장도시 등 국가적으로 개발한 산업도시들이 탈산업화,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의 물결에 휩쓸려 쇠락한 현상, 국내 공장의 해외 이전, 삼차산업의 부흥과 플랫폼 노동이 불러온 고용 불안정성, 가사노동의 국제적 네트워크화 등의 사례를 통해 도시경제의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 사람들이 새로운 사회관계와 의미를 만들어가는 모습을 살펴본다.
도시에서 소비와 여가, 라이프스타일은 익명성과 다양성이 공존하는 도시에서 개인이 정체성을 드러내고 구별짓기를 실천하는 데 매우 중요한 수단이다. 특권층의 명품 소비, 생협 농산물 구매, 슬럼가 관광, 레게 음악과 힙합 문화의 탄생 등이 모두 이에 해당한다.
시장과 개인의 자유 및 책임을 중시하는 신자유주의는 도시 경관과 생활 방식에 큰 영향을 미쳤다. 전 세계적으로 이루어지는 자본 이동은 뉴욕, 런던, 도쿄 등 세계도시를 형성했다. 지역과 단절되고 오히려 다른 나라의 도시와 더 깊이 연결된 이러한 도시들은 지역의 계급 구성을 바꾸고 불평등을 증가시켰다. 또 20세기와 21세기에 겪은 지역적ㆍ전 세계적 금융위기는 구조조정 프로그램과 긴축 정책을 동반해 경제 안전망과 복지 시스템을 해체하고 불평등을 심화해 저소득층에 큰 영향을 미쳐 빈곤과 퇴거, 부채, 주거 불안이 만연하는 도시가 증가했다. 이에 대응해 연대와 공유에 기반한 운동이 이루어지고도 있다.
제3부에서는 도시계획, 시민권과 정치, 폭력과 보안 및 사회통제를 주제로 정치와 통치의 문제를 다룬다. 먼저 도시계획 부분에서는 식민지의 도시계획과 관리, 이상적인 도시로서의 신도시 건설, 분쟁이나 재해를 겪은 후 도시 재건 등의 상황을 계획된 도시 공간과 실제 일상생활 간의 차이에 초점을 맞춰 살펴본다.
시민권에 관한 인류학적 연구들은 도시가 사람들이 시민권을 표현하고 경험하는 중요한 정치적 장소라는 데 주목한다. 시민권은 공동체 성원으로서 누리는 권리와 배제, 사회적ㆍ경제적 평등과 연관되며, 선거할 자격이 주어지는 정치적 행동의 기본 조건이다. 많은 민족지 연구들이 정치 공동체 구성원들 사이에서 행해지는 권리의 불균등한 분배를 다루었다. 이러한 불평등은 사회운동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폭력은 도시의 사회질서를 교란하고 안전을 위협하지만, 서로 다른 사회적 행위자들이 특정 종류의 질서를 유지하고 특정 집단의 안전을 향상하기 위해 폭력을 활용하기도 한다. 인류학자들은 갱단 간, 다른 종족이나 종파 간, 정치 집단 간에 이루어지는 폭력, 치안을 담당한 경찰과 인종주의, 남아프리카 민간 보안업체의 활동과 사회적 역할 등을 통해 폭력 그리고 사회를 통제하려는 시도가 도시경관에 미치는 영향과 사회관계를 연구해 왔다.
저자들은 도시인류학이 도시라고 여겨지는 곳에서 실시하는 인류학적 연구가 아니라, ‘도시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인간의 행동 및 사고에 도시적 맥락이 어떤 매개 작용을 하는가를 다루는 인류학적 연구’라고 말한다. 도시라는 공간에서 살아가는 인간 사이의 상호작용을 분석하는 것이다. 특정 현장에 파고들어가 구체적인 삶의 모습을 통해 우리가 사는 세상을 분석하고 해석하는 작업은 학문적 활동이기도 하지만, 유동적인 현실을 파악하고 인간 사회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혀 복잡다단한 도시 문제에 비판적으로 개입하는 데 필요한 활동이기도 하다. 이 책은 독자에게 이러한 활동에 대한 도전 의식과 영감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