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꼭 있어야 해요!
추운 겨울밤, 아기 토끼 버니가 혼자 침대에 누워 있다. 자고 있어야 하지만 무슨 일인지 눈만 말똥말똥하다. 기다리는 거라도 있는 것처럼 고요함에 귀를 기울이던 버니는 기어코 몸을 일으켜 앉는다. ‘얼른 오세요, 아빠! 잘 시간이에요.’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아빠는 오지 않는다. 기다림에 지친 버니는 스르르 침대에서 내려가 살며시 슬리퍼를 신는다. 깜깜한 방 안으로 스며든 달빛은 버니의 빨간 수레를 비춘다. 버니는 수레에 하나둘 짐을 싣기 시작한다. 물, 담요, 쿠키 그리고 아빠와 버니가 좋아하는 그림이 가득 담긴 책을 챙겨 어딘가로 향하는데, 버니는 오늘 밤 잠들 수 있을까?
아빠, 깜빡했지요? 그래서 제가 왔어요!
늘 아기 같기만 하던 아이가 갑자기 어른스럽게 느껴질 때가 있다. 분명 속상해 보이는 얼굴이지만 짐짓 괜찮은 척을 하거나, 돕겠다고 꽤나 무거운 짐을 나눠 들려 하거나, 엄마 아빠의 속을 꿰뚫어 본 듯한 투명한 한 마디로 가슴 찡한 위로를 건네는 때가 있다. 『버니는 자야 해』 속 아기 토끼 버니처럼 말이다.
버니가 잠자리에 들 때면 늘 밤 인사를 오던 아빠가 어느 밤,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는다. 기다리고 기다리다 버니는 결국 직접 아빠 방으로 향한다. 버니는 곤히 자는 아빠를 보고 불편하거나 부족한 것은 없는지 살핀다. “목 말라요?” “발 시려워요?” “배고파요?” 아빠가 잠에 빠져 버니의 물음에 답을 하지 못해도 버니는 실망하지 않는다. 스스로 시간을 보내며 한 번 더 기다린다. 아빠가 버니를 알아챌 때까지 말이다. 문득 잠에서 깬 아빠에게 “버니 보러 오는 거 깜빡 했지요? 그래서 제가 왔어요.”라고 말하는 버니. 그런 버니를 보며 아빠는 말한다. “아빠도 버니가 꼭 있어야 해.”
아빠의 다정한 대답을 들으니 알 것만 같다. 버니가 어떻게 해서 기다릴 줄 아는 아이, 울지 않고 행동하는 씩씩한 아이, 보살필 줄 아는 아이, 스스로 시간을 보낼 줄 아는 아이, 다정한 말을 건넬 줄 아는 아이가 되었는지 말이다. “버니, 목 마르지 않니?” “발 시렵지는 않고?” “우리 아기 배는 안 고프니?” 버니가 잠이 든 아빠에게 했던 말들에서 아빠의 목소리가 배어나는 듯하다. 『버니는 자야 해』는 아이의 지금을 만든 것은 부모가 아이에게 보여 준 말과 행동이라는 것을 느끼게 해 주는 그림책이다.
포근한 밤맞이 그림책 『버니는 자야 해』
『버니는 자야 해』는 서툴지만 깊은 아빠의 사랑과 순수한 아이의 마음이 그려 낸 포근한 잠자리 풍경을 담고 있다. 밤 인사를 깜빡하고 잠들어 버린 아빠를 기다리던 아기 토끼 버니가 아빠에게 밤 인사를 하러 나서는 이야기이다. 회갈색의 포슬포슬한 털이 마냥 사랑스러워 보이는 버니이지만 또렷한 눈망울에서 버니의 씩씩함을 엿볼 수 있다. 부드러운 파스텔 톤의 색을 사용한 그림이 차가운 겨울밤의 공기에 온기를 불어넣는다. 또한 집 안 사물과 공간은 비교적 경계가 뚜렷하게 표현되어 있는 반면 등장인물과 그 주변을 밝혀 주는 달님은 경계가 흐트러지듯 희미하게 그려져 있어 부드러운 질감과 따스함이 느껴진다. 특히 혼자 깜깜한 곳에 있는 버니의 주변을 밝혀 주고 함께 잠이 든 아빠와 버니를 감싸 안는 달빛은 마치 엄마의 품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혼자인 것 같이 외로울 때, 기다림이 버거울 때 『버니는 자야 해』와 함께 따스한 시간을 맞이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