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뚜벅이 국문학자 강진호의 20년 발품
『여행지에서 만난 한국문학』의 출발은 연구자이자 문학평론가인 저자가 스스로의 문학 이해에 대해 성찰적으로 회의하던 데에서 비롯됐다. 오래전 저자는 문학 작품을 이해하는 일에 ‘전문가’가 되어가는 것과는 별개로 자신의 지식에 만족하지 못하는 나날을 보내곤 했다. 논리로 이해하는 것과 다른 차원의 이해가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작품을 ‘진정’으로 이해하는 경지가 아닐까. 시를 이해한다는 것은 무엇이고, 소설을 이해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그 핵심에는 작품을 파악하는 것 너머 창작자의 삶을 이해하는 것까지 포함하는 일이 있지 않을까. 저자는 많은 질문을 품고 집을 나섰다. 작품 탄생의 배경이 된 곳들을 찾아다니며 그들이 봤음직한 것들을 보고 들었음직한 것들을 들으려 했다.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그리고 꾸준히, 주말이 되면 짐을 꾸렸다. 기억이 불분명해지면 갔던 곳을 다시 방문하기도 하고 여행에서 돌아와서는 촬영한 사진과 모은 자료들로 글을 써 나가기 시작했다. 그러는 동안 2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청년의 비평가는 중년의 비평가가 되어 있었고, 그날들의 발길들을 모아 보니 책 한 권 분량의 한국문학지도가 완성되었다.
■ 문학 답사를 통해 알게 되는 입체적 이해
편편의 글에는 작가의 작품 활동에 있어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공간에 대한 생생한 묘사, 저자가 직접 찍은 사진과 관련된 자료를 바탕으로 쓰인 작가와 그의 작품에 대한 이해가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다. 아는 만큼 보이고 느낀 만큼 알게 된다는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온몸으로 감각하며 다시 읽은 작품들은 이전의 이해와는 한층 다른 울림을 준다. 작가의 삶으로 들어가 그들의 작품을 바라보게 되기 때문이다. 별다른 훈련과 설명 없이도 직관적으로 알 수 있는 아름다움이 있는가 하면, 나름의 훈련과 지식을 통해 얻게 되는 아름다움도 있다. 예술의 아름다움은 훈련과 지식을 통해 다다를 수 있는 경지다. 이 책은 독자들로 하여금 자신이 있는 곳에서 답사 여행을 통해 획득할 수 있는 입체적이고 새로운 의미들을 얻을 수 있게 돕는다. 예술의 아름다움을 만날 수 있는 길을 안내한다.
■ 문학 여행은 인간 여행
21세기에 문학 작품을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해 직접 길을 떠나는 여행이라니, 시대에 맞지 않는 행위처럼 보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21세기에 문학 작품은 더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문학 작품의 시작에 창작이 있고 그 끝에 독해가 있다면, 시작에도 끝에도 인간에 대한 질문이 있다. 인간의 복잡한 내면에 대한 탐구가 문학의 존재 이유라고 할 때, 그 인간을 보다 근본적으로 이해하는 것은 삶을 살아가는 데 가장 중요한 배움이자 성찰의 도구일 것이다. 따라서 이 책에 수록된 23곳의 문학 여행지는 23곳의 인간 여행지라고 말해도 과장이 아니다. 사람을 이해할 수 없을 때, 사람들에서 벗어나고 싶을 때, 이 책의 안내에 따라 떠나는 길은 다시 사람들 사이로 돌아오는 길이기도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