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호인가? 아니면 약탈인가?
박물관의 탄생과 발전, 그리고 위기
대영박물관, 루브르박물관, 스미소니언 박물관 등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서양박물관의 탄생에 있어 식민지 지배와 약탈은 빼놓을 수 없는 꼬리표다. 특히 1830년대에서 1840년대를 지나며 생겨난 ‘타인의 박물관the Museum of Other People’은 아주 먼 곳에서 살았거나 아주 오래전에 살았던 원시인 혹은 부족민의 세계를 전시했으며 아프리카와 오세아니아 지역에서 유럽 식민지 건설이 한창이던 1880년대에 황금기를 맞이했다.
널리 알려진 사실이지만, 대영박물관과 루브르박물관의 대표적인 작품들은 유럽 제국주의가 한창일 때 다른 경쟁 제국에서 강제로 빼앗아 오거나 은밀한 거래를 통해 획득한 것들이다. 베이징 북쪽에 있는 이화원은 과거 아편 전쟁의 보복으로 영국과 프랑스 군대에 철저히 약탈되었고 지금까지 반환되지 못한 물품이 상당수다.
하지만 1960년대 탈식민지화가 진행되면서 자연스레 많은 것들이 바뀌기 시작한다. 미국에 있는 인류학 민족학 박물관들도 자국 원주민들의 실상을 담은 정체성 박물관identity museum이 주류가 되었고, 타국의 유물을 전시하는 박물관들은 전면적인 위기에 봉착했다. 그리고 우리는 그러한 타인의 박물관과 정체성 박물관이 공존하는 현대에서 무엇이 진정 옳은 박물관의 모습인지를 고민하고 있다.
빌릴 것인가? 혹은 돌려줄 것인가?
새로운 박물관의 미래를 고민하다
박물관의 역사는 딜레마dilemma의 역사이기도 하다. 문명의 보호가 한 측면에서는 문명의 약탈로 이어진다. 야만의 역사에서 태어난 박물관은 한편으로 과거 문명을 보존하고 널리 알리는 역할을 해오고 있다. 이러한 딜레마 속에서 『박물관의 그림자』는 서양 인류학자의 시선에 박물관의 모든 이야기, 즉 탄생과 발전, 그 사이에서 일어난 다양한 사건과 이를 주도한 인물들을 최대한 제3자의 시선으로 평가하고자 했다. 박물관이라는 하나의 무대 안에서 때로는 약탈과 야만스러운 행위를, 때로는 다른 문명과의 가슴 따뜻한 교류를, 때로는 박물관 설립이라는 꿈을 위해 매진한 인물들의 이야기가 흥미롭게 그려진다.
인류학자인 저자는 해당 국가의 관할 내에 들어와 있는 문화재는 국가가 보존해야 한다는, 우리에게 익숙한 ‘민족주의적인 입장’과 모든 문화재는 인류 공동의 유산이며 이에 가해지는 위해는 모든 인류의 문화유산에 가해지는 위해이므로 국가를 넘어 모두가 보존에 힘써야 한다는 ‘코스모폴리탄 원리’를 균형감 있게 다룬다. 그러면서도 모든 인종과 국가 차원의 정체성을 초월하며, 경계선을 허물어 가는 코스모폴리탄 박물관이라는 인류학자로서의 꿈을 정중히 주장한다. 이 책을 통해 독자 여러분은 박물관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점과 역사, 그리고 타인의 박물관과 정체성 박물관을 넘어 범인류적인 박물관의 미래란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