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한국에서 하비 교수의 사상이 널리 알려지지 않은 이유 중 하나가 하비의 ‘스토리’에 집중하는 사람이 상대적으로 적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가 전통 지역지리로 박사학위 논문까지 받았으면서도 브리스틀 대학교 강사로 일하면서 왜 『지리학에서의 설명(Explanation in Geography)』을 쓸 수밖에 없었는지, 미국으로 이주하자마자 막 폭동이 진화된 볼티모어의 기괴한 현실을 보면서 왜 마르크스에 매료될 수밖에 없었는지, 『포스트모더니티의 조건』의 갑작스러운 성공으로 순식간에 전 세계적인 스타 학자의 반열에 올라서게 된 이야기는 제법 흥미롭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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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비는 왜 마르크스사상에 매료되었을까?
1960년대는 한편으로 평화와 번영의 시대였지만, 아이러니하게 세계 곳곳에 전쟁이 끊이지 않아 냉전(Cold War)이라 불리는 날 선 분위기의 시대였다. 제2차 세계대전으로 무너진 삶의 터전을 재건하기 위해 인프라 투자가 시작되고, 미국이 유럽에 복구 자금을 지원해주며 경제는 살아나는 것 같이 보였다. 하지만 사회적으로는 긍정적이지 못했다. 미국에서는 인종차별 문제가 극에 달하고 프랑스에서는 혁명의 불씨가 여기저기서 큰 불꽃을 퍼트리고 있었다. 특히 1968년에 일어난 68혁명은 전 세계적으로 영향을 주었고, 하비가 있던 미국도 예외는 아니었다. 마틴 루터킹의 암살로 말미암아 벌어진 시위가 폭동으로 돌변하며 거리는 난장판이 되었다. 그중에 가장 심각했던 볼티모어는 연방군을 투입해야 할 정도였다. 존스홉킨스 대학에 임용된 하비는 폭동이 일어난 원인과 문제를 조사하는 프로젝트에 참여했고, 그는 ‘도시 내의 불평등’에 주목했다. 입찰지대곡선이 게토(ghetto)문제를 어떻게 설명해 낼 수 있는지 해석하고 이 이론을 가능케 하는 전제를 비판해야 한다고 마무리한다. 하비의 이론에 마르크스적인 사상이 들어오기 시작한 것은 이때부터다.
하비는 도시의 문제를 마르크스주의와 변증법적 사고를 가져와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대학원생들에게 마르크스를 강독하면서 이론을 다져나갔다. 『국제도시 및 지역연구학회지』에 1978년 게재된 「자본주의적 도시 과정: 분석을 위한 틀(The Urban Process under Capitalism: A Framework for Analysis)」을 통해 지리학에 마르크스를 접목하기 위한 발판을 만들고 하비 이론의 정수라고 할 수 있는 『자본의 한계(The Limits to Capital)』를 발표했다. 『자본의 한계』는 『자본론』에 관한 책으로, 거의 마르크스에 대한 책이라고 봐도 좋을 만큼 그의 이론으로 세상을 해석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최초의 데이비드 하비 입문서
데이비드 하비의 생각이 변화하게 된 중요한 기점에는 68혁명이라는 세계사적 변동이 존재했고, 이후 케인스의 처방이 먹히지 않기 시작한 1972년 석유파동부터 하비 교수의 마르크스이론이 무르익는 시기였다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하비의 사상은 마르크스라는 큰 뿌리에 기대고 있으며, 마르크스의 사상은 사회, 정치, 경제, 철학, 문학, 예술 등 영향을 미치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로 깊고 넓다. 그는 마르크스를 읽는 데 멈추지 않고, 지리학적 상상력을 동원해 공간의 정치, 경제를 설명할 개념적 도구로 ‘시공간 압축’, ‘공간적 조정’ 등을 만들어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하비라는 인물에 대해 관심 있는 분들에게 이 책이 하비를 이해하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