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차원 높은 미학, 땀을 쥐는 몰입감
이윽고 찾아오는 짜릿한 반전
『일곱채의 빈집』은 『소란의 핵심』(2002)과 『입속의 새』(2009, 한국어판 창비 2023)에 이은 사만타 슈웨블린의 세번째 소설집이다. 실재와 환상을 넘나들며 짜릿한 긴장감을 선사하는 특유의 재미는 여전하지만 “우리는 실감나는 현실에 깊이 빠져든다. 그 현실은 손에 잡힐 듯한 공포다. 그래서 더 무섭다”(『파이낸셜 타임스』)라는 평처럼 이번 소설집은 한 차원 높은 미학을 선보인다. 수록작들은 모두 ‘집’이라는 공간을 배경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때로는 집을 구경하기 위해 떠돌아다니기도 하며(「그런 게 아니라니까」), 때로는 집 안에 갇혀 기억을 잃어버리기도 하고(「깊은 곳에서 울려오는 숨소리」), 때로는 집을 잃고 떠돌기도 한다(「40제곱센티미터의 공간」). 소설집의 제목이 ‘일곱채의 빈집’인 데는 그러한 이유도 있다.
각각의 작품은 저마다 숨통을 조여 오는 긴박한 몰입감을 선사하는데, 어느 작품이든 짜릿한 결말을 만끽할 수 있다. 「그런 게 아니라니까」에 나오는 딸과 어머니는 매일 호화 주택을 구경하다가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 게 있으면 마음대로 물건의 배치를 바꾸는 “미친 짓”을 한다. 그러고는 주인이 나오기 전에 도망치는데, 하루는 차가 진흙탕에 빠져 정원에서 집주인과 마주치고 만다. 집주인은 모든 게 궁금하다. 왜 이런 짓을 했는지, 이걸 어떻게 배상할 건지. 엄마는 아픈 척을 하며 위기를 모면하려 한다. 그리고 그 순간에도 ‘어떤 물건’을 훔쳐서 나올 결심을 한다. 이들은 왜 이런 짓을 벌이는 걸까. 이 ‘미친 짓’은 어떤 결말을 맞이하게 될까.
「깊은 곳에서 울려오는 숨소리」의 주인공 롤라는 어느 날 자신이 지나치게 오래 살았다고 생각하며 행동 지침이 될 만한 ‘목록’을 작성하기로 한다. ‘모든 것을 분류할 것’ ‘필요 없는 물건은 기부할 것’ ‘죽음에 집중할 것’ ‘그가 참견하면, 무시해버릴 것’. 롤라의 집 근처에는 “마약쟁이로 보이는” 아이들이 항상 시끄럽게 굴며 생활을 방해한다. 그중 한 아이는 옆집에 새로 이사 온 아이로, 그는 롤라의 정원에 나타나기도 하고 또 롤라의 집 초인종을 누르기도 한다. 어느 날 아이는 롤라의 남편에게 공구를 빌리게 되고, 롤라는 그걸 돌려받으러 옆집에 들른다. 그리고 거기서 아이의 엄마를 만나는데 충격적이게도 아이는 이미 죽었다고 한다. 그녀와 이야기를 나눈 끝에 롤라는 ‘목록’ 마지막에 이런 항목을 추가한다. ‘옆집 여자는 위험하다.’ 정말 위험한 것은 누구일까.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며 진행되는 이야기가 손에 땀을 쥐게 한다.
그밖에도 부모, 헤어진 아내, 그리고 아이들이 휴일을 보내고 있는 자리에 전처의 연인이 찾아오는 기묘한 자리에서 갑자기 아이들이 감쪽같이 사라져버리는 사건을 다룬 「나의 부모와 아이들」, 실제 발생한 것은 이웃 웨이메르의 방문이라는 한가지 사건뿐이지만 상상과 환상의 이면에서 기억을 교차시키며 독자의 호기심을 증폭시키는 「이 집에서는 항상 있는 일이다」, 부부싸움을 하고 길을 방황하다 ‘에스카피스타’(현실도피주의자, 배관 수리기사 혹은 탈출 곡예사의 뜻을 지닌 중의어)를 자처하는 기묘한 사람과 기묘한 동행을 나서는 「외출」 등 짧은 소설도 저마다 깊은 울림을 남긴다.
미국의 유명 방송인 오프라 윈프리가 발행하며 공신력을 얻은 매거진 『오프라 데일리』는 “사만타 슈웨블린은 떠오르는 라틴아메리카 작가들의 선두에 서 있다”라며 그의 대단한 작품성을 칭찬한 바 있다. 또한 『일곱채의 빈집』에 대해서는 “피와 욕망, 자아와 원초적 본능으로 맥박 친다”라는 평을 남겼다. 넷플릭스 영화로 제작되며 세계인의 환호를 얻은 베스트셀러 『피버 드림』이나, 타인이 조종하는 ‘반려 인형’을 집에 들인다는 탁월한 상상력으로 “인물 묘사의 장인”(『LA 타임스』)이라는 평을 얻게 해준 『리틀 아이즈』를 봤을 때 어쩌면 사만타 슈웨블린의 시대는 이미 도래해 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시대는 당분간 이어질 듯하다. 『일곱채의 빈집』은 이를 다시 한번 증명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