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스깔의 『빵세』는 기독교 호교론에 관한 책이다. 이 책은 가장 위대한 교부라고 칭송을 받는 아우구스티누스의 기독교 호교론인 『신국론』 (하나님의 도성)과 더불어 쌍벽을 이루는 책이다. 혹자에 따르면, 지난 400년 동안 『빵세』가 성경 다음으로 애독자가 많다고 한다. 이는 그만큼 의미와 가치가 있는 책이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빠스깔의 『빵세』는 인간 중심주의 사조로 17세기의 탈기독교적이고 반기독교적 사상에 물던 기독교를 멸시하고 혐오하는 하나님을 믿지 않은 사람들에게 참종교로서의 기독교 진리를 옹호하고 변증하기 위한 목적으로 저술한 기독교 호교론이다.
필자가 생각하기로는 빠스깔이 실제 생활했던 17세기의 하나님 중심적 세계관(신앙)이 아닌 인간 중심적 세계관(이성)이라는 시대사조와 오늘날 우리의 삶의 자리를 뒤흔드는 시대사조는 별반 다르지 않다. 이와 같은 상황에 직면한 빠스깔은 인간 유형을 셋으로 분류한다. 첫째는 하나님을 앎으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고, 둘째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하나님을 찾는 사람들이고, 마지막으로 하나님을 알지도 찾지도 않은 채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여기에서 첫 번째 사람들은 합리적이면서 행복하고, 마지막 사람들은 불합리적이면서 불행하다, 중간 사람들은 불행하지만 합리적이다. 그렇다면, 이 세 유형 중에 빠스깔이 추구하는 것은 무엇인가? 이에 대해 첫 번째는 합리적이면서 행복한 사람이고, 마지막은 불합리하면서 불행한 사람을 말한다. 중간 사람은 불행하지만 합리적이다(단장 336).
사람들은 다양한 주제를 함축하고 있는 『빵세』를 읽고 독해하면서 느끼는 점이 다를 수 있다. 필자는 이번에 책을 만드는 진행 과정에서 『빵세』에 나타난 다양한 주제 중에 참신앙과 참행복 개념이 새로운 모습으로 마음에 다가왔다. 그래서 이 책 4장은 이와 관련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 빠스깔의 관점은 어느 누구든지 참행복을 추구하고 누리기 위해서 참신앙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힘주어 말하고 있다: 신앙은 행복의 선행 조건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단장 336을 이러한 맥락 속에서 바라보아야 할 것이다. 하나님 없는, 신앙 없는 행복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빠스깔이 고찰하기로는 『빵세』에 나타난 인간학을 통해 인간의 원초적 행동 원리는 근본적으로 ‘행복 추구’라고 갈파한다. 따라서 『빵세』라는 책은 진정으로 ‘행복론’에 관한 책이다. 하나님이 행복 그 자체이시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인생의 최종 목적은 무엇인가? 빠스깔은 인생의 최종 목적을 ‘하나님을 향한 향유(享有)로서의 행복’ 혹은 ‘하나님을 향유하는 행복’에 두고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우리는 단장 336을 사실상 행복의 토대를 이루는 신앙의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빠스깔은 우리가 하나님에게 가까이 갈수록 선하고 행복해질 수 있고, 하나님에게서 멀어질수록 악하고 불행해질 수밖에 없다고 역설한다.
이 책의 한계는 사실상 4편 모두가 연구 논문으로 상당히 딱딱한 학술적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에 빠스깔의 기독교 철학이나 신학 사상에 쉽게 접근하기가 어려움이 있다는 점이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빵세』를 읽고 독해하려고 하는 독자들로 하여금 이해의 깊이와 그 폭을 넓히는데 길잡이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필자는 본래 국립국어원에서 제시하는 외래어 표기법에서 살짝 옆으로 벗어나 파스칼을 ‘빠스깔’로, 팡세를 ‘빵세’로 표기하기로 한다. 조심스럽지만, 사실 ‘파스칼’과 ‘팡세’의 본래 발음이 프랑스어로 빠스깔과 빵세임을 밝혀 두는 바이다. (‘저자의 말’에서)
『빠스깔의 「빵세」 읽기』에 수록한 학술 논문은 모두 4편이다. 이 책은 『빵세』에 나타난 하나님 이해, 그리스도 이해, 새로운 사상적 패러다임의 구축, 행복론에 관한 연구물이다. 즉, 빠스깔의 기독교 철학과 신학 사상에 관한 연구물이다. 이 책이 『빵세』를 읽고 독해하려고 하는 독자들로 하여금 이해의 깊이와 그 폭을 넓히는데 길잡이가 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