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 공생의 대도(大道)로 나가자”
한반도여!한민족이여!
누군가 이렇게 외친다면 조국의 숨 막히는 현실에 대한 탄식이라는 사실을 직감할 수 있을 것이다.
한반도 분단의 모진 상황은 어언 70년의 긴 세월 동안 이어져 왔다.
그것이 외세 탓이든 민족이 각성하지 못한 탓이든, 민중은 이제 위기감 따위는 면역이 생긴 듯 무감각한 상태인 것 같다.
이산가족 상봉도 남의 나라 이야기가 된 듯하다.
위기는 숨 막히는 상황만이 아니다.
운명 공동체로서의 민족적 동포애 정신이 무뎌진 것이 더 큰 위기임을 깨닫지 않으면 안 된다.
왜 이토록 얼빠진 민족으로 전락하였는가?
그 원인은 처음부터 오늘날까지 소위 이데올로기 투쟁 때문이다.
북한은 사회주의적 애국을 최상의 애국으로 강요하고, 남한은 자본주의, 즉 자유시장 경제체제를 최상의 애국으로 강요해 왔다.
일컬어 북한식 애국은 사회주의적 애국으로서 그 이데올로기의 핍박이 불가피한 것이었고, 남한식 애국은 자본주의적 애국으로서 모든 국민이 물신 숭배자가 되어 돈의 노예로 전락 되게 하였다.
오늘날 한국인의 이와 같은 정신 현상은 불가피한 역사적 산물이라고 할지라도, 그것이 좌우 이데올로기 충돌이 빚은 유독(流毒)임을 꿰뚫어 보아야 한다.
한반도 정세는 ‘북한 핵’ 문제로 첨예한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이것은 물론 갑작스럽게 돌출한 상황이 아니며, 불행하고 지루한 한반도적 냉전 상황의 연장선상에 있다.
이와 같은 최악의 냉전 상황의 근본 원인은 재론의 여지조차 없이 이데올로기, 즉 국가체제의 적대성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과거사들은 접어놓고 북한이 ‘핵’을 무기로 미국에 요구하는 것은 자기 체제의 인정과 불가침조약 체결에 목적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세계 초강대국으로부터 체제를 인정받고 체제의 안전성을 보장받으려는 전략적 카드가 핵 카드임은 너무나 명백한 사실이다.
우리 국민은 북한 당국의 집요하고 일관된 이데올로기적 자폐 성과 독단성을 새삼 주시하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이 그처럼 맹신하고 강요하는 사회주의적 애국심이 정녕 우리 땅과 그 안에 거주하는 민족 구성원의 안녕과 행복을 담보할 수 있는 것일까?
그렇다고 정반대의 현상인 자본주의적 애국심을 최선의 선택이라고 강변할 수도 없는 것이 솔직한 고백일 수밖에 없다.
북한 주민은 탈북을 감행한다. 목숨 건 탈출이다. 우리는 사회주의적 애국이 겨레를 고통스럽게 하는 현장을 보는 것이다. 자본주의적 애국은 어떠한가.
노사갈등이 끊이지 않고, 가계 빚이 눈덩이처럼 늘어나고, 카드 빚에 몰려 목숨을 끊는 상황에 몰리고 있다. 그럼에도 수입 양주는 소비되고 있다. 이것이 남한의 자본주의적 애국의 현주소가 아닌가.
과연 어느 애국이 ‘참 애국’인가?
단정하거니와 두 가지가 똑같은 참다운 애국의 길이 아니다. 그래서 아인슈타인은 자본주의도, 공산주의도 똑같이 경멸했던 것일까. 현실적 대안이 확연치 못한 것이 역사의 딜레마이며, 역사적 과제임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우리의 시각은 역사의 변화 추이와 변화의 타당성 또는 변화의 법칙에 주목하고 긍정과 부정의 냉철한 혜안을 더욱 밝혀나가야 할 것이다.
취할 것은 취하고 버릴 것은 버리는 과단성 있는 이데올로기의 창출이 요구되는 역사적 현실에 도달해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이러한 요구는 남과 북의 정부와 지도층, 좌우 이데올로기의 맹신그룹들이 다 함께 겸허하게 수용해야 할 문제이다.
이념의 도착 상태에서 스스로 해방하고, 민족의 안녕과 행복을 확고하게 할 민족 공생의 대도로 기꺼이 나서야 할 때가 되었다.
성숙한 민족의식은 신민족주의, 배타적 민족주의가 아니다.
베를린 장벽은 무너졌는데 한반도의 장벽은 어째서 더 견고해야 하는가?
동구 세계의 몰락이 서구 세계의 승리는 아니다. 세상은 여전히 갈등과 고통, 누적되는 문제들로 가득하다.
지구상에 하나뿐인 분단국 한반도가 남북 화합, 좌우 이데올로기의 화합과 융합을 통해 통일을 성취하는 날, 그 이념은 단연 인류의 정신, 시대정신으로 찬양될 것이다.
공산주의 나라들은 몰락했어도 마르크스의 사상은 죽지 않고 있음을 주시할 필요가 있다.
인간이 인간을 착취하는 제도를 타파하고, 평등 세계를 건설하자는 기본 사상은 인간 정신의 원초적 본능의 표현임이 틀림없다.
1999년 10월, 영국 BBC방송의 여론조사는 아인슈타인, 뉴턴, 다윈을 제치고 마르크스가 가장 위대한 사상가 1위를 기록했었다. 그같은 결과는 착취 증오와 평등에 대한 영원한 소망의 반영임이 틀림없는 것이다.
마르크스의 이론은 인간의 소망을 지적으로 구성한 것만이 아니라, 그 성취 방법을 제시한 것이 매력을 풍겼다고 할 수 있다. 여하튼 평등은 인간의 영원한 명제임을 누가 부인하겠는가.
북한의 핵 카드는 민족 구성원 전체를 긴장시키고 불안하게 하는 요소다.
조금이나마 변화가 수용되는 남한 사회와 요지부동인 북한 사회의 체제와 이데올로기, 둘 중 어느 쪽을 선택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더 늦기 전에 남한과 북한은 달리는 평행선에서 뛰어내려 분 단의 시대, 좌우 이데올로기 대결의 시대를 종식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 분별의 지혜를 이 책에 담아보았다. 작은 보탬이 되기를 기대한다.
2024년 9월 1일 김 상 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