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파고스제도와 워싱턴제도의 상세한 기록을 곁들인 19세기 남태평양 항해기
태평양 적도 선상에 위치한 19개 섬으로 이루어진 갈라파고스제도는 찰스 다윈이 진화론의 증거를 찾아낸 곳으로 유명하다. 또한 1535년 파나마 주교 토마스 데 베를랑가(Tomás de Berlanga) 수사가 페루로 항해하던 중 서양인으로서는 처음으로 발견한 곳이라고 전한다. 화산 작용으로 생겨난 갈라파고스는 화산재와 화산암으로 이루어진 불모의 섬으로, 포터는 화산 폭발을 직접 목격하고 그 장면을 항해기에 생생하게 기록했다. 스페인령이던 갈라파고스제도는 에콰도르가 독립하면서 현재는 에콰도르령이다.
남태평양 중부에 위치한 마르케사스제도는 프랑스령 폴리네시아에 속하는 섬들이다. 화산 폭발로 형성된 이곳은 수도 타이오해(Taiohae)가 있는 누쿠히바(Nuku Hiva)섬과 가장 많은 사람이 살고 있고 프랑스 화가 고갱이 묻혀 있는 히바오아(Hiva Oa)섬을 비롯해 우아후카(Ua Huka)섬, 우아포우(Ua Pou)섬, 타후아타(Tahuata)섬 그리고 파투히바(Fatu Hiva)섬으로 대표된다. 미국인 잉그램(Joseph Ingraham)이 1791년에 마르케사스제도 북서부에 있는 섬들을 방문하고 ‘워싱턴(Washington)제도’라고 명명, 1813년 10월 25일 포터 함장은 이곳 누쿠히바섬에 미국 국기를 달고 상륙한다. 그는 두 달 남짓 섬에 머물면서 당시 미국 대통령의 이름을 따 ‘매디슨섬’이라 부르고, 섬의 부족들과 동맹(일부는 무력으로)을 맺었다. 이후 미국령으로 편입하고자 했으나 미국 의회를 통과하지 못했고, 이 제도는 1842년에 프랑스령이 되었다. 평평한 해변이나 방파제 역할을 할 수 있는 산호초도 많지 않아 주거지는 주로 협곡에 위치하며, 주 농작물은 코코넛 과육을 말린 코프라(copra)·얌과 유사하게 생긴 타라(tarra)·빵나무 열매·커피와 바닐라 등으로, 포터는 당시의 상황을 항해기에 상세히 기록하고 있다.
포터의 항해기에는 신생국 미국을 대표하여 영국과 맞서 싸운다는 자부심과 애국심으로 똘똘 뭉친 미국인이 보인다. 남보다 더 빨리, 더 많은 공을 세우려는 호승심으로 가득한 데이비드 포터. 포터 이전에 나온 대부분의 항해기는 단순히 발견의 항해를 사실적으로 전달하는 보고서 성격이 더 강했다. 포터 역시 이 목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데이비드 포터는 발견의 항해를 넘어 갈라파고스제도의 식생과 동물·지형을 찰스 다윈에 앞서 상세하게 묘사하고, 갈라파고스의 인간 이주민에 관한 이야기까지 기록하며, 앞으로 식민지를 경영한다면 어떤 작물을 어떻게 심는 것이 좋다는 제안도 남긴다. 칠레와 페루, 남태평양의 누쿠히바 등지에서 만난 사람들의 풍속과 습성을 호기심에 넘쳐 관찰하고 미국인과 비교하지만, 항해자 포터의 다양한 면모를 솔직하게 드러낸다는 점이 포터 항해기의 매력이다. 1815년 10월 31일, 포터는 미 대통령 매디슨에게 북태평양과 남태평양으로 향하는 발견의 항해에 착수하자고 제안하는 편지를 직접 쓰는 적극성도 보인다. 당시의 편지는 이 책의 부록에서 볼 수 있다.
포터는 1815년과 1822년에 각 두 권짜리 항해기를 출판했다. 이 번역서는 이후 1823년에 한 권으로 나온 세 번째 판본(A Voyage in the South Seas, in the Years 1812, 1813, and 1814. with Particular Details of the Gallipagos and Washington Islands, London: Sir Richard Philips, 1823)이다. 구성은 1·2판과 같으나 장황한 설명은 빼고 정리되어 항해의 핵심적인 내용 전달에 용이하다. 원서의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포터 항해기의 특징은 특히 갈라파고스제도와 워싱턴제도에 관한 상세한 기록을 곁들였다는 점이다. 그런 차원에서 데이비드 포터의 항해기는 매우 중요한 사료적 가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