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한충희 계명대 명예교수는 40여년간 조선시대 정치제도사를 정력적으로 연구해 온 원로 사학자이다. ‘조선초기 정치제도와 정치’를 체계적으로 연구한 데 이어, 조선초기(태조 1~성종 25) 15,000여 명의 관인 기록을 일일이 정리하여 그들 관인의 성분을 성씨ㆍ성관, 출사, 본인과 부조(父祖)의 최고 관력으로 구분하여 검토하고, 인사제도와 관인관력을 관계의 획득ㆍ승자, 관직의 제수ㆍ체직, 관계ㆍ관직의 몰수ㆍ파직과 환급ㆍ복직, 관력 등을 확인하였다. 또한 관인의 경제기반과 공신ㆍ추요직 관인과 정치운영 및 거족가문 등을 검토함으로써 조선초기 관인의 특징을 다음과 같이 제시하였다.
저자가 확인한 조선초기 관인의 성분은 총 260성씨 511본관 15,200여 명이다. 조선초기에 관인을 배출한 가문은 다수의 공신ㆍ의정ㆍ판서를 배출한 유력가문이 15세기 전반기(태조~문종대)에는 안동권씨 등 30여 성관이고, 15세기 후반기(단종~성종대)에는 거족과 유력가문인 진주강씨 등 80여 성관이다. 조선초기 관인 확인자의 출사로는 문과가 1,560명이고, 무과가 303명, 음서가 914명이며, 천거가 131명, 잡과와 기타ㆍ불명자가 1,295명으로 밝혀졌다.
조선초기 관인의 관력을 보면, 문과급제자는 대개 삼관권지ㆍ육조속아문직을 거쳐 참상관에 승진하였고, 속아문ㆍ육조ㆍ대간ㆍ외관직을 역임하고 정3품 당상관에 승진하였으며, 이후 승정원ㆍ육조ㆍ외관ㆍ중추부ㆍ충훈부ㆍ의정부직을 역임하면서 종2~정1품관까지 승진하였다. 무과급제자는 대개 훈련원권지ㆍ5위직을 역임하고 참상관에 승진하였고, 5위, 육조속아문, 외관직을 역임하고 정3품 당상관에 승진하였으며, 5위행직ㆍ외관ㆍ도총제부ㆍ중추부ㆍ육조ㆍ충훈부직을 역임하면서 종2~정1품관에 승진하였다. 한편 음서자는 대개 권무ㆍ육조속아문ㆍ5위직을 역임하고 참상관에 승진하였고, 그 후 문, 무과자와 같은 관직을 역임하면서 정3품 당상관에 승진하고 종2~정1품관에 승진하였다. 조선초기에 공신과 문무관ㆍ종친 실직 정2품 이상 관인은 사후(死後)에 시호를 받았고, 3대(증조ㆍ조ㆍ부)가 증직되었으며, 1~2품관으로서 공로가 현저한 관인은 사후 종묘에 배향되었다.
조선초기 관인의 경제기반은 대개 조상과 혼인으로 전래되거나 습득된 사전(私田), 직전(職田)(공신은 공신전 추가)ㆍ녹봉과 노비였고, 공신인 관인은 공신전ㆍ노비였다. 관인은 대개 19세를 전후하여 혼인하였고, 혼인과 함께 부인가에 거주하며 생활하면서 과업을 준비하기에 통혼가문의 선정에 유념하였다. 유력한 양반가문과 한미한 양반가문 모두 그 대부분 가격이 비슷하고 관직이 대등한 부조의 딸ㆍ손녀와 결혼하였다. 조선초기의 정치운영은 왕권, 국왕의 통치 스타일, 국정운영체계에 따라 신축은 있지만 의정이 중심이 된 판서ㆍ승지ㆍ대간 등이 국정운영을 주도하였다.
특히 조선초기에는 태조 1년 개국공신을 책봉한 이래 성종 2년까지 8차에 걸쳐 365명의 공신을 책록하였다. 이들 공신은 그 수와 책록시의 관직, 정치경제적 우대를 토대로 태조~태종대와 단종~성종대에는 국정운영의 중추인 의정ㆍ판서ㆍ관찰사ㆍ경외 당상군직의 대부분을 차지하면서 국정운영을 주도하였다. 조선 개국이래 다수의 공신과 추요직을 점유하면서 번창한 양반가문은 여타의 양반가문과 구별되면서 유력가문으로 정착되었다. 태조~문종대에는 다수의 공신ㆍ추요직을 점유한 양반가가 몇 가문에 불과하고 그 위에 태종의 권력가와 권력가문의 견제가 심하였기에 유력가문이기는 하나 ‘거족’으로 정착되지는 못하였다. 그러나 단종~성종대에는 20여 년간 5차에 걸쳐 책록된 300여 명의 공신이 의정ㆍ판서ㆍ관찰사ㆍ경외 당상군직의 대부분을 차지하였고, 수십 가문에 다수의 공신ㆍ의정ㆍ판서가 집중되었다.
다수의 공신ㆍ의정ㆍ판서를 배출한 양반가문은 여타의 양반가문과 구별되면서 ‘거족’으로 정착되었다. 조선초기의 정치는 태조대에는 개국공신이 주도하였고, 태종대에는 정사ㆍ좌명공신인 의정ㆍ판서ㆍ장군총제가 주도하였으며, 세종~단종대에는 문무과ㆍ음서출신의 관료가 주도하였다. 세조~성종대의 정치는 역년의 경과에 따라 점진적으로 약화되기는 하나 세조 1~12년에는 거족성관 출신인 정난ㆍ좌익공신이 주도하였고, 세조 13~14년에는 적개공신이 주도하였으며, 예종~성종 25년에는 거족가문 출신인 정난ㆍ좌익ㆍ좌리공신이 주도하였다.
요컨대 조선초기의 정치는 공신관인, 특히 15세기 후반에는 공신이 추요직의 대부분을 점유하고 그 공신의 대부분이 거족출신이었으니 가히 ‘공신국가’이고 ‘거족국가’라고 정의할 수 있다.
본서를 통하여 조선초기의 예상 관인 60,000여 명의 25% 정도에 한정되기는 하지만 그 관인의 성분과 관력 등을 정리하고 지금까지의 관인연구를 보완하면서 관인의 실체가 구체적이자 깊이 있게 규명되었다. 동시에 관인이 조선 양반사회의 토대가 된 가문의 위세와 어떻게 연관되었는가가 규명되면서 조선 양반사회에 대한 실체 및 조선초기 정치사 연구를 심화시키는 토대가 될 것이라고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