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축과 여백의 미학을 중요시하는 시 문학 중에서도 가장 짧은 시로 알려진 일본의 정형시, 하이쿠. 초기에는 단순히 여흥을 위한 즉흥시로 여겨졌던 하이쿠가 5/7/5조 구성의 17자 음률에 세상 풍정과 정취를 담아내는 압축의 정수로서 자리 잡기까지, 떠돌이 인생을 시 가락으로 풀어내며 말없이 이바지해온 위대한 시인이 있다. 일상의 소소한 소재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솔직하고 평이하게 표현하는 ‘세속적 시’의 미학을 추구하며 풍류를 읊다 간 하이쿠의 성인, 마쓰오 바쇼(松尾芭蕉). 평범해 보이는 세상 속에서도 ‘꽃’을 발견할 줄 알았던 그의 하이쿠 976수가 국내 최초로 전집으로 엮였다.
나쓰메 소세키의 『도련님』,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단편집인 『문신』 등을 번역·출간했던 경찬수 번역가가 직접 기획하고 번역한 『바쇼 하이쿠 전집: 방랑 시인, 17자를 물들이다』는 바쇼의 인생 여정을 크게 ‘배움/홀로서기/나그네’라는 흐름으로 나누고, 각 시를 시대순으로 정렬해 한 장씩 책장을 넘길 때마다 바쇼가 남긴 생의 발자취를 고스란히 따라갈 수 있도록 구성했다. 또한 17세기에 쓰여진 고전 시의 예스러움과 정형시의 음률을 고려한 세심한 번역을 통해 번역 문학이 가진 한계를 뛰어넘어 우리에게 바쇼의 시 세계를 생생하게 전달할 수 있도록 무진한 노력을 기울였으며, 바쇼의 기행문과 그의 문하생들이 남긴 기록 등을 다양하게 인용해 우리가 미처 알아보기 힘든 시의 배경을 풍부하게 해설했다.
“꽃에 살면서 / 표주박 서생이라 / 스스로 일컫노라
시의 귀객, 고적한 삶의 여백을 17자로 물들이다”
『인간 실격』의 작가 다사이 오사무는 ‘예술은 제비꽃이며, 예술가는 돼지코와 같다’는 말을 남겼다. 사람의 코는 작은 들꽃의 향을 그냥 지나칠지 몰라도, 돼지코는 결코 제비꽃의 향을 놓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보다 200년을 앞서 살다 간 시인 마쓰오 바쇼는 “보이는 것 모두 꽃 아닌 것이 없고 생각하는 것 모두 달 아닌 것이 없다. 보이는 것에서 꽃을 느끼지 않으면 야만인과 다를 바 없고 마음에 달을 생각하지 않으면 새와 짐승이나 마찬가지다.”라는 말로 시인이 어떤 시각으로 세계를 보아야 하는지에 대해 논했다. 실제로 마쓰오 바쇼는 특별한 상황이나 화섬하게 치장된 표현보다는 일상적 소재에서 느낄 수 있는 솔직한 감상과 꾸밈없는 표현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마음에 달을 품고 눈 안에 꽃을 기르며 소박한 풍경에 숨은 아름다움들을 찾아 소탈하고 진솔하게 읊었던 시단의 나그네, 마쓰오 바쇼가 남긴 하이쿠의 여정길을 함께 걸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