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 한중 관계를 풀어줄 역사적 교훈
홍타이지가 전하는 오랑캐 정신과 오랑캐 전략
중국이란 용(龍)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
21세기는 중국시대라고 말한다. 14억 대국의 굴기는 가히 눈부시다. 경제력 외에 군사력과 외교력, 우주과학기술 등 총체적 국력도 미국에 비견할 수준으로 성장하였다. 유사 이래 수천년을 ‘중국의 이웃’으로 살아온 우리 역사에서도 이 정도의 변화는 일찍이 경험하지 못한 대사건이다. 우리는 대국굴기의 파장을 실감하며 살아가고 있다. 작은 덩치로 ‘이웃의 큰 나라’를 어떻게 다룰지는 과거의 조상들도 깊이 고민했던 주제다. 고조선과 고구려는 맞서 싸우다 실패했다. 신라와 고려는 자주성을 잃지 않는 범위에서 중국의 패권을 인정하였다. 조선은 중국을 내면으로 존경하며 깊숙이 섬겨 ‘신속(臣屬)의 도리’를 다하였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은 중국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
만주족이 전하는 ‘대국 상대’ 전략과 2세 경영
장한식 KBS방송기자가 쓴 『오랑캐 홍타이지 천하를 얻다』는 여진족이 역사 전반에 등장하는 기원을 은의 유통과 결부된 세계사적 흐름에서 찾는 신선한 시각을 보여주며, 명나라의 멸망과 청나라 건국 과정을 씨실과 날실로 풀어간다. 저자는 후금을 창업한 누르하치의 꿈을 이룬 청 태종의 2세 경영을 다루면서 현재 우리가 처한 ‘중국 스트레스’에 대한 올바른 처방으로 만주족의 대(對)중국 전략을 공부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400년 전 ‘1억 대국을 정복한 100만 오랑캐의 성공 역사’를 통해 꿋꿋한 의지와 실력이 있다면 작은 것도 큰 것에 능히 맞설 수 있다는 성공 사례로 홍타이지를 다룬다.
홍타이지의 성공 비결, 창업정신
청 태종 홍타이지는 ‘한반도를 무력으로 정복한 유일한 외국 군주’로 기록된 인물이다. 일본 전국을 통일했던 토요토미 히데요시도 조선정벌에 직접 참전하지 않았다. 왜 홍타이지는 친정했을까? 저자는 이에 대한 나름의 분석을 통해 설득력 있게 독자를 끌고 간다. 홍타이지는 서울 땅을 직접 밟은 한반도 정복자라는 사실 외에도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소국, 후금을 불과 10년 사이 동아시아 최강국 청나라로 키워낸 2세 경영자란 점도 주목한다. ‘창업주를 능가한 창업정신’이야말로 홍타이지의 성공 비결이며, 새로운 도약을 꿈꾸는 이들에게 전하고 싶은 저자의 메시지이기도 하다.
대국굴기에 맞설 ‘오랑캐 정신’의 재발견
조선의 지배층이 명나라의 신하가 되기를 바랐다면 만주의 지도부는 반대로 명을 정벌하고 지배하겠다는 야심을 키웠다. 조선은 중국을 ‘하늘(天)’로 보고 섬기려 했고 만주족은 정복할 ‘땅(地)’으로, 지배할 대상으로 간주하였던 것이다. 충효의 유교이념이 구현되는 예의지국을 건설함으로써 작은 중화(小中華)가 되기를 희망했던 조선은 오랑캐이면서도 오랑캐 근성을 버린 이른바 순이(順夷), ‘착한 오랑캐’였다. 조선은 스스로를 좁은 울타리에 가뒀던 탓에 시간이 흐를수록 잠재능력 이하로 작아지고 약해져 갔다.
하지만 만주족은 100배가 넘는 인구에다 비교할 수 없이 부유한 명나라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격차에 기가 죽지도 않았다. 역이(逆夷), ‘나쁜 오랑캐’를 자처했던 만주족은 스스로를 작지만 강한 족속으로 단련시켰던 까닭에 어느 순간 조선이 넘볼 수 없는 강력한 존재로 성장하였다. 두려워할 만한 상대를 겁내지 않고 정면으로 부딪치는 것, 바로 ‘오랑캐 정신’이다. 대국들이 굴기(崛起)하는 지금, 우리에게 요구되는 정신이기도 하다.
만주족의 성공 역사와 오랑캐 전략
만주족의 성공 역사는 그 자체로 조망할 가치가 충분하다. 우선, 비슷한 잠재력을 지닌 형제민족의 위대한 스토리에서 ‘우리도 세계 최고가 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을 수 있다. 아울러 만주족 이야기는 우리 역사와 불가분의 관계란 점에서도 충실한 이해가 필요하다. 만주족의 성공 비결은 조선의 실패 원인과 상통(相通)하기 때문이다. 같은 오랑캐였지만 순이(順夷)였던 조선과 180도 다른 꿈을 키웠던 역이(逆夷), 만주족의 결단은 오늘의 우리에게 좋은 교훈이 된다.
누르하치나 칭기즈칸은 잘 아는 한국인들이 서울 땅을 직접 밟은 홍타이지를 망각해버린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는 지난 수백 년간 삼전도의 일을 애써 거론하지 않고 홍타이지를 제대로 연구하지 않음으로써 ‘치욕의 역사’를 성공적으로 숨겨왔다. 그러나 400년의 시간이 흐른 만큼 홍타이지를 정면으로 분석할 때가 되었다. 이 책은 홍타이지를 분석하고 성공적인 2세 경영의 표본, 병자호란을 다룬 역사서 관점에서 세종도서 교양부분 우수도서(2015)로 선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