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한국 사상의 한 뿌리, 다석 류영모의 유일한 저서
전 4권으로 된 「다석일지多夕日誌」는 다석 선생이 생전에 기록한 일기장이다(1955. 4. 26. ~ 1977. 3. 13.). 다석 선생은 50살 무렵부터 하루 한 끼만 먹고, 하루를 일생으로 여기며 살았다. 항상 무릎을 꿇고 앉았으며, 얇은 잣 나무판 위에서 생활하고 잠도 그 위에서 잤다. 새벽 3시면 일어나 명상을 한 후 일기를 썼다. 그 일기를 모아 영인본으로 엮은 책이 바로 이 「다석일지」로 4권의 책에 각 800여 쪽 내외의 분량이다. 말이 일기라고는 하나 선생이 자신의 사상과 일상 속의 깨달음을 기록한 일기 형식의 글 모음집이다. 그 책에는 지혜의 보고와도 같은 동-서양 철학, 즉 유학, 불교사상, 노장 철학 그리고 물리학과 기독교 신학 등이 담겨 있다. 다석일지는 단순한 일상 기록을 넘어, 인간 존재의 본질, 신앙의 의미, 도덕적 삶에 대한 깊은 통찰을 제공한다. 따라서 이 책은 다석의 내면세계와 철학적 사유를 이해하는 중요한 자료이다.
선생은 때로 수수께끼 같은 기호와 한글의 뜻풀이를 어원과 함께 고유하게 사용하여 그 의미를 획기적으로 확장하였다. 그래서 그 제자들로부터 그 뜻을 풀이한 책이 여럿 나왔다.
다석일지는 또한 류영모 선생이 동양의 유교, 불교, 도교 사상과 서양의 기독교 사상을 통합하여 ‘하나의 진리’를 추구했던 과정을 잘 보여준다. 그는 성경의 내용을 한국적, 동양적 맥락에서 새롭게 해석하고,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종교적 철학을 전개했다. 이 과정에서 나온 사상들이 일지에 고스란히 담겨 있으며, 이는 오늘날에도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주고 있다.
이 책은 1990년 홍익재에서 초판이 나온 이후 절판된 상태에서 다석학회에서 영인본으로 소량씩 만들어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제공되었다가 이제 다석학회의 공식 계약에 따라 도서출판 동연에서 재출간되었다.
개정판이 이전 판과 다른 점은 초판 편집 과정에서 오류를 범한 같은 페이지의 중복을 삭제했고, 특히 제1권에는 다석 선생의 화보와 연보(해 간추림)를 넣었다.
우리는 다석일지多夕日誌를 통하여 몸 나에 끌려다니는 완고頑固를 떠나 얼의 나를 받드는 정고貞固의 삶을 본다. 얼 나로 살면 한알나라 아닌 곳은 없다. 땅의 나라도 그대로 한알나라다.
류영모 님의 말과 글은 처음 보면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다석사상多夕思想의 핵심을 알면 생각한 만큼 어려운 것이 아니다. 류영모 님은 이렇게 말하였다. “내 글과 말이 어렵다고들 하는데 알고 보면 간단해요.” 다석일지多夕日誌가 그대로 영생永生의 ‘만나’라고는 하지 않겠다. 그러나 얼의 나를 깨닫는 졸탁지기啐啄之機를 얻을 것이다.
- 박영호, 〈다석일지를 출간하며〉 중에서
다석 스승은 힘주어 말하였다: “사람들이 밑지는 일은 싫어하면서 어찌하여 일생의 삶은 밑지는 어리석은 일을 하는지 모르겠다.” 몸나로는 멸망의 삶이요, 얼나로 솟나면 영원한 생명인데, 어찌하여 귀한 얼나를 모르고 멸망의 몸나에만 붙잡혀 죽어가는지 모르겠다고 하였다. 이 가르침이야말로 예수 석가가 깨우쳐 준 말씀으로 복음 가운데 복음이요, 정음(正音) 가운데 정음임을 밝히면서 이 글을 마치고자 한다.
- 박영호, 〈다석일지 재간에 즈음하여〉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