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를 기울일 때 비로소 보이는 사실,
장애를 다루는 새로운 시선
지금, 눈을 감고 들리는 소리에만 집중해 보세요. 어떤 소리가 들리나요? 비가 오는 소리, 사람들이 걸어다니는 소리, 책장을 넘기는 소리, 엘리베이터가 열리는 소리. 아마도 다양한 방향에서 다양한 소리가 들릴 겁니다. 그렇다면 이건 어떤가요? 누군가 제안을 해오네요. 정말 자신 있는 놀이가 있다고요.
“숲에서 방울 소리를 내면, 소리가 퍼져 어디서 소리가 나는지 찾기 어려워요. 밤이면 눈은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요. 그럴 땐 귀를 쫑긋해야 해요. 귀 기울여 봐요! 이 놀이는, 우리 레오가 최고로 잘 해요! (『귀 기울여 봐요』 중에서)”
여러분은 레오를 이길 수 있을까요? 레오는 왜 이렇게 자신 있어 보이죠?
그리운 형이 돌아오는 날
형을 기다리다 만난 고마운 타인들
레오는 그리운 형이 드디어 오늘 집에 온다는 소식을 듣게 됩니다. 그런데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요? 기차로, 자동차로, 혹은 배로 올 것이라 생각했던 형은 오지 않습니다. 대신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뜻밖의 손님들만이 하나씩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레오는 적극적으로 손님들을 도와줍니다. 지친 할머니에게는 형을 위해 준비했던 방을, 망가진 자동차 안의 배고픈 아이에게는 형이 좋아하는 초콜릿 케이크를, 물에 빠져 추위에 떠는 강아지에게는 형의 목도리를 내어 주죠. 집 앞의 긴 의자는 이제 사람들과 강아지로 가득 찼지만, 여전히 형은 오지 않습니다. 걱정되죠. 형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닐까요?
이제 도움을 받았던 손님들이 레오에게 위로를 돌려줄 차례인 것 같네요. 손님들은 저마다의 방법으로 레오를 도와줍니다. 하지만 여전히 레오의 형은 오지 않고, 밖에서는 귀뚜라미 소리밖에 들리지 않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레오가 의자에서 벌떡 일어납니다! 분명히 형이 오는 소리를 들었다고 확신하면서요!
볼 수 없는 것을 보는 사람,
들을 수 없는 소리를 듣는 사람
레오는 사실 앞을 보지 못하는 시각 장애인입니다. 하지만 이 그림책을 아무런 정보 없이 읽는다면, 사람들은 처음에는 이 사실을 알아차릴 수 없을 것입니다. 알아차린 후에는 놀라움을 금치 못할 거예요. 왜냐하면 사회를 살아가며 그렇게 학습해 왔기 때문이죠. 장애인은 도움을 받아야 하며, 도움을 주기는 아마도 어려울 것이라고요.
하지만 레오를 보니 어떤가요? 레오의 옆에는 많은 사람이 앉아 있고, 이들은 모두 레오에게 도움을 받았습니다. 또, 레오는 사실 눈이 보이는 손님들보다 더 먼 곳을 바라볼 수 있었죠. 보통은 들을 수 없는 소리까지도 전부 들을 수 있는 예민한 청각을 이용해서 말이에요. 스스로 "장애인이 살아가는 평범한 세상"에 대한 메시지를 깨닫게 한다는 점에서 이 책은 특별합니다. 반복되는 구조, 소리를 통한 암시, 협업과 형제애 등의 부가적인 메시지들은 모두 한곳을 향해 나아가기 위한 디딤판입니다.
장애아동을 위한 책,
그리고 어른과 아이 모두를 위한 책
IBBY 국제아동청소년도서협의회에서는 2005년부터 2년마다 "IBBY 장애아동을 위한 좋은 책 목록" 선정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장애와 비장애를 넘어 전 세계의 모든 독자에게 의미 있는 책 경험을 제공함과 동시에 "모두를 위한 책(Books for Everyone)"의 출간과 보급을 장려하기 위함입니다.
2025 IBBY Canada 장애아동을 위한 좋은 책 시리즈 선정작인 〈귀 기울여 봐요〉에서, 우리는 책의 마지막에 다다라서야 레오가 시각 장애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책의 중간중간 깔린 복선을 통해 유추할 수는 있어도 우리의 예상이 명확한 사실이라는 것은 결말에 이르러서야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다 읽은 책의 첫 장을 다시 펼쳐 그림과 글을 찬찬히 살펴보면, 비로소 보이는 사실이 곳곳에 있을 겁니다.
곰세마리 가족그림책 시리즈에서는 부모와 아이가 함께 읽을 수 있는 그림책을 펴내고 있습니다. 앞을 볼 수 없지만 도움을 주고받으며 풍부한 삶을 사는 레오를 보고, 어른과 아이가 모두 자신만의 세계를 확장하는 경험을 할 수 있길 진심으로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