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기본소득을 받는다면,
사회는, 개개인의 삶은 어떤 모습으로 바뀔까?
“누구나 기본소득을 받는다면, 도대체 누가 일하려고 하겠어요?”
“일하지 않는 사람에게 왜 소득을 줍니까?”
“기본소득을 받으면 모두가 싫어하는 기피 업종 일은 누가 해요?”
“국민 모두에게 돈을 똑같이 나누지 말고, 가난한 사람들만 지원해주는 게 훨씬 좋지 않나요?”
“돈이 엄청나게 들 텐데 가능하겠어요?”
기본소득제도 도입에 대한 대표적인 반대 논리들이다. 기본소득은 그동안 누군가에게는 허무맹랑한 소리였고, 누군가에게는 실현될 날은 오겠지만 당장은 어림없는 주장으로 들렸을 것이다. 그런데 코로나19가 뜻밖의 상황을 몰고 왔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에서 지급한 ‘재난기본소득’이 기본소득 도입에 관한 새로운 토론의 장을 열어주었기 때문이다. ‘언젠가는 실현될 수도 있겠다’는 막연한 기대는 코로나19 상황을 거치며 피부에 와닿는 생생한 감각이 되었다.
그렇다면 기본소득제도가 도입된 사회는 어떤 모습일까? 모든 국민에게 기본소득이 지급된다면 우리 사회에서 가장 큰 혜택을 받는 집단은 어디일까? 이 책 《동네 의사와 기본소득》 지은이 정상훈은 차별받거나 소외되었던 집단을 필두로 사회 전체가 상상도 못할 긍정적 경험을 하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행동하는의사회와 국경없는의사회 활동가로 세계 이곳저곳 도움이 필요한 곳을 찾아다녔고, 2014년 ‘한국인 최초 에볼라 의사’로 불리기도 했던 지은이는 ‘프리랜서 의사’다. 우리나라에는 의사가 해외 구호활동을 하겠다고 몇 개월씩 자리 비우는 것을 허락해주는 병원이 거의 없다. 해외 구호활동을 하려면 병원을 그만두는 수밖에 없다. 그가 ‘프리랜서 의사’가 된 이유다. 대신 그는 동네 의원 원장님들이 휴가를 가면, 환자를 대신 진료하고 사례를 받는다. 어쩌면 불안정해 보일 수 있는 그 자리가 지은이에게는 ‘기본소득’의 필요성을 체감하게 된 중요한 장이 되었다. “노동자보다 평균 4.6배나 더 버는” 직업을 가진 지은이는 “단 몇 번의 대진으로 비정규 여성 노동자들 월급만큼 벌 수 있었다”면서 이렇게 말한다.
“그렇다. 나는 참 팔자 좋은 사람이다. 그런데 다르게 볼 수도 있다. 의사라는 자격 덕분에 이미 기본소득 받는 삶을 누리고 있었다고.”
국내와 해외에서 수많은 사람을 진료하면서 그리고 진료실 밖 삶의 현장에서 여러 노동자를 만나면서 지은이는 기본소득이 주어지는 사회를 구체적으로 상상해나갔다. 열이 펄펄 나는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직장으로 향해야 하는 워킹맘을 보며, 독감으로 당장 입원이 필요하지만 여력이 없어 찜질방 청소일을 그만두지 못하는 할머니를 보며, 우울증과 불면증을 동시에 앓고 있는 취준생을 보며, 가사노동·단순 반복노동에 오랫동안 시달려 몸 이곳저곳 통증을 호소하는 중년 여성들을 보며, 당장 정신의학과 치료를 받아야 하는 철탑 위 노동자들을 보며 지은이는 그들의 삶과 기본소득이 어떻게 연결될 수 있는지 구체적으로 들려준다.
지은이가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사회는 실현 불가능한 먼 이야기처럼 들리지 않는다. 그는 책 곳곳에서 재원 문제를 비롯해 앞서 언급한 기본소득의 여러 반대 논리에 사례를 들어가며 하나하나 답한다. 그 답은 실제적이고 현실적이다. 하지만 지은이는 객관적인 사실만으로 사람들을 움직일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렇기에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수많은 사람의 이야기를 이 책에서 들려준 것이다. “사람들의 이야기만큼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 것은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지은이는 모두가 기본소득을 받는다면 사회와 개개인의 삶이 무척 다채로워질 것이라고 말한다. 선택의 폭이 넓어지기 때문이다. ‘기본소득’을 “상상력을 자극하는 힘”이라 말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