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악마의 술에서 와인의 왕으로
경쾌한 거품을 따라 흐르는 샴페인 이야기
굴곡진 경사지와 하얀 백악질 토양이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는 프랑스의 샹파뉴. 이 지역에 처음 당도한 고대 로마인들은 이곳에 이탈리아 남부 지방의 이름을 본떠 ‘캄파니아’라 이름 붙였다. 그들의 눈에 탁 트이고 완만하게 경사진 이 파리 동쪽의 풍경이 캄파니아와 비슷해 보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캄파니아’라는 이름에서 샴페인이 유래했다. 샴페인과 샹파뉴의 알파벳은 ‘champagne’로 동일하며, 프랑스에서는 이 둘 모두 ‘샹파뉴’라 부른다. 즉, 프랑스 샹파뉴 지역에서 만들어진 발포성 와인만이 ‘샴페인’이라는 이름을 쓸 수 있다.
샴페인은 오랫동안 ‘와인의 왕’으로 사람들에게 사랑받아 왔지만, 처음에는 제대로 된 와인으로 대접받지 못했다. 와인 산지의 북방한계선인 샹파뉴 지역에서는 추운 날씨로 인해 효모가 겨울잠을 자기 전에 발효를 끝마치는 일이 항상 어려운 과제였다. 봄이 오면 따뜻한 날씨 때문에 다시 발효가 일어나 술통이나 병에 담긴 와인에 거품이 생겨났는데, 애물단지가 따로 없었다. 초기의 특징이던 탁한 맛도 그렇지만, 거품 때문에 와인을 담은 병이 깨지는 사고가 빈번했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샹파뉴 지역의 와인 제조자들은 거품이 자기 지역의 최고 장점으로 떠오르기 전까지 오랫동안 거품을 저주로, 불안정하게 날 뛰는 샴페인을 ‘악마의 술’로 간주했다.
| 뵈브 클리코에서 모엣 샹동까지
럭셔리한 샴페인의 뒤에는 위대한 샴페인 하우스가 있다!
그 뒤 튼튼한 유리병과 거품의 손실 없이 샴페인의 침전물을 제거하는 르뮈아주 기법이 개발되면서 샴페인은 특유의 매력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그리고 샴페인의 성공에 크게 공헌한 이들이 있었으니, 바로 샹파뉴 지역의 샴페인 하우스들이었다. 처음에 샴페인 하우스들은 유럽 전역의 왕실에 샴페인을 공급하면서 샴페인의 이름을 알렸고, 후에는 상류층은 물론 중산층 시장까지 공략하면서 저변 확대에 성공한다.
전쟁의 승자가 누구든 이기는 쪽에 샴페인을 팔기 위해 나폴레옹의 진격군보다도 앞서 모스크바로 향했다는 샤를 앙리 하이직, 천부적인 사업 감각으로 과부에서 일약 샴페인업계 스타로 거듭난 클리코 부인, 초대형 술통에 20만 병 분량의 샴페인을 담아 수소 24마리와 말 18마리에 실어 파리 만국박람회장까지 운반한 타고난 쇼맨, 외젠 메르시에. 초창기 샴페인 하우스를 일군 이들의 일화를 읽다 보면 샴페인이 어떻게 화려하고 럭셔리한 이미지로 거듭나게 됐는지 이해할 수 있다.
모엣 샹동, 돔 페리뇽, 뵈브 클리코, 크루그, 볼랑제… 전 세계에 이름을 떨친 샴페인 하우스들의 이야기와 그들의 환상적인 주력 브랜드를 《샴페인 수업》을 통해 만나고 눈으로 맛보자.
| 예술작품 속에서 다양하게 변주되는 샴페인
축하의 모든 순간에는 샴페인이 있었다!
“나는 지금 별을 마시고 있어요.”
베네딕트 수도회의 수도사 돔 페리뇽이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술을 만들어내고 나서 외친 말이다. 하지만 그가 발포성 와인을 발명했다는 이야기는 허구다. 발포성 와인은 오랜 진화의 산물이며, 그가 했다는 이 말의 출처는 사후 200년이 지난 19세기 후반의 인쇄 광고가 유일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샴페인은 오랜 세월 동안 술 그 이상의 의미를 지녀왔다. 작가, 화가, 영화감독들은 샴페인을 부, 지위, 타락, 악행을 상징하기에 안성맞춤인 장치로 보았다. 보나르와 마네의 그림에서, 오스카 와일드와 피츠제럴드의 펜 끝에서, 〈007 시리즈〉를 비롯한 영화와 드라마에서 샴페인은 화려한 주연과 인상적인 조연으로 변주되었다.
비단 예술작품 속에서만이 아니다. 가장 사적인 가족 행사에서 가장 공적인 새 대형 선박의 명명식에 이르기까지 샴페인은 축하의 모든 순간에 스며들어 있다. 우리 삶에 환희를 더하는 샴페인 이야기가 마저 궁금하다면 이 책을 펼쳐보자. 샹파뉴의 별이 담긴 샴페인 잔을 손에 들고서. 행복은 늘 가까이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