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나서 학문에 힘쓰지 않는다면 올바른 사람이 될 수 없다. 이른바 학문이란 것은 이상하거나 별다른 것이 아니다. 다만 그것은 아버지가 되어서는 마땅히 자식을 사랑하고, 자식이 되어서는 마땅히 부모에게 효도하고, 신하가 되어서는 마땅히 임금에게 충성하고, 부부가 되어서는 마땅히 분별이 있어야 하고, 형제간에 있어서는 마땅히 우애가 있어야 하고, 젊은이는 마땅히 어른을 공경해야 하고, 친구 사이에는 마땅히 믿음이 있어야 한다. 이러한 일상의 모든 일은 각각 그 일에 따라 마땅하게 해야 할 뿐이니, 현묘한 것에 마음을 두거나 기이한 효과를 바라지 말아야 한다. 학문에 힘쓰지 않는 사람은 마음이 막히고 학식과 견문이 좁게 마련이다. 그러므로 반드시 책을 읽고 이치를 궁구하여 마땅히 행할 도리를 밝힌 뒤에야 학문의 바름을 얻어 깊은 경지에 다다를 수 있고 실천함에도 바른 도리를 얻을 수 있게 된다. 그런데 요즘 사람들은 학문이 일상생활에 있는 줄도 모르고 높고 멀어서 행하기 어려운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므로 학문하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미루고 스스로 자포자기함을 편안히 여기니, 이 어찌 안타까운 일이 아니겠는가. 내가 황해도 해주의 남쪽에 거처를 정하자 한두 명의 학생이 찾아와 배움을 청했다. 나는 그들의 스승이 될 만한 자질이 없는 것이 부끄러웠다. 그리고 또한 처음 학문하는 사람들이 어디서부터 무엇을 어떻게 배워야 할지 그 방향을 알지 못하고, 또 견고한 뜻이 없이 그저 아무렇게나 이것저것 배우게 되면 피차간에 도움 됨이 없고 도리어 남의 비웃음만 사게 될까 두려웠다. 그래서 간략하게 한 권의 책을 써서 대략 뜻을 세우는 법, 몸가짐을 단속하는 법, 부모님을 봉양하는 법, 다른 사람을 대하는 방법을 서술하고 이를 『격몽요결』이라고 이름하였다. 이에 배우는 학생들로 하여금 이것을 보고 마음을 씻고 뜻을 세워서 즉시 공부에 임하게 하고, 나 또한 오랜 습관에 얽매어 있던 것을 근심했는데, 이것으로 스스로 경계하고 반성하고자 한다.
이처럼 율곡 선생의 『격몽요결』은 수신서이자 인성교육 교재이다. 우리는 『격몽요결』을 통해서 항상 ‘경건하고 진지하고 겸손하게’ 일에 응하고, 항상 마음을 점검하는 자세를 가져야 할 것이다. 따라서 우리 역자는 율곡 선생의 『격몽요결』의 요체는 AI, 메타버스시대에서도 충분한 기능을 발휘할 수 있다고 여겨진다. 즉 이것은, 21세기의 사회가 바라는 훌륭한 인격을 지닌 인간은 『격몽요결』에 근거한 수양공부를 통해서 배출될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율곡 선생은 『격몽요결』의 전체적인 맥락에서 기질은 불변적인 것이 아니라 가변성을 지니기 때문에, 후천적인 수양과 공부에 따라 변화시킬 수 있으며, 인간은 누구나 기질을 청수(淸粹)하게 변화시킴으로써 타고난 우주의 본체를 온전하게 보전하고 실현할 수 있는 성인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음을 강조한다.유학은 궁극적으로 성인이 되기 위한 학문, 즉 성학(聖學)이며 성인이 되는 것은 도덕적인 측면에서 이상적인 인간이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결국 유학은 도덕적 주체성을 확립하고자 하는 기본적인 목적이 그 바탕에 깔려 있는 셈이고, 그렇기 때문에 유학에서는 인성교육과 수양공부가 중요할 수밖에 없다. 이 땅의 초학자들이 부디 『격몽요결』을 통해서 마음의 안정과 위안이 있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