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말 김어준’을 통해 필기구 마니아들의 관심과 지지를 받고 있는 박종진 만년필 연구소장의 매력적인 만년필 이야기
·박목월 선생이 사용한 만년필을 10년 동안 추적한 사연
·김정은과 트럼프는 다르지만, 펜이 닮았다!
·히틀러는 무슨 만년필을 썼을까?
·만년필에서 인문(人文)의 흔적을 찾다
《만년필 탐심》은 만년필에 새겨진 사람과 세상의 이야기를 담은 특별한 여행기다. 2018년에 출간되었던 이 책은 저자인 박종진 만년필 연구소 소장이 인기 팟캐스트 〈월말 김어준〉에 출연하면서 기출간된 책이 매진되어 출간된 개정판이다. 기존의 에피소드에 16편의 새로운 이야기를 추가했다.
이 책의 저자 박종진은 40여 년을 만년필에 꽂혀 인생을 바친 만년필 마니아다. 만년필이 좋아서 만년필을 연구하고 수집하며 관련 자료를 모았다. 그러다 보니 세상만사를 모두 만년필이라는 창을 통해 본다. 만년필을 연구하다가 다른 필기구를 비롯해 종이에까지 관심이 미쳐 필기구의 모든 것을 연구하게 된 필기구 전문가이기도 하다. 을지로에 국내 유일의 ‘만년필 연구소’를 열어 만년필을 좋아하는 이들과 지식을 공유하며 만년필을 수리하다가 2023년에 충정로로 연구소를 확장 이전했다.
그가 만년필 이야기를 시작하면 저절로 귀를 기울이게 된다. 모든 것을 만년필이라는 필터를 통해서 보는데, 이를 통해 인간과 세상을 보기 때문이다. 김정은과 트럼프가 사인할 때 고른 펜과 그 이유는? 박목월 선생이 사용한 만년필은? 히틀러가 쓴 만년필은 몽블랑이었을까?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무슨 만년필을 쓸까? 저자는 만년필을 통해 역사적 사건의 이면에 숨어 있는 숨겨진 에피소드나 인물들의 성격을 밝혀 낸다.
예를 들어 김정은과 트럼프는 북미정상회담 때 둘 다 일반적으로 ‘사인펜’으로 불리는 펠트팁 펜을 사용한다. 저자는 그 이유를 두 지도자의 성향 때문으로 본다. 전 세계가 지켜보는 가운데 자신을 과시할 필요가 있기 때문에 굵고 자연스럽게 쓸 수 있는 펜을 골랐다는 것이다. 대척점에 서 있는 두 사람의 묘한 공통점이다. 두 사람이 사용한 펜은 북미 관계가 기존과는 다른 상황임을 이해하는 데 하나의 실마리가 될 수 있다.
이 책을 통해 보는 세계는 역사적 사건과 인간의 이야기로 채워져 있다. 저자가 이야기하는 42가지 에피소드와 14가지의 만년필 수집 팁은 독자가 만년필을 보는 새로운 시각을 정립하는 데 기준이 될 것이다. 만년필의 물성(物性)에 끌려 만년필 세계에 입문하더라도, 만년필에 묻은 인문의 흔적에 빠지기에 손색이 없다.
·만년필을 대하는 두 가지 마음,
깊이 살펴보는 마음(探)와 ‘욕망하는 마음(貪)을 말하다
만년필은 불편하다. 필기구의 왕좌 자리를 볼펜에게 물려준 지 오래다. 실용성으로는 볼펜에 상대가 되지 않지만 여전히 만년필의 역사는 이어지고 있다. 만년필을 찾는 이들은 여전히 많고, 수집의 대상으로 삼는 사람들도 늘어나고 있다. 도대체 만년필이 무엇이기에 사람들의 관심이 끊이지 않는 것일까?
《만년필 탐심》은 만년필에 대하는 두 가지 마음을 의미한다. 하나는 깊이 살펴보고 공부한다는 의미의 ‘탐’(探, 찾다·연구하다), 다른 하나는 욕망한다는 의미의 ‘탐’(貪, 탐하다·바라다)이다. 만년필만이 아니라 무엇인가를 수집하는 사람들은 이 두 가지 마음을 가지고 있다. 저자는 이 마음을 키워 국내 최고의 만년필 전문가가 됐다.
그가 보여 주는 ‘탐’(探)은 만년필에 대한 집요한 연구와 순수한 사랑이다. 그 결과 찾아낸 결과물들은 흥미로운 내용이 많다. 만년필 탐구는 김정은과 트럼프가 사용한 펜에 관한 이야기, 히틀러가 사용한 만년필 추적기, 영국 여왕이 사용하는 만년필, 영화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의 한 장면에서 시작해 알아낸 미국 대통령의 만년필 세리머니까지, 만년필을 공부하는 과정에서 알게 된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눈길을 끈다. 특히 박목월 선생이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는 만년필을 우연히 고치게 되면서 10년간 그 만년필의 내력을 추적하는 내용은 역사 추리소설을 보는 듯한 재미와 감동을 전해준다.
또 다른 ‘탐’(貪), 즉 만년필에 대한 애정과 사랑을 중심으로 기술한 부분은 만년필을 수집하거나 고치는 과정에서 겪은 이야기들을 모았다. 벼룩시장에서 생각지도 못한 만년필을 구한 이야기, 이베이에서 구한 폐 만년필 더미에서 전설의 만년필을 구한 사연, 한정판 만년필의 성공 비결, 세상에서 가장 독특한 만년필 수리기, 재클린 여사의 라이터가 만년필 세계에 미친 영향 같은 이야기들은 마니아들이라면 지나칠 수 없는 내용들이다.
이 책을 읽는 이들은 만년필을 보는 눈이 달라질 것이다. 만년필에 얽힌 사연을 떠올리며 가지고 있는 펜을 사용하거나, 목적의식을 가지고 만년필을 수집하게 될 수도 있다. 어쩌면 서랍 속에 있던 부모님의 만년필을 꺼내들어 가치를 가늠해 볼 수도 있다. 이 모든 것이 독자를 만년필의 세계로 끌어들이는 과정이 될 것이다. 손해 볼 일은 없다. 어쩌면 서랍 속에서 잠자던 보물을 발견할 수도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