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요리는 여름의 맛을 갈무리하여 가을과 겨울에 꺼내 먹고
겨울의 맛을 음미하며 봄과 여름을 기다리는 일”
아스파라거스, 토마토, 완두콩, 복숭아, 양배추, 무와 무청… 제철 재료의 발견
할머니에게서 엄마에게 그리고 나에게 전해진 제주도의 맛
강굴, 우동, 시금치, 김, 포토푀… 나를 따뜻하게 안아주는 겨울의 맛
간단하고 편하게, 그렇지만 언제나 맛있는 밥과 국 그리고 국수
시오코우지, 미소, 건조… 묵묵히 시간을 기다린 맛
좋은 와인과 어울리는, 그리고 익숙한 재료로 새로운 맛을 이끌어내는 요리들
이 책에서 가장 돋보이는 점은 각 계절의 제철 재료들 본연의 맛을 즐길 수 있는 요리들, 그리고 다양한 활용 방법을 소개한다는 점이다. 생생함이 넘치는 묘사로 맛을 떠올리게 되는 아스파라거스, 토마토, 완두콩, 복숭아… 다양한 채소와 과일을 활용한 요리들의 레시피를 보고 있자면, ‘와, 이런 조합이? 신기한데 정말 맛있겠다!’ 하는 순간을 자주 만나게 된다. 아스파라거스 본연의 맛을 충실히 살리는 아스파라거스 오일밥, 매일 부담 없이 먹는 토마토로 만든 토마토 참치 국수나 무수분 토마토 청국장찌개, 간장 계란 밥처럼 만들어본 계란 잔멸치 비빔면, 아름다움에 눈을 뗄 수 없는 완두콩 카펠리니, 복숭아와 문어와 감자라는 의외의 조합에서 감탄하는 맛을 선사하는 복숭아 문어 감자샐러드… 또, 겨울이 시작될 무렵 만나볼 수 있는 무와 무청 같은 경우, 잘 손질해 갈무리하는 데서부터, 밥에 넣어 무밥을 짓거나 무청으로 김밥을 만들고, 무를 갈아 뭉근하게 끓여 몸을 둥글게 안아주는 맛인 무 수프를 만들거나, 된장과 잘 어울리는 무청으로 숏파스타를 만들기도 한다. 재료들의 생긴 모양을 살피고, 어떻게 요리해야 그 맛을 잘 이끌어낼지 생각하고, 잘 어울리는 다른 재료나 양념은 무엇일지 그려본 다음, 그날의 몸과 마음의 상태에 따라 레시피와 요리법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만들어보는 것.
제주도에서 태어났고 어린 시절 여름방학을 제주도의 외갓집에서 보낸 작가가 소개하는 제주도 고유 음식들도 색다르다. “엄마, 할머니 빙떡 레시피 좀 카톡으로 보내줘.”라고 해서 정리해본 ‘메밀 무 전병’, 엄마의 산후조리를 위해 외할머니가 자주 해주던 메일 조배기’, 제주도 토종콩으로 만드는 ‘제주식 독새기콩국’… 다정하고 따뜻한 추억이 가득한, 작가의 외할머니에게서 엄마를 거쳐 작가에게 전해진 ‘입말 음식’들이다.
“겉옷과 냄비 속 채소가 두툼해지는 계절” 겨울에 유독 찾게 되는 음식들도 따로 정리해, 바람이 차가워지면 찾아볼 수 있게 구성했다. 겨울을 기다리게 하는 강굴, 특히 천수만 간월도 인근에서 잡히는 굴을 탈각한 강굴은 생으로 먹어도, 무와 시금치만 넣고 끓여도 감탄이 나오는 맛이다. 그리고 따뜻하게 먹는 우동도 빼놓을 수 없다. 갓 삶은 면 위에 조심히 올린 계란과 연미색 버터의 조합! 반면 차가운 바람을 맞고 자란 시금치는 달큼한 맛이 환상적이라, 완자로 만들어도 좋고 따뜻한 국으로 즐겨도 좋다. 바싹 구운 김이나 바삭한 조미김도 겨울에 즐겨 먹는데, 크림치즈와 섞어 페이스트로 만들어두면 빵만 구워 발라 먹을 수 있고, 연두부를 추가해 김 수프를 만들면 시원한 국물을 즐길 수 있다. 좋아하는 채소와 소시지나 고기를 잔뜩 넣고 끓이기만 하면 되는 포토푀도 소개한다.
가장 많이 먹고 즐겨 먹는 밥과 국, 국수도 이 책에서 아주 비중 있게 다루고 있다. 까다로워 보이는 솥밥을 “맘 편하게” 짓는 법부터, 집에 있는 재료나 재철 재료를 이용해 자유롭게 짓는 방법들, 그리고 구수한 누룽지까지 즐기는 방법을 제시한다. 밥을 짓는 동안 간단한 재료로 “쉽고 부담되지 않는 선에서” 요리할 수 있는 국들과 다시마 육수, 채수, 멸치 육수, 가다랑어포 육수 등 집에서 쉽게 육수 만드는 법도 소개한다.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아도, 짧은 시간 요리해도 언제나 보답해주는 국수 요리는 작가의 단골 메뉴이다. 우동이든 소면이든 메밀면이든, 또 채소든 고기든 모두 잘 어우러져 익숙하지만, 언제나 특별한 맛을 선사한다.
시간과 함께 맛이 깊어지는 발효와 숙성, 건조와 응축 역시 깊은 맛을 얻기 위해 작가가 공을 들이는 과정이다. 소금 대용으로 쓰거나 어패류나 육류, 두부 등에 발라 숙성시키면 감칠맛이 더해지고 재료도 부드러워지는 시오코우지, 양념이나 조미료로 즐겨 사용하는 미소를 직접 만드는 법과, ‘시오코우지 숙성 돼지 안심 채소찜’이나 ‘시금치 닭가슴살 미소 무침’ 등 각각을 활용해 만드는 요리법도 함께 소개한다. 무, 오이, 버섯 등 말리면 맛이 응축되고 식감도 확 달라지는 채소들과 이를 활용한 다양한 요리법도 함께 찾아볼 수 있다.
생명력 넘치는 내추럴 와인에 대한 열정만큼 그에 어울리는 요리도 늘 고심해온 작가는 제철 재료와 발효식품을 사용해, 와인의 본질과 조화로운 메뉴들을 소개한다. 레몬을 넣어 상큼한 파스타에서부터 서해안 자숙 멸치를 넣은 파이, 주키니를 사용한 초콜릿 테린까지, 기발하고 예쁘고, 무엇보다 맛있는 메뉴들이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고 완벽하지 않아도 맛있다”
자신의 몸과 마음을 살피고, 좋은 재료를 잘 선별하여, 즐겁게 요리한 한 그릇
활기차게, 단순하게, 자유롭게 요리하는 시간이 주는 행복
이 책 전체를 아우르는 에너지는 활기차고 자유롭다. 기본적인 레시피를 제시하고 있지만, 개인의 취향에 따라, 그날의 기분에 따라, 각자의 상황에 따라 무엇이든 조절해 사용해도 충분히 괜찮다고 작가는 강조한다. 책 속의 레시피를 따라가며 내가 좋아하는 재료를 골라, 그날의 기분에 맞게 응용하여 즐겁게 만들어보는 요리는 분명 일상의 리듬을 좀 더 활기차게 만들어주지 않을까.
작가의 바람처럼, 완벽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 그렇기 때문에 기분 좋은 시간이 되기를, 그 안에서 작은 성취감과 기쁨을 누리기를, 요리뿐 아니라 그 시간까지 즐길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