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류 속에 피어난 아름다운 명문들
조선과 유구의 관계는 『조선왕조실록』과 『연행록』, 개인 문집 등 비교적 풍부한 문헌이 존재하지만 관련 연구는 미진하다. 특히 이 책에서 주목하는 한문학 분야는 지금껏 학계의 주목을 받지 못한 분야이다. 하지만 역사 속에 묻혀만 있기에는 당대 조선과 유구 지식인들의 시는 너무나 아름답고 역동적이다.
진실로 어찌 품은 뜻 아니라면/ 험한 곳을 한가로이 유람 가듯 하리.
옳은 일 보면 마음과 뜻 굳세지고/ 곤궁함에 슬퍼하여 눈물 흘리네.
물의 신이 먼저 북을 치면/ 바람 신은 배를 보내지.
착한 집안 자식은 음덕이 있기에/ 눈썹 사이 누런 달무리가 떴네.
_「이예 장군이 유구국으로 사신 간다는 시에 차운함」, 성석린 지음
이예 장군이 바닷길이 험하여 모두 꺼리는 유구행을 수락한 것은 평소 왜적의 노략질에 대한 분개와 그로 인한 백성들의 고충을 해결해야 한다는 뜻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시는 깊은 충정심과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 ‘누런 달무리’를 통해 기쁨을 상징하는 방식이 돋보인다.
각 시에 대한 출전 명기, 용어 설명, 작시 배경 및 해설을 아우르는 본문의 친절한 구성 방식은 조선과 유구의 역사, 그리고 한시에 대한 배경지식이 부족한 독자도 당대 양국의 대화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다.
▶ 조선 문인과 유구 문인의 인연, 문학으로 승화하다
만 리에서 교분 맺어 의기가 투합하니/ 두 나라 사람이 머리 맞대 양춘을 노래하네. (중략)
역 앞에서 수레 덮개 기울이며 이별한 후에/ 태학[橋門]에서 마음 내달리지 않은 날 없다네.
_「고려 사람 이백상에게 드림」, 유구 문인 정효덕
우리 만남은 전생의 인연 덕분이니
기이한 얘기 지금 모두 들을 만하구려.
_「유구국 사신에게 드림. 근체시 14수」, 이수광 지음 中 제7수
유구 문인 정효덕은 조선 문인 이의봉과 북경에서 만난 인연으로 함께 머리를 맞대어 시를 짓고 봄을 노래했던 일을 시로 남겼다. 이수광은 유구 사신과의 만남을 전생의 인연으로 묘사하면서 친근감을 나타내었다. 문학은 작품 그 자체로 당시 사람들의 정서와 정감을 발견하고 이해하는 도구이며, 당대의 모습과 관계를 담고 있는 중요한 역사 자료이다. 이런 점에서 문학 작품은 미시사(微視史)의 중요한 사료이자 이른바 ‘소문자 역사’의 기록이 된다.
조선 문인과 유구 문인들은 험한 바닷길을 넘어 서로 만났고, 시를 주고받았다. 시에 담긴 감정과 사상은 단순한 문학적 표현을 넘어 양국의 외교 관계를 반영하고 있다. 저자는 이를 통해 시대적 분위기와 인물들의 내면세계 나아가 당시의 사회적, 정치적 맥락을 탐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