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랍도록 주목을 끄는 책이다. 시티라이츠서점에 선 채로 단숨에 이 책을 읽었고, 부코스키가 제대로 해냈다는 걸 느꼈다. 좀처럼 되는 일이 없는 남자지만, 그의 글은 진솔하고 특유의 리듬이 살아 있다.”
-아일린 마일스(Eileen Myles, 람다 문학상을 받은 미국의 시인)
발표하는 작품마다 거센 비난을 받으며 주류 문단에서 철저히 외면당한 이단아, 세계적인 추종자를 낳는 작가, 미국 서점에서 가장 많은 책을 도난을 당한 작가, 수많은 창작자에게 영감을 불어넣은 예술가의 예술가, 어떠한 수식어로도 딱히 그 가치를 완벽히 설명할 수 없는 작가 찰스 부코스키. 《우체국》 《호밀빵 햄 샌드위치》 《여자들》 《헐리우드》 《위대한 작가가 되는 법》 《죽음을 주머니에 넣고》 《망할 놈의 예술을 한답시고》 《사랑은 지옥에서 온 개》 등의 작품을 통해 국내에서도 확고한 독자층을 형성했다. 《와인으로 얼룩진 단상들》은 《음탕한 늙은이의 비망록》에서 시작된 ‘부코스키 문학’의 긴 여정을 마무리하는 책인 만큼 그동안 제대로 들여다보기 어려웠던 작가의 내밀한 마음을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다.
아주 어렸을 때 난 굶주린 작가였다. 내가 굶어 죽기 일보 직전이라는 건 별로 흥미롭지 않은 내 인생에서 크게 거리낄 일이 아니었고 죽어 가는 것 역시 그리 나쁘지 않았다. 어쩌면 새로운 인생을 얻지 않을까? 간간이 막노동꾼으로 일했지만 그리 오래 하진 않았다. 월급을 받으면 최대한 오래 쉬었다. 돈은 그저 월세를 내고 술을 마실 정도만 필요하고 우표와 봉투, 타이핑 용지만 있으면 되니까. 일주일에 2~6개 단편을 썼고 전부 다 《애틀랜틱 먼슬리》 《하퍼스》 《뉴요커》에서 거절당했다. 난 이해되지 않았다. 그들 잡지에 실린 글은 꽤 섬세하여 공들였다는 느낌이 들지만 스토리에 생기가 없고 지루했다. 최악은 유머라곤 찾아볼 수 없다는 점이었다. 전부 다 거짓이고 공들여 거짓말을 할수록 잡지에 실릴 확률이 높은 것처럼 느껴졌다.
-본문 중에서
《와인으로 얼룩진 단상들》은 그의 여느 작품과 비교해도 거친 이야기로 가득한 것은 비슷하지만, 완전히 차별되는 특징이 있다. 날카로운 시선으로 담은 냉철하고 현실적인 사유로 가득하다는 점이다. 사실 그의 이야기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믿기 어려운 부분이 많다. 그 내용이 진짜인지 확인할 방법도 없다. 다만 부코스키가 일부는 픽션이라고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이야기가 현실로 느껴질 만큼 그의 목소리는 생동감이 넘치는데, 그것은 밑바닥 생활을 전전한 자만이 쓸 수 있는 글을, 문단의 멸시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버티고 살아남아 썼기 때문일 것이다.
실제로 겪은 일에다 만들어 낸 이야기를 섞으면 예술이 된다. (중략) 마지막으로 글쓰기는 나에게 유일한 길이고 날 화형대에 올려놓는다 해도 성인군자라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글만이 내 유일한 길이라고 믿을 거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가의 문제다. 천 명 중 한 명도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사람이 없다. 내 패배가 곧 내 승리가 될 것이다. 거절은 없다. 난 이 순간에 가능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이제 글에 대한 이딴 이야기는 집어치우자. 여기까지. 기분 좋으라고 여기까지 써 줬다. 이제 잊어버려라. 수요일 오후 터프파라다이스경마장에서 펼쳐진 네 번째 경주는 누가 이겼지?
-본문 중에서
실제로 그에 대한 연구는 아직 완전하지 못할 정도로 왕성하게 글을 썼다. 와인 한두 병을 옆에 두고 늘 타자기의 자판을 두드렸으며, 타자기를 전당포에 맡겼을 때는 천 쪼가리를 종이 삼아 글을 썼다. 생계를 위해 일하느라 허비한 10년의 세월을 보상받으려는 듯 엄청난 글을 쏟아 냈는데, 그 양이 워낙 방대하여 그에 대한 연구는 아직 시작 단계에 불과할 정도다. 《와인으로 얼룩진 단상들》은 그동안 어둠에 가려진 작품인 만큼 부코스키 문학 연구에 중요한 산문집이며, 특히 책에 수록된 〈음탕한 늙은이의 고백〉 〈나이 든 시인의 삶에 관한 단상〉 〈스승을 만나다〉 〈거장을 돌아보며〉에는 그의 여느 작품에서는 좀처럼 찾을 수 없는 진솔한 내면이 담겨 있기에 더욱 높은 가치를 지닌다.
또 다른 시를 쓰기 위해 거짓을 적으라고 손에게 시키지 않을 거다.
-본문 중에서
찰스 부코스키에 대해 선입관을 가지고 책에 인쇄된 글자만 놓고 보면 지독한 술 냄새를 풍기며 음흉하기 짝이 없는 저질 언어를 내뱉어 놓은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 속을 들여다볼 줄 아는 독자라면 단번에 알아차릴 것이다. 시인이자 소설가, 예술가로서 지닌 방대한 지식과 거기에서 비롯한 정확한 판단력과 열정을. 취해서 기억하지는 못할지언정 단 한 단어, 한 문장을 쓰더라도 허투루 끼적이지 않았다고 자부하는 찰스 부코스키. 지키지도 못할 도덕성을 내세우며 거짓과 인용으로 빼곡한 원고를 집에 둔 채 옷을 빼입고 거리를 활보하는 글쟁이들이 쓴 허풍쟁이 ‘가짜’에 진저리가 난 적이 있는가. 그렇다면 이 책 《와인으로 얼룩진 단상들》에서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밑바닥에서 시작한 그가 평생을 살아내며 찾은 ‘진짜’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