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코스키는 바보 행세를 하는 현대판 셀린처럼 인생의 아름다움과 공허함에 대해 본능적으로 느끼는 감정을 스스럼없이 말한다.”
-《퍼블리셔스 위클리》
《우체국》 《호밀빵 햄 샌드위치》 《여자들》 《헐리우드》 《위대한 작가가 되는 법》 《죽음을 주머니에 넣고》 《망할 놈의 예술을 한답시고》 《사랑은 지옥에서 온 개》 등 발표하는 작품마다 거센 비난을 받으며 미국 주류 문단에서 철저히 외면당한 이단아, 시대의 아웃사이더 찰스 부코스키. 《음탕한 늙은이의 비망록》은 그가 글을 쓰기 시작하여 세상을 떠난 지금까지 전 세계적으로 확고한 독자층을 형성하고 유지할 수 있도록 만든, 모든 부코스키 문학의 초석이 되는 책이다.
이 책에 담긴 칼럼이 도움이 되길 바란다. 나한테 돈을 보내 주고 싶다면 받을 수 있다. 날 미워하고 싶어 해도 괜찮다. 내가 시골 대장장이였다면 나랑 자고 싶어 하지 않겠지. 난 그저 야한 이야기를 쓰는 늙은 남자일 뿐이다. 나처럼 당장 내일 아침에 폐간될지도 모르는 신문에 수록되는 이야기를 쓸 뿐이다.
-서문 중에서
《음탕한 늙은이의 비망록》은 존 브라이언이 창간한 지하신문 《오픈 시티》에 게재한 칼럼을 모은 산문집으로, 밑바닥 생활을 전전했다고 당당하게 고백하는 찰스 부코스키만의 실재와 비실재를 오가는 날것의 언어로 가득하다. 소재나 표현의 제재도 없고 글을 지적으로 포장하려는 당시의 고지식한 편집자 필터도 없다. 술에 취해 멋대로 쏟아 낸 듯한 글을 읽고 있자면 킥킥거리는 웃음을 자아낼 뿐이다. 하지만 그 내면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가 살아온 밑바닥 인생을 전전하며 깨달은, 누구보다 예리하고 냉철한 비판 의식을 바탕으로 시대의 씁쓸함을 재치 있게 담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한때 미국 서점에서 가장 많은 책을 도난당한 작가에 이름을 올린 것도 바로 이러한 특징, 인생 밑바닥에서만 볼 수 있는 세상의 이면을 너무나 현실적이고 직설적인 목소리로 고스란히 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모든 것이 우편함에서 시작되고 끝나니 우편함을 제거할 방법만 찾으면 우리의 고통 상당수가 없어질 것이다. 지금 우리의 유일한 희망은 수소폭탄이라 나는 의기소침하고, 이것이 제대로 된 해결책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본문 중에서
그의 시대에는 지금과 같은 온라인 미디어가 없었다. 하지만 우편함이 그 역할을 했다. 그에게 편지를 보낸 사람들은 종이 뒤에 정체를 숨긴 채 은밀하거나 노골적인 메시지를 전하며 그를 괴롭히기도 했는데, 그중 몇몇이 보낸 익명의 편지는 그 악영향만을 놓고 보면 지금의 소위 ‘소통’이라는 명목의 무분별한 생각의 배설과 절대 다르지 않다. 그는 이 우편함만 제거하면 고통이 사라질 것이라 믿으면서도 막연한 제거는 제대로 된 해결책이 아님을 안다. 부코스키 자신도 수상 소식이나 국가 보조금 등 헛된 기대감을 안고 매일 아침 우편함으로 이끌렸던 것처럼 현재를 사는 사람들 또한 무의식적으로 스마트폰을 들고 온갖 콘텐츠를 마구잡이로 눈에 넣으며 하찮은 영혼을 마주하게 되고 이를 경멸하듯이, 시대마다 매체는 어떠한 방식으로든 새로 생기고 사라지며 부작용을 낳으리라는 사실을 예견하고 있었다. 그래서 부코스키는 한시도 펜을 놓지 않았던 것을 아닐까. 자신의 치부를 드러내는 한이 있더라도 누군가는 진실을 말해야 하니까. 그럴듯하게 꾸며낸 문장 뒤에 숨는 법도 없었다. 바로 이러한 점이 부코스키 문학의 특징이다.
대중은 작가 혹은 작품에서 필요한 것을 취하고 남은 걸 버린다. 하지만 그들이 취하는 건 일반적으로 그들에게 가장 덜 필요한 거고, 그들이 버리는 게 오히려 가장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난 대중이 알아차릴까 봐 걱정할 필요 없이 나의 성스러운 기회를 마음껏 누릴 수 있고 우리 위에 더 높은 창조주는 없으니 다들 같은 똥밭에 있는 것이다. 지금 난 똥밭에 있고 다른 이들도 각자의 똥밭에 있는데 내가 냄새를 더 잘 풍긴다고 생각한다.
-본문 중에서
그의 헐벗은 언어를 윌리엄 포크너 같은 작가와 비교하며 순화되지 않은 단어와 문장을 깎아내리려거나 그의 사고방식을 비난하기 위해 애쓰는 건 시간 낭비일 것이다. 그가 꾸밈없이 내뱉은 목소리는 이전 시대에서 볼 수 없는 완전히 새로운 것으로, 셰익스피어나 조지 버나드 쇼 같은 작가의 작품처럼 굳이 감동을 얻으려 하지 않아도 된다. 한 장 한 장 페이지를 넘기며 그의 벌거벗은 내면에 취하노라면 찰스 부코스키처럼 솔직하게 쓰는 작가를 찾기란 결코 쉽지 않으며, 그의 인생처럼 구겨진 종이에 여전히 음탕하고 축축하게 젖은 잉크가 어떻게 읽는 사람의 마음을 흔들고 가슴 깊이 자리하는지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그가 남긴 묘비명 “애쓰지 마라.”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