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주 그 자체에서 흘러넘치는 인문학 이야기!
예부터 음주와 가무는 사교의 소양이었다. 맥주도 마찬가지다. 한국은 한동안 소주파(派)와 맥주파로 나뉘어 치열한 싸움을 벌였지만, 어느 쪽이든 취하기 위한 술부림에 가까웠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음주가 ‘사교의 장’이라는 본연의 노릇을 되찾게 되면서 그 소양에 맞는 주류 또한 각광을 받게 되었다. 그 흐름을 따라 한국 맥주 씬도 점점 넓어지고 다양해지고 깊어진다. 단순히 다양한 맥주를 판매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아예 철학이 있는 특정 브루어리와 제휴를 맺고 그곳의 탭 리스트를 잔뜩 갖춰놓은 가게도 많다. 그리고 그런 맥줏집으로 맥주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힙함을 좇는 사람들이 몰려든다. 한국에서 맥주는 이제 소주를 못 마시는 사람이 취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선택하는, 혹은 소주에 섞어 먹기 위해 존재하는 베이스가 아닌 그 자체만의 매력으로 사람들에게 다가선다.
맥주의 매력으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다양함, 그리고 또 ‘이야기’이다. 옛 독일 왕실과 귀족들도 맛있는 맥주를 수입해 먹는 것에 자부심을 느꼈다고 한다. 신앙을 지키는 수도사들은 사순절 동안 ‘액체빵’이라 부르는, 평소보다 독하게 만든 맥주만 마셨다. 기네스는 맥주를 ‘건강에 좋은 음료’라고 광고했고, 체코와 미국의 회사들은 전 세계에서 상표권 차지를 위해 소송을 진행 중이다. 이 다양한 맥주 그 자체의 이야기들은 즐거운 술자리에 행복한 페어링을 완성해 줄 것이다.
‘오로지 맥주 이야기만 할 것. 그러나 무겁지 않게, 모두에게 평등한 맥주처럼.’
맥주에 미친 사람이 책을 쓰면 편집자가 괴롭다. 책상에 앉아 성 패트릭 데이에 초록색으로 물든 거리를 상상하느라 자꾸만 손이 멈추고, 옥토버페스트의 여섯 개 양조장의 모든 맥주를 들이켜 보고 싶어 좀이 쑤시고, 오로지 베스트블레테렌 시리즈를 맛보고 싶어서 벨기에에 가보고 싶어지거나, 근처에 파는 곳이 없나 검색을 계속하기도 한다. 그러다 보면 깨닫게 되는 순간이 온다. ‘나 지금 정말 맥주 생각만 하고 있잖아?’
독자들 또한 비슷한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그 정도로 저자는 한순간도 길을 벗어나지 않고 우직하게 맥주 이야기만 한다. 저 유명한 세이렌 로고를 보고도, 통영 굴을 맛보러 가면서도, 영국의 콜레라에 대한 비화를 풀 때도 그저 맥주에 관한 이야기만 할 뿐이다. 그리고 이 책에는 저자의 그런 우직함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 책은 제목 그대로, 오로지 맥주 이야기만 하는 책이다. 맥주에 진심인 사람이 어디까지 공부하고 어디까지 이야기를 풀 수 있는지 제대로 보여줄 것이다.
이 책의 특징
하나, 지적 대화를 위한 맥주의 역사
‘역사’라는 단어만 봐도 머리가 지끈거리는 독자라 할지라도 이번 책을 손에 쥐었을 때만큼은 긴장할 필요가 없다. 치열하게 맥주 외길을 파 온 저자는 풍부한 지식을 바탕으로 나라별 맥주의 역사와 그에 얽힌 에피소드들을 간결하고도 가벼운 문체로 마치 ‘썰’을 풀듯 풀어 나간다. ‘맥주’ 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나라인 영국이나 독일부터 체코, 벨기에 등의 나라를 거쳐 우리나라와 일본까지. 가끔은 상표권 투쟁으로, 가끔은 씻을 수 없는 상처로 얽힌 맥주에 관한 역사들을 거침없이 파헤치면서도 생각의 여지를 던져 주는 꼭지들 속에서, 역사는 줄글로 된 죽은 지식이 아닌 생동감 넘치는 대화 주제로서 되살아난다.
둘, 우리와 맥주 사이 숨은 ‘페어링’
역사와 에피소드에 대해서만 말할 뿐 그 맛에 대해 논하지 않는다면 어찌 맥주를 사랑하는 자의 책이라고 할 수 있을까. ‘맥덕’으로 이름을 날리는 저자는 나라별 대표 맥주나 역사뿐 아니라 맥주별 풍미와 어울리는( "페어링"하기에 좋은) 안주까지 간략히 소개하며, 보다 폭넓은 맥주의 풍미 속으로 우리를 끌어들인다. 저자가 소개하는 맥주들 읽다 보면 어느새 우리 주변에 있는 맥주의 유래(와 더불어 그 맛까지)를 궁금해하는 우리를 볼 수 있을 것이다.
셋, 모든 이들을 위한 맥주, 모든 맥덕들을 위한 책
맥주는 예로부터 가격과 다른 술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알코올 도수, 역시 다른 술에 비해 상대적으로 건강하다는 이미지 덕분에 접근성이 좋은, ‘모든 이들을 위한’ 술이었다. 이 책 또한 그런 맥주처럼 모든 ‘맥덕’들을 아우를 수 있는 책이다.
맥주에 입문하기 전 어떤 책을 읽어야 할지 고민하는 예비 맥덕이라면 이 책을 통해 나라별 대표 맥주와 그 역사, 페어링에 대한 기초 지식을 얻을 수 있다. 이미 맥주를 즐기고 있고 어느 정도 알아 가고 있지만 조금은 더 깊이감을 얻고 싶은 맥덕이라면 주류 회사 간의 상표권 전쟁 비화라든지 괴즈, 루트 비어 같은 일반적인 맥주 서적에서 다루지 않는 음료에 대한 지식을 보다 폭넓게 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당신이 이미 모두가 인정하는 맥덕이라면? 저자가 어떤 식으로 ‘썰’을 풀어 독자들을 유혹하는지를 살펴본다면, 당신 또한 어떻게 술자리에서 이 재미난 맥주 이야기를 풀어나가면 좋을지를 가늠할 수 있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