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문학의 전형, 장 데제르 파리(Paris)를 누비다.
『장 데제르의 일요일』은 전통적인 서사 기법과 형식을 탈피한 모더니즘 문학의 여러 경향을 담고 있는데, 일부 다다이즘의 플롯처럼 이야기가 논리적인 인과 관계보다는 무작위한 에피소드로 전개되며 등장인물들의 대화도 비논리적이거나 비일관적으로 보인다.
단적인 예가 책 속에서 주인공 ‘장 데제르’가 거리의 노인이 나눠주는 광고지를 통해 파리를 활보하는 구성은 매우 임의적이다.
또, 이 소설은 실험성도 띄고 있는데, 예를 들어 유일한 친구인 ‘레옹 뒤보르잘’이 설명하는 "단 하나의 o도, 단 하나의 u도, 어떤 종류의 이중 모음도 없는" 축약된 속기 매뉴얼에 관한 예시는 1960년대 등장, 수학적 구조와 제약을 사용해 문학 작품을 창작하는 것을 목표로 했던 ‘조르주 페렉’과 ‘레몽 크노’, ‘자크 루’ 등의 울리포(Oulipo) 작가들의 작품을 떠올리게 한다. 이 책은 이들 작품보다 무려 반세기나 앞서 있다.
하지만 현재에 이르기까지 전혀 촌스럽지 않은 이 작품의 진짜 매력은 무엇보다 산책 문학의 전형을 보여준다는 데 있다.
장 데제르는 그토록 기다리던 일요일이 오면 마치 순례하듯 역사적인 도시 파리 이곳저곳을 누비는데 예를 들어 몽주가(街)에서 스파를 즐기고 포부르몽마르트르가(街)에 있는 이발관에 들려 머리를 손질하는 한편 점심으로 룩셈부르크 궁전 근처의 베지테리언 레스토랑에 들려 건강식을 챙기는 식이다. 또 세바스토폴 대로와 레오뮈르 거리 모퉁이에 있는 유명한 점술가를 찾아 운세를 본다. 그리고 개테가(街) 에서 영화를 관람하는가 하면 마지막으로 북역 근처의 약국에 들려 (성생활에 관한 약을 판매하는 것이 목적인 듯한) 성 위생에 관한 강의를 듣는다.
이쯤 되면, 한국 문학에서도 언뜻 닮아있는 작품 하나가 연상된다. 바로 서울을 정처 없이 방황하다 친구를 만난 후 전차를 타고 돌아오는 이야기를 다룬 박태원의 1934년 작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이다. 방황과 사색을 통해 당시 도시인의 고독과 불안을 다루고 자신만의 행복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지에 대한 답을 갈구하고 있다는 데서 『장 데제르의 일요일』과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은 어느 정도 일맥상통한다.
다만, 1910년대 당시 파리의 도시 외관이 현재에도 그다지 이질적으로 보이지 않는 데 비해 서울은 과거의 모습에서 많이 비켜있는 듯하다.
『장 데제르의 일요일』은 표면상으로는 일상의 무미건조함과 개인의 내면 사이의 대비를 묘사하면서 삶의 의미를 찾는 인간 본성을 탐구하지만, ‘장 데제르’라는 산책자의 발자국을 따라 프랑스 파리의 숨겨진 명소들을 보여준다.
장 데제르의 일요일
Les dimanches de Jean Dézert
일요일이 삶의 전부였던 어떤 남자의 이야기
「……그의 머릿속은 사무실 밖에 있는 시간, 주로 일요일에 대한
것으로 채워져 있다. 매주 일요일은 장 데제르 삶의 전부이다. ……」
-본문 中-
파리의 공무원인 장 데제르의 아파트는 천장이 낮고, 그의 존재도 마찬가지다.
일상은 그의 자연스러운 삶의 방식이다.
그는 매일 저녁 같은 장소에서 유일한 친구 레옹 뒤보르잘을 만나 식사한다.
그에게 유일한 낙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일요일이 있다는 것이다.
일주일 내내 사무실에서 혹은 그의 아파트에서 그는 파리 시내를 돌아다니는 멋진 날을 기다린다.
그리고 그날이 오면 장 데제르는 합승 마차의 이층에 올라 거리에 내 걸린 광고판을 읽거나 거리의 노인이 나눠주는 전단에 이끌려 사우나, 채식 레스토랑, 이발관, 극장 등을 찾는다.
어느 날, 아니 더 정확하게는 일요일, 무의미한 일상을 살아가는 장 데제르는 파리식물원에서 어린 소녀 엘비르와 마주친다.
이 만남 이후 장 데제르의 평범한 삶과 습관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에게 찾아온 삶의 조그만 파장은 예상대로 오래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