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광주와 전남의 이미지
김서라는 2021년 《광남일보》에 사진작가 오종태의 작품을 다룬 미술비평 「역사의 잔해와 무덤 순례자」를 발표하며 데뷔했다. 이 글에서 그는 오종태가 무등산을 찍은 사진작품의 제목을 ‘아우슈비츠’로 다시 이름 붙인 사실에 주목한다. 이를 단서 삼아 일제강점기부터 근대화 시기에 이르기까지 작가의 몸에 스며든 역사의 폭력성을 읽고, 그의 작품을 애도의 비문(碑文)으로 위치 짓는다.
『이미지와 함께 걷기』 1부 ‘전남의 이미지들’에는 이처럼 광주와 전남을 재현한 이미지에 대한 비평이 실렸다. 김서라는 ‘순수한 고향’으로 전남을 기록하고자 했던 사진작가 강봉규의 작품을 비평하며 개발과 보존의 이분법을 벗어나고자 한다. 나아가 광주에 사북항쟁을 ‘폭동’의 이미지로 전파했던 사진보도를 비판하고 이를 덮어쓰는 새로운 이미지를 꺼내 놓는다. 광주에서 활동하는 미술작가 박화연은 직접 사북을 찾아가 관련자들의 증언을 듣고 사북의 모습을 영상으로 기록한다. 근대화 시기에 만들어진 광주와 전남의 이미지들은 여전히 수도권과 지방의 이분법을, ‘전라디언의 굴레’를 만들고 있다. 그 익숙한 이미지를 이탈하는 순간을 포착하는 글은 그 자체로 역사 다시 쓰기이자 정치적인 말하기다.
■ 새로 그리는 도시
『이미지와 함께 걷기』는 이미지 비평인 동시에 새로운 도시를 그리려는 기획자의 제안서다. 2부 ‘광주 2순환도로’와 3부 ‘방직공장의 가장자리’에서 이어지는 글들은 광주 도시개발의 상징인 ‘순환도로’를 중심으로 광주의 구도심과 신도심, 오래된 건물과 재개발이 한창인 공사장 사이를 거닌다. 김서라는 1980년부터 급격하게 진행된 근대화의 결과 파괴된 것들의 흔적을 수집한다. 그가 시선을 두는 곳은 고층빌딩이 지어지기 이전 사람들이 모여 살던 주거지, 그곳의 풍경을 만들던 소리들, 구도심에 여전히 머무는 사람들의 이야기, 오래된 방직공장에 남아 있는 여성 노동자들의 흔적이다. 곧 허물어질 방직공장의 오래된 건물들을 둘러보며 김서라는 여성 노동자들이 함께 울고 웃던 시간을, 고용주의 폭력에 맞서 싸운 기록을 발견한다. 여성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다시 들은 그는 “광주는 섬유공장의 여성 노동자들이 만든 도시”라는 호명으로 도시의 기원을 다시 쓴다. 역사의 흔적과 기억의 파편을 수집하며 도시를 걷고 쓰는 일은 새로운 모양의 도시를 만들기 위한 첫걸음이다.
도시는 점차 그곳에 살아가는 이들의 삶과 동떨어진 방향으로 바뀌고 있다. 사람들이 모여 사는 길과 동네에 그들의 일상과는 무관한 수식어들이 붙고, 도시재생이라는 이름 아래 건물을 허물고 다시 짓는 공사가 끊이지 않는다. 하지만 김서라가 말하듯 도시를 걷는 사람 없이 도시는 있을 수 없다. 따라서 도시에서 살아가는 서로를, 서로의 생존 조건을 계속 마주치는 일은 저항의 시작이 될 수 있다. 도시에서의 삶에 지칠 때 붙잡을 수 있는, 『이미지의 함께 걷기』가 발견해 내는 희망의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