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철학의 첨단, 마르쿠스 가브리엘
그의 사유를 총체적으로 담아낸 마스터피스
현대 사상계에서 가장 각광받는 철학자, 마르쿠스 가브리엘. 그의 독보적 사상인 〈신실재론〉의 총체를 차근히 향유하게 해주는 명저 『허구의 철학』이 출간되었다. 모든 가치의 전복을 외친 포스트모더니즘 시대를 지나, AI와 가상 현실이 새 시대의 정체성이 된 듯한 디지털 혁명기에 이른 지금. 우리는 실재와 허구의 구분이 모호해졌다고 여기는, 이른바 〈탈사실적 시대〉의 존재론적 혼란에 사로잡혔다.
유한성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인간적인 너무도 인간적인 욕망에서 비롯한 이 경향성은, 그러나 허구를 실재에서 분리하여 별도의 영역으로 가두어 버림으로써 오히려 인간 상상력의 경계를 스스로 좁히는 결과를 불러왔다. 실재는 허구라는 배경을 통해 더욱 단단해지고, 우리는 허구를 통해 우리 자신을 객관화한다. 허구들은 우리의 정신적이며 자유로운 삶의 표현이다. 이 책은 근래의 자연 과학적 객관성 강요가 빚어낸 존재와 가상의 잘못된 대립을 바로잡고, 허구를 실재하는 우리 삶의 영역으로 올바로 인식해야 함을 치밀한 논리로 전개한다. 이로써 인간 정신과 상상력의 지평을 넓히는 계기를 마련해 준다.
허구를 실재에서 축출해 버린 자연 과학의 시대,
정신 과학과 사회 과학의 실재성을 복권하다
오늘날 자연 과학과 기술의 비약적인 발전에 주목한 많은 지식인은 이른바 〈자연주의〉에 귀의했다. 자연주의는 자연 과학의 방법론과 성취를 보편적 존재론과 세계상으로 부풀리는 형이상학적 입장으로, 자연 과학의 방법으로 측정하고 탐구할 수 있는 것들만 실재한다고 본다. 이러한 시대정신은 자연 과학적 측정이 불가능하다고 여겨지는 〈허구〉를, 그리고 정신 과학과 사회 과학을 진지한 학문적 담론에서 추방하거나 격하하고 있다. 이에 맞서 『허구의 철학』 저자 마르쿠스 가브리엘은, 허구의 실재성 그리고 정신과 사회의 실재성을 제자리에 돌려놓기 위한 작업에 나선다.
이 책 1부에서는 정신의 실재성을 되찾고자, 우선 허구의 존재론적 실재성에 치밀하게 파고든다. 저자는 〈허구성〉이 엄연히 실존하는 인간다움의 핵심이라고, 곧 정신의 본질적 요소라고 주장한다. 그의 인간관은 우리의 〈자화상 제작 능력〉을 핵심으로 삼는다. 인간은 자화상을 그리고, 거기 맞춰 삶을 꾸려 가는 정신적 동물이다. 자화상이란 〈나는 누구인가〉, 〈나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다. 정신, 곧 자화상을 그리는 능력은 우리를 인간답게 만든다. 인간의 삶꼴(Lebensform)은 물론 인간의 생존꼴(Überlebensform)에 의존하지만, 그 생존꼴로 환원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매 순간 생존의 조건들에 속박되어 있지만, 이것이 우리의 전부는 아니라는 뜻이다. 우리가 경험하는 매 순간은 그저 한순간에 머무르지 않고 우리가 자화상에 비추어 꾸려 가는 삶의 한 단계로서 의미를 획득한다. 이것이 바로 〈정신〉으로, 정신은 잠재적 환상, 곧 허구와 결합되어 있다. 이처럼 자화상 그리기 능력은 인간다움, 정신, 허구를 관통하는 중심축이다.
정신적·사회적인 것의 특성에 주목하며
소셜 네트워크의 착취 구조를 발견하다
이 책 2부에서는 자연주의에 맞서 정신의 실재성을 논증한 뒤, 3부로 넘어가 사회적인 것의 실재성을 주장한다. 여기서 강조하는 〈의견 불일치〉와 〈불투명성〉은 사회적인 것의 본질을 이루는 두 요소다. 저자는 〈인간 사회성의 본성은 의견 불일치, 곧 엇갈림에 기반을 둔다〉고 말한다. 따라서 나와 의견을 달리하는 타인을 받아들이는 문화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타인은 나와 다르게 생각하여 나를 놀라게 함으로써 나의 견해를 수정한다. 거꾸로 나는 나의 견해로써 타인의 견해를 수정한다. (이는 〈실재하는 것이란 나를 착각하게 만들 수 있는 것, 나의 뜻을 꺾을 수 있는 것〉이라는 마르쿠스 가브리엘의 〈신실재론〉 논지와도 연결된다.) 이 엇갈림은 제거해야 할 게 아니라 우리가 사회적 동물로 살아가는 데 반드시 필요한 조건이다. 아울러 저자는 〈실재〉의 정의를 사회적인 것의 〈불투명성〉과 연결한다. 실재는 반드시 불투명한 구석을 가진다. 우리에게 완전히 알려진 것은 실재하는 것일 수 없다. 완전히 알려진 것은 우리를 착각하게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바로 이 〈불투명성〉이라는 요소에서, 흥미롭게도 저자는 소셜 네트워크 비판의 기틀을 마련한다. 그는 〈누군가가 타인에게 해를 끼치지 않으면서 즐겨 하는 행위의 영역〉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한다. 사적 영역은 진정한 공론장을 위한 전제 조건인데, 바로 그 사적 영역을 잠식한다는 점에 소셜 네트워크의 위험성이 있다. 〈소셜 네트워크는 모든 상황과 집안 살림에 개입하는 디지털 기반 설비에 의지하는 탓에 자동으로 공론장의 잠식에, 따라서 민주주의 법치 국가의 잠식에 기여〉한다. 또 소셜 네트워크 사용자는 자신의 자화상을 전시함으로써 사적 영역을 공론화한다. 이로써 〈어디에나 공론장이 있지만 진정한 공론장은 아무 곳에도 없게〉 되는 것이다. 저자는 나아가, 소셜 네트워크는 애당초 〈우리의 자화상 그리기 능력을 공개하고 착취하는〉 것을 〈사업 모형〉으로 채택한 플랫폼이라며, 디지털 기반에서 작동하는 지극히 아날로그적인 착취 구조를 경계해야 함을 강조한다.
이지러진 시대정신을 극복하는, 허구의 존재론적 좌표 찾기
한편 저자는 소셜 네트워크 등 디지털 기술이 총체적 투명성과 완벽한 감시를 불러오리라는 전망이, 바로 그런 상황을 실현하는 데 도움을 주는 이데올로기일 수 있음을 경고한다. 〈디지털화는 무조건적인 해방의 과정이 아니다. 왜냐하면 디지털화는 자유 잠식의 자동화를 옹호하는 이데올로기와 짝을 이루기 때문이다. 그 자동화는 새로운 착취 가능성들의 형태로 현실 역사에 개입한다.〉
〈자유 잠식〉, 바로 이것이 저자가 이 책을 통해 환기하려는 중요한 사안 중 하나일 터이다. 자연 과학적으로 측정되고 증명되는 것만이 실재한다고 보는 자연주의에 맞서, 존재와 가상의 그릇된 대립을 깨어 다양하고 풍요로운 실재를 복원하고, 우리의 〈자유〉에 확고한 실재성을 부여하려는 것. 상상력이 지닌 인간학적 핵심 지위를 재정립하여 인간의 〈자화상 제작 능력〉 즉 〈허구〉의 실재성을 확인하는 이 방대한 철학의 향연은, 위험에 처한 우리의 실재 감각을 회복함으로써 존재론적 혼란을 극복하고 좀 더 바른 시대정신을 세우는 주춧돌이 되어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