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숨을 걸고 탈북한 청년의 30년 동안을 동행 취재한 기록이며, 드라마틱한 그 여정을 간결하고 스피디한 문체와 다사다난한 질곡의 사건들을 흥미롭게 전개한 연합뉴스 김재홍 기자가 이 책을 썼다. 즉, 이 책의 주인공 에디를 지켜보며 응원해 온 기자의 동행 취재기이며, 모든 것을 걸고 두만강 여울을 건너온 대학생의 탈북 32년 다큐멘터리이다.
에디는 북한에서 태어나 중국을 거쳐 한국에 들어왔다. 9년 가까이 서울에서 대학생, 방송인 그리고 사업가로 활동하다 호주로 이민을 떠나 회계사가 됐다. 탈북 귀순자 신분으로 서울에 온 지 얼마 안 된 1995년 3월 말, 에디는 고려대 캠퍼스에서 연합뉴스 기자인 필자를 만났다.
탈북 귀순자의 수는 당시 1년에 10명도 채 안 됐다. 탈북 귀순자들의 기자회견이나 대학 입학 소식은 당시 주요한 뉴스로 다뤄졌다. 에디의 고려대 입학도 충분히 화젯거리가 될 때였다. 필자의 동행 취재는 고려대 근처 안암동 골목 오소리 순대국밥집에서 시작되었다. 에디는 담당 정보과 형사가 몇 번 데리고 간 식당이라고 안내했다. 밥을 먹다가 『북한의 지리여행』(서울:문예산책, 1995)이라는 책을 준비 중이라고 했다.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열풍이 불 때였다. 에디는 북한에서 청진광산금속종합대학 지구물리탐사학과를 다녔다. 지리탐사 실습을 위해 북한 곳곳을 다녀 대동여지도를 만들기 위해 조선 전역을 답사한 북한판 조선시대 김정호를 닮았다. 연합뉴스가 『북한의 지리여행』 서평 기사를 내보내면서, 방송과 신문들이 잇따라 그 내용을 소개했다.
에디는 북한 관련 프로그램에 고정 출연자가 되어, 『평양 가서 돈 버는 108가지 아이디어』 등 북한 관련 책들을 출간했다. 사업에도 손을 대어, 평양옥류관 서울분점을 강남에 열었다. 실향민 등 전국에서 온 손님들이 옥류관 냉면 맛을 보기 위해 문전성시를 이뤘다.
그러다가 영국으로 어학연수 겸 유학을 떠났고 아이들 장래를 위해 호주 이민을 결행한 건, 호주 시민권자인 아내의 영향이었다. 아내는 고등학교와 대학을 시드니에서 다녀 호주가 다른 나라보다 적응하기가 나을 것으로 판단했다. 영국 유학과 호주 이민 등을 합치면 해외에서 생활한 기간이 20년이 훌쩍 넘는다.
호주에서 처음 생활은 전혀 녹록하지 않았다. 모든 것을 새로 시작해야 했다. 골프장 청소원, 우버 기사, 카센터 세일즈맨 등 닥치는 대로 일했다. 당장의 생활안정도 중요하지만 늙어서 자식들에게도 존경받으려면, 에디는 전문직 자격증을 따야겠다고 생각했다. 고려대에서 경영학과를 졸업한 경력을 살려 호주에서 경영대학원(MBA)에 진학, 회계사(IPA) 자격을 취득했다.
덕분에 회계사와 대북투자전문가로서 성공 궤도에 올라서게 됐다. 호사다마라고 할까,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는데, 선천성 신장기형이 에디 몸에서 발견됐다. 신장을 이식하지 않으면 몇 년밖에 살 수 없다는 시한부 선고를 받았다.
그러나 절망 끝에 기적이 찾아왔다. 에디 몸에 아내의 신장을 이식하는 데 문제가 없다는 판정이 나왔다. 스스럼없이 신장 하나를 내어준 아내 덕분에 새 생명을 얻었다. 두만강을 넘어 중국에서 인천항을 통해 한국으로 귀순, 자유의 새 삶을 얻었는데 또 한 번 생명을 얻었다.
호주 병원에서 수술 진행 과정이 너무 늘어진 탓에, 한국의 병원에서 수술할 방법을 찾았지만, 코로나19로 비행기 탑승 등이 쉽지 않았다. 결국, 호주에서 수술을 받았다.
시한부 삶에서 벗어나자, 탈북 32년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기록으로 남겨두지 않으면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삶이 될 것 같았다. 에디는 북한, 한국, 영국, 호주 등 체제와 환경이 전혀 다른 곳에서 살았다. 환경과 언어, 체제가 다른 곳에서 만난 사람들 그리고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었던 원동력 등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무엇보다 “한국과 호주 등 자본주의 시장경제 체제에서 누구보다 잘 적응할 수 있던 원천이 무엇이었을까?”라는 물음에 답하고 싶었다. 에디는 우리 민족의 핏속에 흐르는 개성상인의 DNA가 자신의 심장을 두드려 깨웠다고 필자에게 힘주어 말했다.
이 책의 주인공 에디는 북한을 벗어났다. 한국에 들어와 새로운 터전을 일궜다. 그마저도 오래 있지 않고 호주로 날아갔다. 에디는 북한 공민증과 대한민국 주민등록증, 호주 시민권 증서 등 3개 신분증을 갖게 됐다. 필자는 이 여정에서 겪은 에디의 긴박하고 절절한 순간들을 박진감 넘치게 책에 담았다.
필자와 에디의 이러한 정서적 소통은 어린 시절 지리산 자락에 살면서 천왕봉 등 산만 바라보고 자랐던 필자와, 북녘 산맥 속에서 자란 에디가 처음부터 친숙하게 느껴진 듯하다. 우리는 에디를 통해 북한의 삶을 조금이라도 들여다볼 커다란 기회를 얻을 것이다. 이 책을 집필한 연합뉴스의 대기자 김재홍은 사실에 기반하여 사건들을 스피디하고 흥미롭게 전개했다. 미지의 독자들에게 북한을 바짝 들여다볼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