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과생만의 섬세하고 날카로운 시선으로 분석한
대한민국의 실리콘밸리, 판교 적응기
특별한 기술이 없어서 더욱 특별한 문과생들의 무한한 잠재력을 주목하라!
세상의 모든 편의 용품들은 누군가의 불평불만에서 시작됐다. 전 세계인들의 사랑을 받는 감자칩은 손님 중의 한 사람이 주방장의 감자튀김이 너무 두꺼워 맛이 없다고 불평불만을 하자 주방장이 홧김에 얇게 썰어 튀겨내면서 만들어진 작품이다. 지우개 달린 연필 역시 지우개를 자주 잃어버리던 화가가 자신의 건망증에 불만이 쌓여 거울에서 모자를 쓴 자신의 모습에 아이디어를 얻은 뒤 연필 끝에 지우개를 묶어 쓰면서 만들어졌다.
바로 이 불편을 정의하는 것이 문과의 역할이다. 막말로 쉽게 이야기하자면 ‘불평불만’, ‘투덜거림’이 문과생들의 장기다. 하지만 이 투덜거림은 그저 쓸데 없는 하소연으로 치부할 수 없는 수준이다. 이들의 고민은 심연만큼의 깊이가 있기 때문이다.
이들의 불평불만을 실제 업무로 실행시켜보면 1. 불편함을 정의하고, 2. 보기 좋게 정리하여 설득하는 것일 테다. 1번이 ‘사회적 통찰력’이라면, 2번은 ‘커뮤니케이션 능력’이다.
즉, 필연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남다른 시각과 소통 능력이 바로 문과생만이 가지고 있는 최적의 특기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 문과인들은 세상 어디든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공기의 존재가 부족하거나 사라진 환경에서야 그 가치의 무게를 인정하듯 너무나 흔한 모습으로 우리 주변에 포진해 있기에 이들의 가치를 인정해 주지 않는다. 특별하지 않기에 사소하게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IT 회사 속 문과의 직무가 이과인들보다 탁월하다고 당당히 이야기한다. 그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특정 기술이 없기 때문’이다.
‘특정 기술’이라는 명목으로 문과인들의 역할을 좁게 한정하려고 한다면, 오히려 점점 더 설 자리가 없어질 수 있고, 그럴수록 다른 누군가로 대체할 가능성은 커질 것이다. 그러니 영역을 한정하지 않고, 기획이든 운영이든 내 직무의 이름이 무엇이든 확장하고 키워 나가는 것이 문과인들의 숙명이자 곧 그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잠재적 재능일 것이다.
팬데믹 시대를 거치며 우리는 비대면의 부자연스러움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만큼 한층 더 진화했고, IT 산업은 더욱 큰 관심을 받았으며, 이 산업에서 첫 시작을 꿈꾸는 이들의 수요가 기하급수적으로 폭발하기 시작했다. 일선 고등학교에서는 오직 이과, 그 중에서도 공학과만이 살길이라는 듯이 문과생들을 이과계열에 욱여 넣고 억지스런 전공적합성 학업이 진행되었다. 그 중에서도 확실하고도 명확한 업무를 띈 ‘개발자’라는 직종은 가장 핫한 직무로 주목을 받았다. 수많은 부트캠프 프로그램이 생겨났고, 어찌 보면 개발자가 산업을 구성하는 직무의 표준이 된 것 같은 느낌마저 든다. 개발자가 아니라면 감히 판교에는 입성조차 꿈꿀 수 없겠다는 생각이 대세였다.
하지만 어떤 산업의 어떤 서비스일지라도 세상에 나오기까지는 수많은 구성원의 노력은 필수적이다. 그들이 하는 일은 서로의 존재를 알 수 없을 정도로 천차만별이고, 그 속에는 이과형과 문과형 직군이 골고루 포함되어 있다. 결과적으로 문과와 이과, 그들의 가슴과 머리가 만나 서로의 기술을 합작해 최고의 상품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처럼 어떤 전문성을 가지고 있든 모든 산업에는 이과와 문과 모두의 노고가 필요하다.
저자가 이 글을 쓰리라 결심했던 이유는 IT 산업에서 ‘문과형’ 직무를 시작하려는 이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 싶은 ‘간절함’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문송’ 시대에 200% 문과형 머리로 성장한 저자가 극강의 IT 계열사들이 촘촘하게 모여 있는 판교에서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많은 문과인들에게 자신감을 북돋아 준다면 그만한 기쁨도 없을 것이라는 말을 전하며, 이만 총총 글을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