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모데후서 3:16-17은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라고 말하며, 장로회 신조 1조는 “신구약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니 신앙과 본분에 대하여 정확무오한 유일의 법칙이다”라고 선언하며 다른 교단의 신조도 성경에 관하여 비슷한 내용을 규정한다.
이 성경 구절 또는 신조를 추상적으로 읽을 때는 아무 문제가 없다. 그러나 우리가 당면하는 구체적인 문제들에 관해 성경으로부터 지침을 구하려고 할 때는 얘기가 달라진다. 성경은 현대의 복잡한 문제 대다수에 관해 침묵하며, 때로는 현대 과학이 밝혀낸 우주와 지구와 생명의 기원에 관한 내용과 모순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이집트에서 노예 생활을 하다 거기서 탈출한 이스라엘 민족에게 가나안 민족을 진멸하라고 하는 것처럼 현대인의 도덕 감정에 어긋나는 명령을 하기도 하고, 예수의 생애에 관해 사복음서가 서로 다르게 기술한다거나 고대 이스라엘의 왕정에 대해 (사무엘서 및) 열왕기와 역대기가 다른 그림을 제시하는 것처럼 성경 상호 간에 모순이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런 상황에 직면해서 우리는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가?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이라면 성경이 틀렸고 현대의 과학적 진리와 경험적으로 확인될 수 있는 사실만이 옳다는 견해를 취할 수는 없다. 저자는 많은 그리스도인이 오늘날 우리의 합리적 사고의 틀을 통해 읽은 성경을 방어하라고 가르치며, 그러기 위해 애쓰느라 스트레스를 받고 성경의 진정한 의미를 놓친다고 말한다. 대신 저자는 우리에게 성경에 나와 있는 내용을 그대로 인정하고 그 구절이 고대인의 맥락에서 그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었는지를 묻고, 이를 바탕으로 그것이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진지하게 물으며 성경에 우리의 기대치를 부과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신뢰하면서 성경을 읽으라고 도전한다.
이를 위해 저자는 먼저 가나안 족속을 진멸하라는, 우리에게 매우 불편한 폭력적인 하나님 문제를 제시하고, 이 명령과 관련하여 우리가 고려해야 할 다양한 요소를 제시한다. 이어서 저자는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에서 모순되는 것처럼 보이는 부분들과 당혹스러운 부분들을 제시하고 우리가 성경에 대해 어떤 태도로 접근해야 하는지를 예수와 바울의 예를 통해 보여준다.
저자는 성경이 아니라 예수가 기독교 신앙의 진짜 초점이라고 강조한다. 곧 성경의 문자적 해석을 너머 예수 안에서 온 인류를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이 초점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예수가 성경을 통해 서술된 이스라엘의 이야기의 출발 지점이자 종료 지점이며, 성경에 기록된 문자들이 그 이야기를 견인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가 견인하신다. 예수는 성경보다 크시다. 이 점을 염두에 두고 성경을 읽으면 그동안 문자주의에 갇혀 어둠속을 헤매는 것 같던 성경 읽기에 서광이 비추는 것을 경험할 수 있다.
오늘날 우리는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고 성경을 존중하려는 신실한 그리스도인이 “성경의 무오성”에 관한 기계적인 이해로 말미암아 성경 기록의 문자적 의미를 맹목적으로 신봉한 나머지 거짓의 수렁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가짜 뉴스의 주된 생산자와 전파자와 소비자 역할을 함으로써 우리 사회에 커다란 해악을 끼치는 현실을 목도하고 있다. 본서는 성경을 맹목적으로 방어하기 위해 우리의 합리적 사고를 투영하여 성경을 왜곡하는 것이 아니라, 이 책은 말하는 내용에 관해 원래의 상황과 맥락에서의 취지를 알고 그러한 이해를 바탕으로 오늘을 살아가기 위한 지혜를 탐색하려는 사람에게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책이다. 확실히 독자들은 저자의 주장에 동의하든 그렇지 않든 이 책을 통해 이전과는 다른 눈으로 성경을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시간을 내어 정독할 것을 적극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