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인권위원회가 직접 기획한
우리나라 최초의 인권만화!
보다 선명하고 풍성해진 개정판으로 돌아오다
"창비인권만화"는 국가인권위원회가 인권의식 증진을 위해 손수 나서 추진한 인권문화 콘텐츠 제작 사업의 일환으로, 만화의 유쾌함과 인권의 유익함을 접목하려는 뜻깊은 시도로 서 출발했다. 인권위의 값진 기획에 최규석, 손문상, 정훈이, 굽시니스트 등 내로라하는 인기 만화가들이 기꺼이 뜻을 함께하고자 한자리에 모였다. 만화가들은 1년 넘는 시간을 오롯이 내어 우리 사회의 차별에 관해 각자 소재를 정해 해당 분야를 조사하고 취재했다. 인권위에서 주최하는 강의를 듣고 토론도 하면서 틀을 잡아나갔다. 최종 완성된 작품을 놓고 수차례 내용 수정과 사실 확인을 거쳤다. 인권을 주제로 한 최초의 만화 출간 프로젝트였기에 모든 과정이 순탄치 않았지만, 숱한 담금질을 거쳐 마침내 출간된 "창비인권만화"는 일상의 차별을 잡아내고, 편견을 깨뜨리고, 낮고 어두운 곳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귀중한 작품으로 오랜 세월 빛을 발해왔다.
혐오와 차별로 사회적 갈등이 나날이 격화되고 있는 2024년, 여전히 ‘인권’이 절실하고 궁금한 지금-이곳의 독자들을 위해 "창비인권만화"가 새로이 재탄생했다. 이번 개정판은 빛바랜 만화 데이터를 손보고 인쇄 방식을 최신화해 훨씬 선명하고 또렷해진 그림을 자랑한다. 남아선호사상, 산업연수생 제도 등 오늘날에는 낯설게 느껴질 수 있는 시대적 개념에 대한 친절한 설명을 덧붙여 인권 의제에 관한 더욱 풍성한 이해를 돕는다. 한 손에 쏙 들어오는 크기로 판형을 조정해 보다 편안하게 읽히는 독서 경험을 제공하며, 표지는 산뜻하면서도 젊은 감성을 탑재한 새 옷으로 갈아입었다. 한국 최초의 인권만화로 탄생한 "창비인권만화"는 이제 우리 사회 인권사(史)를 증언하는 기념비적인 작품이자 ‘검증된’ 인권 교육 베스트셀러로서 새로운 세대의 독자들을 맞이할 채비를 마쳤다.
최고의 만화가들이 한술 한술 퍼담아
든든하게 지어낸 인권 한그릇, 『십시일反』
제목 ‘십시일反’에는 여럿이 모여 만든 책 한권으로 차별에 맞서겠다는 의도가 깃들어 있다. 차별 반대(反)를 넘어 우리의 지독한 편견과 굳어버린 습관을 통쾌하게 뒤집어(反)보려는 바람도 함께 담았다. 사회계층, 빈부격차, 노동, 교육, 여성, 장애인, 이주노동자, 성소수자 등 한국사회에 존재하는 여러 차별의 실태에 관한 쉽고 재미있는 백서인 동시에 우리의 자화상이 예술적으로 형상화된 감동적인 작품집이다. 각 작품의 주제와 의의를 재차 곱씹게 해주는 홍세화의 단정하면서도 유려한 발문은 깊이 있는 사유의 시간을 선물한다.
손문상의 만평은 우리 사회 구석구석을 훑으며 날카롭게 포착한 갖가지 차별의 현실을 한컷짜리 만화들로 풍자했다. 특히 지역, 병역, 비정규직 등 계층간 차별에 주목해 도처에 내면화된 차별의 논리들을 깔끔한 손맛으로 풀어냈다. 홍승우는 소위 ‘정상가족’ 내의 고정된 성역할에 돋보기를 들이대 깊게 파고든다. 임신과 육아, 가사노동과 직장생활을 생생하게 그리면서도 그 안에 웃음을 실어내는 장기를 유감없이 발휘한다. 홍윤표는 누구에게나 익숙한 동화를 뒤집어봄으로써 편견의 싹을 찾아냈다. 「미운 아기오리」에서 따돌림 문제를, 「인어공주」에서 장애인권 문제를, 「잠자는 숲속의 미녀」에서 여성문제를 이끌어내는 작가의 발상이 신선하다.
이희재의 「첫발자국」은 한 장애 학생이 학교에서 부딪히게 되는 차별과 이를 극복하는 과정을 잔잔한 필치로 그렸다. 일상에서 ‘이동’과 ‘교육’이라는 기본권이 어떻게 침해받고 있는지를 꼼꼼히 묘사했다. 조남준은 ‘누렁이’라는 소재로 사뭇 분위기가 다른 두 작품을 만들었다. 「누렁이 1」에서는 아파트 평수에 따라 나눠지는 계층의 문제를 아이들의 세계를 통해 표현했고, 「누렁이 2」는 가부장의 폭력을 가슴 아프도록 사실적으로 다루고 있다. 이우일은 「아빠와 나」 연작을 통해 소수자들에게 오만함과 폭력으로 발현되는 지독한 편견을 전시한다. 심각한 주제를 톡톡 튀는 웃음에 버무려낼 줄 아는 작가의 재능이 빛난다.
유승하의 「새봄나비」는 여성 장애인 운동가의 실제 삶을 바탕으로 한 작품이다. 장애인의 위태로운 생존권을 고발하고, 장애인은 양육권을 행사할 자격이 없는가 하는 문제를 우리에게 던진다. 장경섭의 「커밍아웃 블루스」는 한 동성애자가 아버지에게 커밍아웃하는 장면을 보여준다. 독특한 분위기와 우울한 독백은 성적 소수자의 고뇌를 전달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이 책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최호철의 「코리아 판타지」는 이주노동자들의 고단한 일상을 짜임새 있는 구성으로 극화한 수작이다. 꼼꼼한 취재를 바탕으로 한 사실적인 묘사와 극적인 전개가 돋보인다.
자칫 무거울 수 있는 주제지만 만화가 각자의 개성을 저마다의 형식으로 자유롭게 표현하여 어린이·청소년부터 성인까지 다양한 만화적 미학을 체험하며 흥미롭게 일독할 수 있다. 습관이 되어 이제는 익숙해지기까지 한 일상 속의 차별을 발견하고, 낯설지만 결국 우리 자신의 모습인 소수자들의 삶을 따뜻한 연대의 시선으로 바라보게 하는 길잡이로 손색없는 인권만화집이다.
** 사람은 이상한 동물이다. 자기와 비슷한 사람을 만나면 차이를 찾으려 애쓰고, 자기와 다른 사람을 만나면 자기와 같지 않다고 문제를 제기한다. 이 만화책은 이 이상한 동물들의 사회를 그리고 있다. 여러명의 화백이 각기 독특한 화법으로 내가 속하지 않은 집단을 차별하는 사회의 모습을 다양하게 그린 것이다. 일상에 바쁜 어른일지라도 잠시 짬을 내어 이 책을 읽고, 자라나는 세대와 토론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란다._홍세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