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 그대로가 수행이었던
간화선 선지식 고우 스님의 아름다운 여정!!
고우 스님은 군 복무 중 불치병을 얻자 세상을 떠날 결심을 하고 깊은 산속 암자인 수도암을 찾았다가 불법을 만나 스물다섯에 출가하였다. 그때가 1961년으로, 대한민국은 물론 불교계도 일제강점기 여파와 한국전쟁 후유증으로 혼란한 와중이었다.
이듬해 대한불교조계종이 출범하자 그동안 사찰의 주인 노릇을 하던 대처승을 몰아내는 정화운동이 대대적으로 일어났다. 고우 스님도 청암사 정화, 월정사 정화에 참여하여 종단을 제대로 세우는 데 앞장섰다. 불교 공부에도 재미가 나서 고봉 스님, 관응 스님, 혼해 스님에게 경전을 공부했다. 그러다 화두 참선에 발심이 나서 1965년 향곡 스님 문하에서 첫 안거를 한 뒤 평생 선의 길을 걸었다.
이때부터 고우 스님은 종단을 위해 공심으로 봉사한 삶, 그리고 선사로서 간화선을 널리 알리기 위한 행보라는 두 가지 길만 오롯이 걸었다.
봉암사 제2결사로 참선 수행의 기반을 확립하고
선풍을 진작한 선승 고우 스님의 진면목
봉암사는 구산선문으로 개산하여 전통을 이어오다가 1947년 성철, 자운, 보문, 청담 스님 등이 ‘부처님 가르침으로 돌아가자’는 기치로 결사가 이루어진 곳이다. 그러나 한국전쟁으로 결사가 중단된 이후 방치되었다가 1969년 고우 스님이 수좌 도반 10여 명과 함께 구산선문과 결사의 전통을 되살려 ‘부처님 가르침대로 살자’는 뜻을 모아 봉암사 제2결사를 한 것이다.
당시 한국불교에는 문중과 교구 중심의 종단 체계가 정착되어 갔지만, 고우 스님을 비롯한 수좌 도반들은 봉암사만이라도 부처님 가르침을 오롯이 따르며 수행하는 수좌 원융 도량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 생각을 실천한 것이 바로 봉암사 제2결사 정신이다.
고우 스님은 총무 소임을 맡아 봉암사 사찰림을 베어내던 산판 문제를 해결하다 감옥에도 다녀오는 등 온갖 수난을 당하면서도 마침내 사찰림을 지켜냈고, 1977년에는 주지 소임을 맡아 쌍룡 김석원 회장의 도움으로 선방을 지어 선찰다운 면모를 갖추고는 2년 만에 주지를 내려놓고 제방 선원을 오가며 정진했다. 그러나 어디서든 봉암사 일이라면 불원천리 달려갈 만큼 애정이 각별했기에 돌아가실 무렵 수좌 스님들이 봉암사로 모셔 그곳에서 열반에 들었다.
이 책에는 성철 스님 이후 봉암사를 다시 결사 도량으로 일으켜 세운 고우 스님의 이야기가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1969년 봉암사 제2결사 이야기가 정리되어 공개되는 것은 이 고우 스님 일대기가 처음이라 한국불교 현대사에서 사료적 가치도 큰 책이라 하겠다.
평생 참선 수행자의 길을 걸으며
간화선의 대중화, 세계화에 쏟은 스님의 원력행
고우 스님은 한국의 전통 수행법인 간화선을 널리 알리는 데도 앞장선 분이다. 평생 불교 공부를 한 끝에 ‘간화선이 최상승’이라는 확신을 얻은 스님은 간화선의 대중화를 위해 무여, 혜국 스님 등 전국 선원장 스님들과 함께 『조계종 수행의 길, 간화선』(조계종출판사)을 펴냈다. 또한 간화선을 알리기 위해 전국 어디든 직접 달려가 법문하셨고, 말년에 창건한 작은 암자 금봉암에 주석하며 찾아오는 수행자들의 수행을 적극 도왔다. 스님에게 화두와 법명을 받고 전국에서 정진하는 재가 제자들이 1000여 명에 이르렀다. 이때 재가 수행자와 고우 스님을 연결해준 이가 바로 이 책의 저자 박희승 거사다.
약 20년간 고우 스님을 따르며 수행해온 재가 불자, (사)한국명상지도자협회 박희승 이사는 이러한 인연으로 이 책을 집필했다. 그동안 스님에게 직접 들은 이야기와 도반 스님들을 찾아가 취재한 이야기, 전국 각지의 수행처를 답사하며 취재한 내용까지 꼼꼼히 기록한 덕에 약식 평전이라 할 수 있는 고우 스님의 수행 일대기가 대중에게 선보이게 되었다.
시간순으로 스님의 출가와 공부 과정, 수행 체험, 공심으로 임한 봉암사·조계사 소임 살이와 10.27법난 수습 이야기, 두 번의 깨달음과 성철 스님과의 짧지만 인상적인 법연, 간화선에 쏟은 애정과 열정 등이 총 4장에 걸쳐 펼쳐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