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치 있는 대화, 강렬한 이미지로 가득한
작은 철학자를 위한 잠자리 그림책!
잠자리에 들기 전 루트비히는 방에 코뿔소가 있다고 주장한다. 아빠는 루트비히가 가리키는 대로 방 구석구석을 찾아보지만 어디에서도 찾지 못하고 코뿔소가 방 안에 있을 수 없는 이유를 대며 설득하려 한다. 그러나 루트비히는 아빠의 논리에 쉽게 승복하지 않고 영리한 질문을 이어 나가며 논리의 허점을 파고든다. 아빠는 방에 코뿔소가 없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을까?
‘눈에 보이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는가’ ‘어떤 것이 없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는가’라는 철학적 질문을 다룬 이 책은, 철학자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과 스승 버트런드 러셀의 이른바 ‘코뿔소 논쟁’을 부자간의 재치 있는 대화와 강렬한 그림으로 펼쳐내고 있다. 둘의 대화를 읽는 내내 어린이 독자들은 루트비히의 재치에 찬사를 보내고, 옷장, 침대 아래, 책상 밑, 천장 등에 날렵하게 숨어 버려 아빠는 보지 못하는 코뿔소를 찾아내는 쾌감을 만끽하게 될 것이다.
또한 어린이의 유연하고 무한한 상상력과 어른의 무디어진 감각과 논리의 벽이 부딪히며 만들어 내는 질문과 대화는 ‘철학’이란 사고의 즐거운 모험임을 보여 주며 독자들에게 ‘철학’ 해 보기를 권한다. 어린이와 어른 모두에게 질문을 던지며 인식의 전환을 이끌어 내는 유쾌한 철학 그림책이자 다정한 잠자리 그림책이다.
■ 어떤 것이 ‘없다’는 것을 과연 증명할 수 있을까?
어린이의 침실로 데려온 비트겐슈타인의 ‘코뿔소 논쟁’
“코뿔소가 크든 작든 이 방에는 없어.
코뿔소는 동물원에나 있지.”
“아빠가 증명할 수 있어요?”
언어철학과 논리학에 몰두했던 20세기 철학자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은 어느 날 스승 버트런드 러셀과 논쟁을 벌인다. 비트겐슈타인은 방에서 코뿔소를 찾지 못했다고 해서 코뿔소가 없다는 증거로 충분하지 않으며, 그러므로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없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두 철학자의 이 ‘코뿔소 논쟁’은 어떤 것이 없다는 것을 과연 ‘증명’할 수 있느냐에 관한 질문이었는데, 이 책에서 꼬마 루트비히가 그것을 명쾌하게 보여 준다.(이 책 끝에 철학자란 무엇이며 코뿔소 논쟁이 무엇인지 알려주는 도움글이 실려 있다.)
코뿔소에서 시작한 루트비히와 아빠의 대화는 돌연 달로 뻗어나가고 나서야 마무리된다. 코뿔소는 방에 절대 있을 수 없다는 아빠의 주장에 루트비히가 갑자기 “아빠, 달은 보여요?”라고 물은 것이다. 달이 다른 쪽에 있어서 안 보인다고 답하자, 루트비히는 보지 못하는데 다른 쪽에 있다는 걸 어떻게 아느냐고 되물으며, 보이지 않아도 있을 수 있다는 걸 아빠 스스로 답하게 한다. 그럼에도 아빠는 달을 수천 번도 넘게 보았기 때문에 오늘도 달이 저쪽에 있다는 걸 알지만, 반대로 코뿔소는 방에서 한 번도 본 적이 없고, 있었던 적도 없고, 앞으로도 절대 없을 거라고 단언한다. 이때 루트비히가 다시 반박한다. “하지만 그걸 증명할 수는 없잖아요.” 아빠는 이제 빠져나갈 길이 없다. 이 영리한 꼬마 철학자에게 깨끗이 승복하고는 잘 자라며 다정한 뽀뽀를 건넨다. 아빠가 나가고 난 방에서 루트비히와 코뿔소가 굿나잇 인사를 나눈다.
어린이 세계에서 상상 속 누군가와 대화를 하고 실재한다고 믿는 일은 흔히 있다. 이때 어른의 반응과 태도는 이후 아이의 사고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코뿔소랑 이야기하고 있었다는, 일견 허튼소리로 여길 수 있는 루트비히의 말을 무시하지 않고 구석구석 코뿔소를 찾아보고, 끈질긴 질문에 끝까지 응대해 주고, 마침내 루트비히의 말에 수긍하는 아빠의 태도는 멋지다. 아이의 생각을 들어주고 대화를 나누는 아빠가 있기에 루트비히는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고 사고의 모험을 즐기며 철학자가 되기를 꿈꾸었을 것이다.
■ 빛과 그림자의 강력한 유희로 만든 매력적인 일러스트레이션과 구도
2023년 볼로냐 올해의 일러스트레이터 골든 코스모스의 역작!
이 책에 그림을 그린 골든 코스모스는 2023년 볼로냐 올해의 일러스트레이터로 선정된 듀오 일러스트레이터로 한국에 처음 소개하는 작가다. 뉴욕 타임즈, 워싱턴 포스트, 디 차이트 및 세계 주요 미디어에 매주 삽화를 그리고 있는 이 둘은 실크 스크린을 즐겨 작업하는데, 이 책에서는 파랑, 빨강, 노랑 별색 세 가지를 사용해 일곱 가지 색깔을 만들어 내어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를 절묘하게 묘사했다. 골든 코스모스는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밝혔다.
“빛과 그림자는 사물과 공간을 정의하고, 사물의 위치를 파악하고, 그림의 리듬을 설정합니다. 반쯤 어두운 그림자 속의 코뿔소는 무형의 상상을 상징하고, 루트비히는 어린아이 같은 열정적인 에너지로 빛과 명료함을 상징합니다. 둘이 함께 긴장감을 조성하지요.”
골든 코스모스의 전략은 매우 성공적이다. 특히 루트비히의 빨간 머리와 잠옷을 보자. 루트비히의 머리에는 형광을 사용해 어둠 속에서도 밝게 빛난다. 이는 확신에 차서 자기 주장을 펼치는 어린이, 명료한 빛의 세계를 보여 준다. 그리고 초록빛 잠옷을 가만히 보면 코뿔소가 그려져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빛의 각도에 따라 드러나기도 안 보이기도 해서 ‘보이지 않으면 없다고 할 수 있는가’라는 이 책의 주제를 다시 한번 상기시킨다. 뿐만 아니라 방 구석구석에 놓인 장난감과 갖가지 물건들도 그 역할을 해내고 있으며, 앞면지와 뒷면지의 차이를 확인하며 보이지 않는 것을 상상하는 즐거움을 안겨 준다.
*이 그림책을 즐기는 특별한 방법 : 밤에 불을 끄고, 혹은 깜깜한 곳에서 UV랜턴으로 책을 비춰 보자. 장면마다 루트비히의 머리에 사용한 오렌지 별색의 형광빛이 드러나며 어둠 속에서 환상적인 색채가 펼쳐진다. 한 책을 두 가지 버전으로 즐길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