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 학생이 한 명뿐이라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학교 교육, 안녕하신가요?
학생 여러 명, 과목 선생님 한 명. 우리가 지금껏 봐 온 전통적인 학교 교육 현장의 모습이다. 짧은 시간에 더 많은 지식을 가르치려는 효율성에 기반한 교육 시스템이다. 이 시스템에서 학생 한 명 한 명은 잘 보이지 않는다. 고유명사 학생 대신 보통명사 학생만 보인다. 보통명사로서의 학생은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하고, 한눈 팔면 안 되고, 놀면 안 되고...학업 성취를 위해 현재를 참고 견뎌야 한다. 그래야 좋은 대학도 가고 성공도 할 수 있다.
만약 학교에 학생이 한 명뿐이라면?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는 것처럼, 그동안 보이지 않던 여러 가지 것들이 보인다. 처음에 선생님들은 하나뿐인 학생을 놓고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 자기 과목이 얼마나 중요한지 목소리를 높인다. 선생님들의 욕망과 주장에 관심이 없는 아이는 선생님들이 다투는 틈을 타 슬그머니 교실을 빠져나간다. 전통교육에서는 학생 한두 명이 ‘사고를 쳐도(교실을 이탈해도)’ 학교가 굴러가는 데 큰 문제가 없다. 하지만 학생이 한 명뿐인 학교에서는 얘기가 다르다. 학생이 교실을 떠나면 모든 것이 멈춰 버린다. 선생님도 필요 없고, 교실도 필요 없고, 결국 학교도 필요 없게 되는 비상사태가 발생한다.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교실을 나온 아이는 어디로 사라졌을까? 아이를 따라가 보면 앞으로의 교육이 어떻게 변해야 하는지 힌트를 얻을 수 있다. 아이는 꽃밭을 가꾸던 할아버지와 숲속을 탐험한다. 숲에는 자연 교과서에서 보던 꽃과 벌레 들이 살아 숨 쉬고 있다. 꽃향기를 맡고 벌레도 구경하다가 아이는 강아지와 운동장 곳곳을 뛰어다니며 논다. 체육 선생님 말씀처럼 말이다. 한참을 뛰놀던 아이는 언덕에 올라 마을을 내려다본다. 지리 교과서와 똑같다. 도서관에 다다른 아이는 사서 선생님을 따라 자기만의 그림책을 만들다 까무룩, 잠이 든다.
선생님들은 교실을 나가 잠이 든 아이를 마침내 찾아낸다. 전통교육의 관점에서 보면 교실에 앉아 공부를 해야 할 아이가, 교실 밖에서 잠까지 잔다면 문제아도 그런 문제아가 없다. 아이가 왜 교실을 떠났는지, 아이가 왜 잠을 잤는지, 그런 것들은 애초에 물을 성질의 것들이 아니다.
도서관 사서 선생님이 보여준 아이가 만든 그림책을 보고 선생님들은 비로소 아이의 감정과 생각에 귀 기울인다. 비로소 쌍방향 소통의 문이 열린다. 가르치는 입장에서 배우는 입장으로 전이가 일어난다. 배움과 가르침이 분리된 행위가 아니라 통합된 행위가 된다. 늦었지만 아이의 입학을 축하하는 파티를 준비하면서 새로운 교육의 장이 열린다. 파티를 위해 미술 선생님은 노래를 부르고, 국어 선생님은 빵을 만들고, 지리 선생님은 마술을 배우고, 역사 선생님은 바느질을 한다. 모르는 것은 서로서로 가르치고 배우면서.
학교문제 해결 없이 행복한 미래는 없다
작가 리우쉬공은 독특한 상상력에 기반해 학교교육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끌어내고 있다. 무거운 주제의 이야기임에도 톤은 높지 않다. 낮고 부드럽고 따뜻하다. 수십년간 교육현장에 몸담았던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설득력 또한 크다.
‘학교 문제’는 우리 현실을 옭아매는 매우 크고 무거운 주제다. 사교육 문제, 부동산 문제, 출산율 문제 등 우리의 행복을 위협하는 사회문제의 밑바탕에는 항상 학교교육 문제가 자리하고 있다. 그 중력장의 영향력이 너무나 커서 변화를 위한 시도들이 쉽게 이상론으로 치부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대로 방치해서는 누구도 행복해질 수 없다. 『학생이 하나뿐인 학교』는 학교교육 문제에 대해 함께 머리를 맞대고 해결책을 모색하는 촉매제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