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훈을 주는 그림에서
한국인의 삶의 이야기가 되다
〇 고사인물도는 어떤 그림인가
오랜 세월이 흘러도 그 가치가 변치 않는, 후세에 모범이 되는 것을 ‘고전(古典)’이라 한다.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임금에게 요구된 덕목은 “한 가지 일이라도 ‘고전’에 상고하지 않음이 없는 것”이었다. 이는 군왕뿐 아니라 조선의 모든 군자에게 요구된 가치였다. 우리 선조들은 옛사람들의 본받을 만한 행적을 기억하고 본보기로 삼아 그들의 삶이 언제나 정도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경계했다. 이를 위해서 역사와 유교 경전의 학습이 중요했으며, 고사인물도는 그 학습과 실천에 도움이 될 수 있는 그림이었다. 성리학을 신조로 한 조선의 문사들에게 그림은 도를 수양하고 도에 도달하는 매개로서 가치를 지녔다.
이러한 고사인물도를 확인할 수 있는 화첩이 전해 내려온다. 《고사인물화보(故事人物畫譜)》와 《만고기관첩(萬古奇觀帖)》, 《예원합진첩(藝苑合珍帖)》이다, 그림 제작에는 진재해(秦再奚), 한후방(韓後邦), 장득만(張得萬), 양기성(梁箕星) 등 18세기 전반의 화원들이 다수 참여했다. 왕실 주문으로 제작하고 감상된 것으로 보이는데, 《만고기관첩》과 《예원합진첩》의 경우는 해당 고사의 원전을 발췌하거나 관련된 시문의 텍스트를 쓴 서폭이 그림과 짝을 이루고 있어 그림을 감상하면서 고사의 내용을 학습하기에 용이하다. 그림과 글을 통해 고전을 익히고 본받아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의 유교적 이상으로 나아가도록 하는 것이 기획 의도였을 것이다.
〇 고사인물도에서 다룬 주제
그렇다면 고사인물도에 그려진 이야기는 무엇이 있었을까. 또한 가장 인기 있는 이야기는 무엇이었을까. 고사인물도의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 네 가지 주제로 분류된다.
첫째, 새로운 왕조를 창립하는 데 큰 공을 세운 뛰어난 지략가 혹은 나라의 중흥을 이끈 능력 있는 재상의 이야기이다. 한나라를 개창하는 데 공헌한 장량의 고사나 후한 말 제갈량을 제사로 모시기 위해 유비가 남양의 초당을 세 번이나 찾아간 삼고초려의 고사, 이윤, 강태공 같은 신하를 찾아내 기용한 고사가 가장 많이 등장한다. 인재를 알아보고 등용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말해주는 이야기가 인기 있었던 것이다.
둘째, 은둔하며 청절을 지킨 은자 이야기이다. 조선 선비들은 현실 정치에 참여할 것인지 은일하며 도를 연마할 것인지를 고민해야 했다. 역사 속에는 허유와 소부, 백이와 숙제, 상산사호 등 은일을 택한 현자들이 다수 있었으니, 이들의 삶과 행적은 좋은 본보기가 되었다.
셋째, 인구에 회자되는 명구를 지은 시인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문치 시대였던 조선조 선비들은 대문호에 대한 숭상이 깊었다. 수많은 시인 중에서도 도연명, 맹호연, 이백, 임포 등이 고사에 많이 등장한다. 이 중 도연명은 다양한 도상으로 그려져 조선시대에 가장 인기 있는 시인으로 여겨진다.
넷째, 성현으로 추앙받는 학자들, 특히 유교의 사상과 교리를 밝힌 학자들의 이야기이다. 성리학을 국시로 삼은 조선시대에 주돈이, 정호, 정이, 소옹, 주희 등 유학자들의 행적과 언행이 그림으로 그려졌다.
〇 고전 학습에서 한국인의 ‘삶의 이야기’로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전반, 민간의 그림 수요가 폭발적으로 커지면서 고사인물도 병풍 또한 상당히 인기였다. 고사인물도는 대부분 중국의 옛이야기를 그린 그림이지만, 마치 우리 곁에서 일어나는 일처럼 실감 나게 풀어놓아 친근하게 느껴지는 점이 흥미롭다. 실제로 등장인물들이 한복을 입고 좌식 생활을 하는 한국인으로 표현된 경우를 마주치기도 한다.
하지만 고사인물도는 가장 다가가기 어려운 화목(畵目)이기도 하다. 과거에는 너무나 익숙하고 잘 알려진 인물들이었지만, 한자 문화의 전통과 단절된 요즘은 더 이상 이들 고사를 떠올리거나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고사인물도의 주인공들이 보여준 지혜와 지략, 용기와 도전, 인품과 멋, 재능과 철학은 시대를 초월한 지고한 가치이다. 이러한 옛이야기가 오늘에 되살려져 현대인이 당면한 문제를 슬기롭게 헤쳐 나가는 방편이 되어 줄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선조들이 고전으로 삼았던 옛이야기가 현대인들에게도 “삶의 지표”가 되기를 바란다. 100점이 넘는 고사인물도 작품과 이야기가 어우러진 이 책이 단절된 전통과 현대를 연결하는 다리 역할이 되어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