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서는 독일의 저명한 재정학자이자 사회경제학자, 그리고 프랑크푸르트 대학의 총장을 역임한 바 있고, 독일 역사학파의 전통을 현대화시켰다고 간주되는 빌헬름 게를로프가 1952년에 출판한 위대한 고전인 Geld und Gesellschaft의 번역으로서 이에 역자가 상세한 각주와 해제를 추가하여 출판되게 되었다.
화폐는 도대체 무엇이며, 어디에서 기원하였고, 어떻게 발전하여 왔으며, 어디로 가는가. 그리고 화폐가 탄생하고 변천하여 온 배후에 존재하는 원리는 무엇인가. 사람들이 화폐에 관하여 가지는 그 무한한 믿음은 어디에서 연원하는 것인가. 과연 그러한 믿음은 경제적 영역에서 합리적 인간에 의하여 생성될 수 있는가? 아니면 국가가 강제할 수 있는가? 화폐는 시대를 초월하는 어떤 본질과 기능을 가진 것인가? 어떠한 기능이 가장 화폐를 ‘화폐답게’ 만드는가? 그리고 화폐가 우리 사회에서 가지는 의미는 무엇이고, 또한 그 의미가 어떻게 되어야만 하는가? 본서는 이러한 물음에 대한 대답을 찾아가는 험난한 과정이다.
본서에서 저자는 칼 멩거에서 비롯된 바 있던, 화폐가 교환경제적 영역에서 경제합리적 인간, 소위 ‘호모 이코노미쿠스’에 의하여 합의 또는 자생적으로 발생하였으며 따라서 화폐는 자유를 상징한다는, 현대의 주류 경제학 내지는 신자유주의적 이데올로기의 허구를 인류학적 증거들을 통하여 날카롭게 비판한다. 그는 화폐를 포함한 경제제도는 한 사회의 삶의 총체에 ‘뿌리내려 있음’(Verwurzeltsein)에 기인하는 것이라는 막스 베버의 정신을 계승하고 있다. 그리하여 저자는 화폐가 교환경제 이전의 사회적 질서에서, 특히 계급관계에서 발생하였다는 견해를 본서에서 정치화하여 피력하고 있다.
저자의 출발점은 계급질서 및 인간 사회에서 시공을 막론하고 보편적으로 보여지는 인간의 사회적 본성인 (마치 베블런을 연상시키는 개념인) ‘사회적 인정에의 충동’ 그리고 차별화를 추구하는 「야심적 인간」이라는 점에서 볼 때 그의 이론은 마치 제도학파 경제학자인 베블런, 그리고 금세기 가장 위대한 사회철학자인 부르디외(Bourdieu)의 사상이 화폐이론에 접목된 듯한 인상을 강하게 풍긴다.
이에 추가하여 최초의 발생 이후의 화폐의 발전을 설명하기 위하여 게를로프는 ‘권력’이라는 요소를 도입시킨다. 모든 시대를 막론하고 화폐에 불변하는 특징이 있다면 그것은 화폐는 사회적 관계의 담지자, 특히 권력의 담지자라는 사실에 있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그리고 화폐가 역사적으로 발전되어 온 방향은 결국 (그 사용 대상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객체적 및 (그 사용자의 자격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주체적으로 제약되어 있던 화폐가 가지는 ‘권력’이 점차 그 제약을 벗어나 절대화되고, 종래의 수단이라는 지위에서 그치지 않고 승격되고 목적화되며 이어 모든 사물과 인간을 포섭하는 주인이 되는 과정이라는 점을 본서에서 보여준다. 물론 화폐는 외견상 종래의 전통적 계급관계의 속박을 벗어나 점차 ‘민주적 화폐’로 변모하게 되지만, 그 과정은 화폐 소유의 양적인 과다의 차이에 의하여 유산계급과 무산계급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계급과 차별을 낳게 된다. 그리하여 화폐가 무제한적인 권력을 획득함에 따라 이제 화폐는 종복이 아니라 주인이 된다.
그리하여 저자에 따르자면 현대사회에서의 모든 개인들은 화폐의 가공할 ‘권력’을 느낀다. “여하한 범죄라도 화폐로 속죄될 수 있고, 화폐적 지불을 함으로써 죄는 용서되고, 심상의 얼룩은 화폐로 지워지며, 양심의 가책은 화폐로 달랠 수 있다” (본서291쪽).
그의 분석은 짐멜의 『돈의 철학』의 정신과 마르크스의 물신성과 자본에 대한 분석을 계승하는, 현대 사회를 분석하는 실로 강력한 통찰을 제공하는 위대한 사회학적 분석이라고 할 수 있다. 단, 그의 이론은 화폐의 부정적인 면을 부각시킴에 그치는 것은 절대로 아니고, 화폐가 가지는 긍정적인 면도 또한 균형있게 분석하고 있는데, 이는 궁극적으로는 어떻게 화폐를 ‘길들일 수 있는가’에 대한 문제로 이어진다.
본서와 같은 거대 이론은 그의 이전과 이후에도 거의 전무하다고 할 수 있으며, 본서는 현대 화폐 현상을 이해하고 향후 화폐 정책을 수립함에 있어서 귀중한 통찰을 제시하고 있다. 일례로 2000년대 들어서 경제위기를 겪은 후 현재 독일에서는 그에 대한 재조명 작업이 일어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