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된다는 건’ 뭘까
존재한다는 건 의무다.
방황하라, 사랑하라, 나아가라
왜 지금 괴테를 읽어야 하는가. 자신의 삶을 쉽게 포기하는 만큼, 타인을 쉽게 포기하는 시대다. 자신과 타인을 깊이 들여다보기보다는 얕은 쾌락으로 회피하는 경향이 짙어졌다. 함부로 사람을 낙인찍고, 짓밟는 세태도 강해졌다. 행동하고 실천하며 부딪히기보다는 뒤에서 웅크리기 일쑤다. 괴테가 지금의 우리를 본다면 어떤 말을 할까? 더 진하게 방황하고, 사랑하며 앞으로 나아가라고 할 것이다.
하지만 무한경쟁의 시대에서 지금 우리는 방황하기도, 나아가기도 힘들다. 그래서 쉬운 길을 택한다. 고통에 직면하기보다 가벼운 즐거움에 머문다. 하지만 4장의 장제이기도 한 괴테의 가장 유명한 문장 ‘인간은 노력하는 자가 방황하는 법이니라’와 ‘자기 자신을 잃는다는 것은 모든 것을 잃는 것이다’라는 문장을 찬찬히 곱씹다 보면, 다른 길이 보인다. 타인의 욕망을 좇거나,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인생을 직면하고 받아들이고 나아가는 것이 가장 인간답고, 가장 풍요로운 정신으로 가는 길이라는 것을.
오랜 시간 고전 인문 교양작가로 살아온 저자 임재성은 인생이 고통이라고 말한다. 시대를 막론하고 개인은 세상을 쉽게 바꿀 수 없었다. 괴테도 그랬고 지금의 우리도 그렇다. 하지만 우리는 괴테가 말년에 자신의 삶을 축약한 다음의 문장에서 인생의 힌트를 얻을 수 있다. ‘사랑했노라. 괴로워했노라. 그리고 배웠노라.’
우리도 괴테처럼 현실을 정면 돌파해야 한다. 인생이 고통이라는 걸 받아들이며 괴로워하는 동시에 열심히 사랑해야 한다. 더불어 자신의 감정을 깊이 이해하고 끝없이 배워야 한다. 그렇게 삶을 포기하지 않고 부여잡고 나아가면 고통 일색으로 보이는 인생의 풍요로운 길이 열린다. 괴테는 또한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의무’라며 고귀한 생의 의지를 강조한다. 하지만 괴테에게 불멸의 명성을 안겨준 작품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주인공의 자살로 결말을 짓고, 이 작품에 몰입한 당대 독자들이 그 주인공을 쫓아 자살하는 사회현상을 낳았다. 이는 ‘베르테르 효과’라는 말로 지금 사회뉴스 지면에도 종종 쓰인다. 하지만 괴테는 삶을 함부로 포기하고 눈앞의 현실을 쉽게 포기하기보다는 뜨겁게 부딪쳤다. 그리고 그 방황을 사랑했다.
괴테-쇼펜하우어-니체로
연결되는 사유의 문장들
괴테를 최고의 스승으로 여긴 니체는 말했다. “이제껏 괴테만큼 높은 경지에 다다른 인간이 있었던가?” 쇼펜하우어 또한 괴테를 존경했고 꾸준히 교류하며 학문을 발전시켰다. 실제로 쇼펜하우어의 책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에는 괴테의 작품이 많이 인용되어 있다. 니체도 《비극의 탄생》에서 괴테와 그 사상을 언급한다. 경험하고 느낀 것만을 글로 쓰는 진정성, 굳건한 자기 믿음, 모든 인간을 이해하고자 하는 탐구심, 그리고 자기극복에의 신념과 말보다 행동을 중시하는 적극적 실천가였던 괴테의 태도는 당대 많은 이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실제로 겪지 않은 것, 실제로 마음을 쓰게 하지 않는 것은 절대로 언어로 표현하지 않았던 괴테는 ‘행동’을 강조한다. 아무리 현란한 말로 자신을 꾸며봤자, 자신을 아는 길은 오직 행동이라는 것이다(‘나를 아는 길은 오직 행동을 통해서만 가능하다’_괴테). 니체도 비슷한 맥락에서 다음과 같은 문장을 남겼다. ‘새로운 자아를 만들기 위한 변화를 평생 동안 멈추지 마라.’ 이처럼 책에는 다양한 인생의 테마를 놓고 괴테와 두 철학자의 문장의 호응을 소개한다.
괴테는 60년을 두고 《파우스트》를 썼다. 자신의 미숙했던 사랑을 뉘우치며 새로운 사랑을 다짐하는 시를 쓰기도 했다. 이렇게 끊임없이 과거의 자신을 지우고 극복하며 나아가는 것이 ‘인간’이 되는 길임을 온몸으로 증명하며 글을 썼다. 실천으로 사유를 극복하는 삶이 그의 문장에 배어 있기에 200년이 지난 지금의 우리에게도 괴테의 문장이 주는 울림이 크다. 괴테가 보여주는 대로, 방황하고, 사랑하고, 나아가다 보면 우리는 그렇게 ‘인간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