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후 독일의 헌법학계를 이끈 에른스트 볼프강 뵈켄회르데 교수의 주요 저작을 살피다
에른스트-볼프강 뵈켄회르데(Ernst-Wolfgang Böckenförde, 1930~2019)는 하이델베르크 대학, 빌레펠트 대학, 프라이부르크 대학 교수로 일했으며, 사회민주당의 법정책 이론가였다. 독일 연방헌법재판소 재판관을 역임(1983~1996)한 뵈켄회르데는 1953년 이래로 카를 슈미트로부터 많은 가르침을 받았으며, 그의 저작에 슈미트가 직·간접적으로 관여하였다고 알려져 있다. 『국가와 헌법』에는 제1편 〈헌법과 헌법학〉, 제2편 〈국가와 사회〉, 제4편 〈독일 헌법사〉, 제7편 〈기본권 이론〉, 제8편 〈헌법재판·민주주의·예외상황〉에 그의 논문과 저작, 토론 등이 수록되었다.
제9편 〈독일의 헌법학자들〉에는 루돌프 스멘트, 페르디난트 라살레, 파울 라반트, 후고 프로이스, 에리히 카우프만 등 주요 독일 헌법학자의 생애와 업적을 다룬 논문이 수록되었다. 주목할 만한 논문은 김효전 교수가 집필한 「나치 독일의 황제법학자들」(2023)이다. 나치스가 독일의 권력을 장악한 지 90년이 된 시점에 발표된 해당 논문은 나치스 시대의 독일 국법학자 12인이 어떻게 어용법학자가 되어 나치스에 부역하였는지 밝히고 있다. 카를 슈미트, 루돌프 스멘트 등으로 대표되는 전전(戰前) 법학자들의 이론과 학설은 독일에서는 더 이상 거론되지 않지만 국내에서는 여전히 중요하게 여겨진다. 그러나 이들 학자들 개인의 생애나 역사적 정치사회적 배경에 대한 연구는 소홀한 편이었다. 이는 독일법에 대한 무분별한 맹종, 신화화를 낳기도 했다. 김효전 교수는 나치 시기 독일 법학자들을 연구하며 독일 법학의 명암과 실체를 밝히고 그 전체상을 우리의 시각으로 보고자 했다. 또한 볼프강 벤츠의 「나치 독일 하의 유대인 법률가」 등은 한국에 상세하게 소개되는 법에 의한 히틀러의 독재와 유대인 박해의 구체적인 모습을 알리고 있다.
■ 자유 민주주의체제를 향해 변모하는 독일 헌법학계의 이론을 살피고, 한국 헌법학계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다
제2차 세계대전의 결과는 "헌법 전쟁"의 결과라 말할 수 있다. 독일·이탈리아·일본의 권위주의 국가체제가 미국·영국·프랑스의 자유민주주의 헌법체제 앞에 항복한 것이다. 연합국의 승리로 일본 제국주의에서 해방된 대한민국은 1948년 새로운 헌법이 제정되었다. 모든 분야에서 미국의 문물이 급격하게 쏟아져 들어왔지만 법학과 사법계 분야는 여전히 종래의 권위주의적인 분위기가 지배하고 있다.
『국가와 헌법』에서 다루고 있는 헌법과 헌법학, 국가와 사회의 구별, 법치국가, 기본권 이론, 헌법재판 등의 주제는 헌법학의 기본 원리로서 이론적인 고찰과 함께 헌법사적인 접근을 병행하고 있다. 이 주제들은 현대 자유주의 헌법의 핵심적인 과제이며 오늘날 국내 법학계에서도 논의되어야 할 문제들이다. 이 책에 수록된 전후 독일 헌법학자들의 저작을 통해 변모하는 독일 헌법학계의 이론을 살피고, 국내 헌법학계가 무비판적인 외국법 이론의 수용에서 벗어나 변화하는 시대상에 맞는 헌법학 이론을 수립해나가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