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고 아름다운 신부와 귀족의 화려한 결혼식 행렬
그 행렬을 바라보며 심상치 않은 빛을 내뿜는 한 쌍의 눈
그리고 예비 신랑의 살인사건을 둘러싼 감동의 대파노라마
오만한 늙은 남작과 어린 고아 상속녀의 결혼 행렬이 수도원을 찾는다. 이 기묘한 행렬을 지켜보는 의미심장한 눈빛들 속에서 캐드펠 수사는 불길한 느낌에 사로잡힌다. 아름다운 예비 신부 이베타의 보호자를 자처하는 숙부와 숙모는 신부의 일거수일투족을 싸늘한 눈길로 감시하고, 예비 신랑 휴언 드 돔빌의 향사이자 이베타의 연인인 조슬린은 이베타를 이 결혼과 숙부 부부로부터 구출하기 위해 모종의 계획을 세운다.
그러나 조슬린은 그 계획을 실행하기도 전에 이베타 숙부의 모함으로 해고당하고 절도범으로 몰려 도망자의 처지에 내몰리고 만다. 그렇게 시간은 야속하게 흐르고, 기어이 찾아온 결혼 전날 밤, 신랑은 참혹하게 살해당한다.
아름다운 상속녀를 둘러싼
추악한 욕망의 틈바구니에서 피어난 지고지순한 순애
그리고 인내와 의지로 끝끝내 원수의 목에 들이댄 칼날의 향방
사건의 진상을 추적하던 캐드펠 수사는 피해자가 쓰고 있던 모자에서 특정한 지역에서만 자라는 개지치를 발견하고 미궁에 빠진 사건의 실마리를 풀어가기 시작한다. 개지치를 쫓아 캐드펠 수사는 한 사람을 만나게 되고 드디어 사건의 진상에 가까이 다가가는데…….
한편 모함에 빠져 도망자의 신세가 돼버린 조슬린은 세인트자일스 병원에 숨어 들어가게 된다. 이베타를 향한 절대적인 사랑을 품에 간직하고 수수께끼의 나환자 라자루스와 친구 사이먼의 도움으로 조슬린은 결국 이베타를 구출하기 일보 직전에 이른다. 그런데 예기치 않은 일로 조슬린과 이베타는 위기에 처하고, 또 한 건의 살인사건이 벌어진다. 첫 번째 살인사건과 두 번째 살인사건의 범인은 동일인일까? 돔빌 경의 모자에 개지치를 꽂은 사람의 정체는 무엇일까?
붉은 태양처럼 불타오르는 사랑,
은은하게 타오르다 따듯한 재로 남은 사랑,
그리고 죽음을 불사한 희생과 헌신의 사랑까지
두 건의 살인사건을 둘러싼 세 가지 색깔의 사랑 이야기
‘캐드펠 수사 시리즈’는 끔찍한 살인사건이 중심이 되는 추리소설이지만, 작품마다 한 쌍 이상의 연인이 등장하여 작가의 ‘사랑’에 대한 관심과 애정, 사유를 엿볼 수 있다. 특히 《세인트자일스의 나환자》(원제: The Leper of Saint Giles)에는 이베타와 조슬린, 돔빌 경과 수수께끼의 인물, 그리고 라자루스의 사랑이 독자들에게 특별한 감동을 준다.
서로밖에 안 보이는 젊은 시절의 격렬한 사랑, 오랫동안 편안하고 미지근하게 타오르다가 이별을 맞아 재가 되어버린 사랑, 죽음을 앞두고 마지막 삶의 불꽃을 태워 사랑하는 사람을 살리는 숭고한 사랑. 이 사랑의 온도는 제각기 다를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생과 사, 희로애락을 좌우하는 것이 이 사랑인 것도 분명하다. 엘리스 피터스는 사랑과 살인이라는 드라마틱한 이야기를 통해 삶에 대한 깊은 통찰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