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체 기관의 왕에서 뇌의 하수인에 이르기까지
심장은 어떻게 신화에서 역사가 되었는가?
“내가 그의 심장을 만져보아도 전혀 뛰지 않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이야기인 『길가메시 서사시』에서 길가메시가 그의 친구인 엔키두의 죽음 앞에서 탄식한 것처럼, 그리고 천상의 황소를 죽인 후 그 심장을 도려내 태양의 신 샤마시에 공물로 바쳤던 것처럼, 심장은 고대 여러 문명에서 생명의 상징, 또는 영혼이 깃드는 곳으로 여겨져 왔다. 17세기, 의학을 공부한 윌리엄 하비는 심장에 여러 차례 실험을 시도하면서 심실의 박동으로 인해 혈액이 온몸으로 펌프질 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는 갈레노스가 살던 이래 1500년간 가톨릭교회가 인정한 그의 이론의 의문을 제기하고, 심장의 주요한 역할을 밝혀내는 역사적인 사건이었다.
고대 영어 헤오르테heorte에서 유래된 심장이라는 단어는 가슴, 영혼, 정신, 용기, 기억, 지성 등 다양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과거에는 심장이 감정을 생성하고 용기를 불어넣으며 기억을 보관하고 영혼 또한 담고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사랑의 신 에로스는 금 화살촉이 달린 화살을 심장에 쏘거나 납 화살촉이 달린 화살을 통해 누군가를 사랑에 빠지게도, 또는 혐오하게 만들 수도 있었다. 또 호메로스의 『일리아드』에서 아킬레우스는 아이아스의 비난을 받고 ‘심장에 분노가 치밀어오른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심장의 역사』에서 저자는 우리의 신체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신체 기관이었던 심장의 사회적 중요성은 물론, 그러한 위치에 있던 심장이 오늘날 어떻게 혈액을 이동하는 기관으로 인식되었는지를 세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심장도 감정을 느낀다
우리가 알지 못했던 현대의 심장
『심장의 역사』는 크게 ‘고대의 심장’, ‘심장의 암흑기’, ‘심장과 예술’, ‘심장에 관한 기본적인 지식’ 그리고 ‘오늘날의 심장’으로 나누어 심장에 관한 거의 모든 것을 다루고자 했다. 30년 경력의 심장 전문의이자 의사과학자인 저자는 오늘날 사람들의 인식과 달리 심장은 단순히 혈액 펌프의 역할만을 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그는 타인의 심장과 폐를 이식받은 뒤 그의 성격과 취향이 전이된 사례, 사랑하는 사람이 갑작스레 세상을 떠난 후 심장마비를 겪는 환자들의 사례 등을 통해 심장에도 감정을 느끼는 기능이 있으리라고 추측했고, 그것은 저자가 이 책을 집필한 계기로 작용하기도 했다.
저자는 『심장의 역사』에서 심장과 마음이 연결되어 있다는 심장-뇌 연결 개념을 소개하며 과거 심장과 마음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었다는 지난 수천 년간의 믿음이 크게 다르지 않음을 주장한다. 뇌가 일방적으로 심장에 지시를 내린다는 가르침과 달리, 오늘날 새로운 연구 분야인 심장신경학은 심장과 뇌 사이에 양방향 대화가 이루어지며 끊임없이 서로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밝혀내고 있다. 심장에는 4만여 개의 감각 뉴런으로 이루어진 고유의 신경계가 존재하며, 뇌가 심장에 보내는 것만큼 많은 신경 신호를 뇌에 전달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심장의 역사』에는 심장에 관한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새로운 역사적, 문학적, 과학적 정보가 가득 담겨 있다. 심장이라는 하나의 주제로 얽힌 인류 지식의 역사적 생태계 속에서 독자분들이 인류의 번영과 실패, 고뇌와 성공, 삶과 죽음이 한데 녹아든 지혜를 선물 받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